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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udi 31 décembre 2009

augur 의 파생어들

불어 août 의 어원인 augustus 는 로마 제국의 첫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했지만 이것은 고유명사는 아닙니다. 이 단어는 « 거룩한, 축성받은 » 이라는 뜻의 형용사인데, 가이우쓰 옥따위우쓰 뚜리누쓰 (Caius Octauius Thurinus) 가 황제가 되면서 별명으로 취했습니다. 이후 사실상 로마의 모든 황제들이 이 형용사를 자신의 이름 뒤에 붙이면서 augustus 는 결국 로마 황제들의 호칭 중 하나가 되버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관습상 아우구스뚜쓰라고만 하면 로마의 첫 황제 가이우쓰 옥따위우쓰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가 8월에 죽었으므로, 그의 계승자가 선임자를 기념하기 위해 8월에 그의 이름을 준 것이 현재 août 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augustus 는 황제들의 호칭이 되기 이전에는 종교적인 단어였습니다. 이 말은 라띠나어 augur 로부터 왔는데, augur 란 « 미래를 점칠 줄 아는 사제 » 를 가리켰습니다. 이들은 특히 새들이 날아가는 방향이나 새들이 먹는 모이, 그리고 노래하는 소리 등을 듣고 좋은 일이 있을지 나쁜 일이 있을지를 판단했다고 하지요. augur 는 현대 불어로도 발전하여 augure 라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불어 augure 는 두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방금 말한 « 로마 시대의 사제 » 를 가리키고, 또 하나는 그 사제들이 하는 일, 즉 « 미래를 점치기 위해 주변을 관찰하는 일 » 또는 « 미래의 징조 » 입니다. 또한 augurer 라는 동사도 있는데, 이는 당연히 « 점치다, 예언하다, 예견하다 » 등의 뜻이지요. 그런가하면 자주 쓰이는 단어 inaugurer 역시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단어는 « 개막하다, 시작하다 » 등의 뜻인데, 이것은 애초에 새로운 성전이나 기념물 등을 지으면 아우구르들이 그 건물의 안전과 번성을 예언하며 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라띠나어 augur 는 불어에서 거의 모양에 변화가 없는 augure 뿐 아니라, 모양이 많이 달라진 heur 로도 발전하였습니다. heur 는 « 징조, 운, 행운 » 이라는 뜻이죠. 여기에 좋은 운이면 bon 을 붙이고, 나쁜 운이면 mal 을 붙여,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bonheur, malheur 라는 단어들이 태어났습니다.

다시 augustus 로 돌아와, 이 단어는 불어에서 auguste 로 발전하였습니다. 역시 프랑쓰에서도 로마에서처럼 왕들의 권위와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였던 단어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왕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 왕은 필립 2세 (Philippe II) 인데, 그는 44년간 재위하면서 프랑쓰 왕권을 강화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고, 왕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미 살아생전부터 auguste 라는 수식어가 이름 뒤에 따라다녔고, 지금도 필립 2세라기 보다는 필립 오귀스뜨 (Philippe Auguste) 라고 자주 불립니다. 더군다나 그는 8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주 적당한 별명이었던 것이지요.

Auguste 는 또한 남자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Augustin, Augustine 같은 애칭들이 나오기도 했구요. Augustin 을 더 줄이면 Tintin 이 됩니다. 물론 TintinAugustin 외에도 Martin 이라든지 Justin 이라든지, 다른 이름의 애칭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만화 주인공 땅땅의 진짜 이름이 오귀스땅일 수도 있다는 사실 ! 이렇게 불어에서는 한 음절을 반복하여 애칭을 만들 때가 많은데, 마찬가지로 Auguste 의 중간 음절을 반복하여 Gugusse 라는 애칭도 있습니다. gugusse 는 이제는 일반명사화 되어 « 써커쓰의 광대 » 를 뜻하기도 하고, 넓은 의미에서 그저 « 웃기는 사람 », 그리고 더 넓은 의미에서 그저 « 사람, 남자 » 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특히 이 단어는 군대에서 많이 쓰이면서 gus 로 다시 한 번 줄어, « 군인 », 그리고 뜻이 또 확장되어 « 녀석, 놈 » 등의 뜻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고귀하고 엄숙하고 종교적인 의미였던 augustus 가 참 많은 변화를 겪었지요 ?

mardi 22 décembre 2009

prononciation de « août » (août 의 발음)

불어로 된 달의 이름 중에서 8월을 칭하는 août 은 그 발음이 특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을 아래에 실었습니다.
Je recopie ci-dessous un article intéressant sur la prononciation du mot août. La source de l'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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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de publication sur le site : 31 juillet 2007
La Lettre du CSA n° 207 - Juillet 2007   

Bientôt le « joli août »...

Dans le cadre de la mission du Conseil consistant à veiller à la défense et à l'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 dans les médias audiovisuels, La Lettre du CSA du mois de juillet donne quelques précisions sur la pronociation du mot « août ». C'est cet article qui est reproduit ci-dessous.

Comme chaque année, le mois d'août suscite sur les antennes quatre prononciations différentes : [ou], [out], [a-ou] [a-out]. Pierre Fouché, dans le Traité de prononciation française (1969), recommande la prononciation [ou] et précise : « La prononciation [a-ou] est archaïque ou dialectale. Il en est de même de [out] et à plus forte raison de [a-out] ».

Le Petit Robert (2007) et le Petit Larousse illustré (2007) donnent [ou] et [out] alors que des éditions antérieures ne retenaient que le mois d'[ou].

Pour Joseph Hanse, dans le Nouveau Dictionnaire des difficultés du français moderne (1987), « Le mois d'août se dit [ou] mais beaucoup prononcent le t final. La prononciation [a-out] est fautive alors qu'elle est correcte dans les dérivés aoûtat, aoûté et aoûtien [aoussien] ».

Dans le Dictionnaire des difficultés du français (1993), Jean-Paul Colin recommande « la seule prononciation correcte [ou], le t devant rester muet, bien que l'usage se répande, notamment dans les médias de prononcer [a-ou] ».

Maurice Grevisse, dans Le Bon Usage (1986), donne la prononciation habituelle [ou] mais trouve excessif de condamner [out].

Moins sévères sont les recommandations données par le Dict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 qui, dans sa neuvième édition, note : « Août se prononce [ou] plutôt que [a-ou], le t se fait parfois entendre ». La septième édition (1878) préconisait [ou] mais signalait cependant « on prononce souvent [out] ».

Quelques années auparavant, Émile Littré, dans le Dictionnaire de la langue française (1863-1873), indiquait : « Août se prononce [ou], l'a ne se prononce pas. Pourtant quelques personnes prononcent [a-ou] ».

Venant du latin Augustus (mensis), substitué en l'honneur de l'empereur Auguste à Sextilis mensis (sixième mois devenu huitième mois lors de l'instauration du calendrier grégorien), ce mot de quatre lettres n'a cessé de provoquer de vives querelles à cause tant de sa prononciation que de sa graphie.

Dans son traité complet de prononciation, Comment on prononce le français (1917), Philippe Martinon écrit au sujet de l'histoire du mot : « Dans « août », l'a a cessé de se prononcer depuis le XVIe siècle [...] ; on a malheureusement continué d'écrire « août » avec un a [mais] la prononciation [a-ou] est surannée ». Il signale que la prononciation [a-ou] réapparaît à partir du XIXe siècle chez les orateurs et chez les poètes comme Victor Hugo, Sainte-Beuve et Henri de Régnier mais, pour lui, « on serait dans la tradition française en prononçant toujours et uniquement [ou] ».

En 1930, Léon Clédat raconte que Voltaire qui, dans l'avertissement de Zaïre affirme que le mois d'août se prononce [out], commençait ainsi une lettre à la marquise du Deffand « À Ferney le 19 Auguste », car il trouvait trop barbare d'écrire août et de prononcer [ou].

Si le « joli août » n'a pas de barque sur le Rhin, des poètes l'ont fêté comme mois de la moisson, avec une rime en [ou] :

« Dites ! L'ancien labeur pacifique, dans l'août
Des seigles murs et des avoines rousses,
Avec les bras au clair, le front debout
Dans l'or des blés qui se retrousse
Vers l'horizon torride où le silence bout ». (1)

Au sens figuré, le mot a désigné l'âge de la maturité par comparaison des périodes de la vie avec les mois des travaux agricoles : « D'ailleurs, elle touchait au mois d'août des femmes, époque tout à la fois de réflexion et de tendresse ». (2)

Enfin, il fut aussi employé dans la locution « faire l'août », c'est-à-dire faire la moisson, et dans l'expression aujourd'hui disparue « faire son août dans une affaire », au sens d'y gagner beaucoup, d'en tirer énormément de 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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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Émile Verhaeren, « La plaine », Les Villes tentaculaires, 1895.
(2) Gustave Flaubert, L'Éducation sentimentale, 1869.

dimanche 13 décembre 2009

꺌렁드 (calendes)

라임바웃 데 바께이라쓰 (Raimbaut de Vaqueiras) 의 에스떵삐 Calenda maia 는 « 오월의 첫 날 » 이라는 뜻입니다. 옥어 calenda, 불어 calendes 는 라띠나어 calendae 로부터 온 단어이며, 이것은 고대 로마 시대에 매 달의 첫 날을 지칭하던 용어였습니다. 로마력에서는 매일매일을 숫자로 세지 않고, 몇몇 특정한 날들, 즉 꺌렁드 (매 달 첫 날), 이드 (ides, 매달 보름) 등과 같은 날을 기준으로 하여 날짜를 세었습니다. 즉 꺌렁드로부터 며칠 전 날, 이드로부터 며칠 전 날 식으로 불렀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 꺌렁드라는 개념은 로마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날짜였으며, 새로운 꺌렁드가 시작하기 전 채무 관계를 모두 정리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꺌렁드에 맞추어 돈 갚고 받을 날짜를 적어 둔 책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달력 (calendrier) 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또한 불어 속담 중 renvoyer aux calendes grecques « 그리쓰 꺌렁드로 미루다 »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말은 존재하지 않는 날짜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꺌렁드라는 이름은 로마 시대에 와서야 생겨난 것으로, 그리쓰 시대에는 첫 날을 꺌렁드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 성 글랑글랑의 날에 » 와 같은 뜻입니다.

lundi 23 novembre 2009

dame « 부인 »

불어 dame 은 라띠나어 domina 로부터 왔으며, 이 말은 dominus 의 여성형입니다. dominusdominadomus « 집 » 로부터 온 말로, 각각 « 남녀 집주인 » 을 뜻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자유인들만 집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사실 집주인이라고 하면, 집 건물 뿐 아니라 집안의 다른 모든 물건,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 (특히 노예) 까지도 소유했으므로, domusdomina 는 « 주인 나리, 주인 마님 » 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여기서 유래한 불어 dame 도 따라서 « 신분이 높은 귀부인 » 을 뜻했습니다. 이 때 나이나 결혼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죠. 예를 들어 프랑쓰의 공주들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dame 이라 불렸지, 결코 demoiselle 이라 불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demoiselledemoiselle 대로,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 소귀족 부인 » 을 뜻했던 말입니다. 즉, 아무리 결혼을 했고 나이가 많더라도, 신분이 높은 귀족의 부인이나 딸이 아니면 demoiselle 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현대로 오면서 dame 은 « 기혼 여성 », demoiselle 은 « 미혼 여성 » 을 일컫게 되었습니다.

demoiselle 이라는 말도 사실은 dame 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원래 단어는 damoiselle 이었으며, 또한 남성형 damoiseau « 도련님 » 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damoiseau 는 사실상 쓰이지 않으며, demoiselle 도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 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과는 다르게 프랑쓰의 이삼십대 여자들은 mademoiselle 이라고 불리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어리게 본다고 기분 나빠하거나, 남자들이 딴 생각을 품고 하는 얘기 아닌가 경계심을 갖지요. 프랑쓰에서 특별히 어린 여자애들이 아니라면 mademoiselle 보다 차라리 madame 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난합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madame, mademoisellema 는 소유격 « 나의 » 입니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에는 이 부분을 바꿔주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모든 변화형이 가능하지만 특히 « 우리들의 부인 » 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notre dame 이라고 해야하겠지요. notre dame 이란 다름아닌 « 성모 마리아 » 를 칭합니다. 이 칭호는 기도 등에서 자주 쓰이고, 또 성모에게 바쳐진 교회의 이름으로도 자주 쓰입니다. 빠리의 주교좌 교회가 바로 Notre Dame 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도 사실 Notre Dame 이라는 이름의 성당은 크고 작은 것이 도처에 있습니다. 따라서 빠리의 주교좌 성당을 가리킬 때는 항상 Notre Dame de Paris 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노트르 담 드 빠리의 남쪽면


반면, 이딸리아어에서는 « 성모 » 를 가리킬 때 우리의 부인이라 하지 않고, 나의 부인이라 합니다. 그래서 madonna 라는 말을 쓰지요. 이 때 donna 역시 domina 가 변천하여 생긴 말로 madonnamadame 은 결국 같은 구조와 어원을 가지며, 뜻도 비슷합니다. madonna 도 역시 옛날에 귀족 부인에 대한 경칭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madonna Lisa). 여기에 « 성모 » 라는 뜻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는 점이 불어와 다를 뿐이지요. 이 madonna 라는 이딸리아어를 그대로 불어에 수입하여 madone 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딸리아어에서 madonna 는 « 성모 » 를 가리키는데 비하여, 불어의 madone 은 « 성모상, 성모를 나타내고 있는 그림 » 을 말합니다.

Madone

samedi 7 novembre 2009

담놀이 (Jeu de dames)

장기와 비슷한 놀이로 프랑쓰에서 즐기는 담 (dames) 이라는 놀이가 있습니다. 담놀이판은 장기판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는데, 64 꽁빠르띠멍 대신 정확하게 100 개의 꽁빠르띠멍으로 나뉘어진 점 만이 다릅니다. 담은 장기와 비슷한 듯 하지만 동시에 매우 다릅니다. 말이 움직이는 규칙은 일단 장기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여기서는 장기처럼 말마다 이름과 성격, 움직이는 노선이 정해져있지 않고, 스무 개의 말들이 모두 같은 모양으로 생겼으며, 같은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장기보다 훨씬 단순해 보이는 이 놀이도 막상 시작해 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헤쳐 나와야 합니다.

담놀이에 사용되는 말들은 동전처럼 생긴 동글납작한 원형으로써, 이 말들이 상대방 진영의 끝 줄까지 건너가서 닿으면 한낱 말 (pion) 에서 담 (dame = 왕비, 여왕, 부인) 으로 승격을 합니다. 담이 되면 다른 말과 구별하기 위해서 말을 하나 포개어 얹습니다. 그리고 사방팔방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지요. 그 때문에 바로 담이라는 이름을 주게 된 것 같습니다. 장기에서도 왕비는 매우 자유롭게 움직이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장기에서도 왕비를 잃는 것은 왕에게 치명적인데, 담놀이에서도 적에게 담을 하나 허락하고 나면, 사실 이기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담놀이에 사용되는 판은 damier 라고 합니다. 그런데 뜻이 발전하여 오늘날 damier 라고 하면 두가지 색의 네모가 교대되는 무늬를 칭합니다. 사실 장기판도 마찬가지 무늬이기 때문에 에쉬끼에 무늬라고 해도 될텐데, 이렇게 말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다미에 무늬로 유명한 루이 뷔똥의 가방

jeudi 29 octobre 2009

appartement « 아파트 »

département 과 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정확히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로 appartement 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département 과 비슷하게, 역시 하나의 커다란 전체를 여러 part « 몫, 부분 » 로 나누었다는 뜻이지요. 특히 하나의 건물을 여러 몫으로 나누어 여러 가구가 살 수 있게 해 놓은 주거 환경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들은 모두 네모 반듯반듯하고, 모두 일정한 넓이와 획일적인 구조를 가지지만, 프랑쓰의 아파트들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지닙니다. 옛날부터 있던 건물들,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살던 큰 건물을 그때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나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한 층에도 여러 면적을 지닌 아파트들이 있고, 네모난 대신 비뚤비뚤한 모양이 생기기도 하며, 아래층과 윗층의 구조가 전혀 다른 일도 많고, 또 윗층과 아래층을 터서 이층 (duplex), 때로는 삼층 (triplex) 짜리 아파트들도 있습니다.

appartement 이라는 단어가 이미 1559년부터 불어에서 쓰인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지만, 이러한 주거 환경은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프랑쓰에서는 현대식 개념이 아닙니다. 이미 수백년전부터 프랑쓰의 도시들, 특히 빠리에는 여러 층으로 된 건물들이 있었고, 그 안을 잘게 쪼개서 사용했었지요. 또한 고층건물이 아니더라도, 작은 개인 집 안에서도 주거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으면, 역시 그 각각을 아빠르뜨멍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베르싸이으나 루브르 같은 옛 왕궁에서도 각각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을 아빠르뜨멍이라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왕의 아빠르뜨멍이라고 하면, 궁 안에서 왕의 침실을 비롯하여, 접견실, 사무실, 비서실 등등으로 이루어진, 왕이 사용할 수 있도록 분리시켜 놓은 공간을 말했습니다.

호화로운 왕의 아빠르뜨멍과는 정반대로, 아파트들 중에 달랑 방 하나로만 구성된 아파트, 즉 침실과 거실의 구분 조차 없는 아파트를 불어로는 studio 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라띠나어 studium [스뚜디움] 에서 왔는데, 바로 « 공부 » 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study, 불어의 étude 등이 모두 이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스뛰디오는 « 학생의 공부방 », 또는 « 예술가의 작업실 » 등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지요. 그 때문에, 부엌이나 화장실, 욕실 등이 아예 없거나, 매우 작거나, 복도나 지하에 있어서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프랑쓰에는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라는 말은 영어 apartment 에서 왔겠지만, 영어 apartment 는 불어 appartement 이 건너가서 생긴 말입니다. 반면 불어 appartement 은 이딸리아어 appartamento 를 채택한 것이며, appartamento 는 또다시, 에스빠냐어 apartamiento 를 이딸리아어화 한 것입니다. 에스빠냐어 apartamiento 는 동사 apartar 를 명사화 시킨 것이구요. apartar 라는 에스빠냐어 동사는 위에서 처음 얘기했듯, « (여러 몫으로) 분리하다 » 라는 뜻입니다.

루브르궁에 보존되어 있는 황제 나뽈레옹 3세의 아빠르뜨멍 중 거실과 식당


mardi 27 octobre 2009

데빠르뜨멍 (département)

département 은 여러 뜻이 있는 단어인데, 그 중에는 프랑쓰 전역을 잘게 나눠 놓은 구역을 칭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도 정도에 해당하는 데빠르뜨멍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도 보다는 크기가 작습니다. 데빠르뜨멍이 세네개 모이면 하나의 레지옹 (région), 즉 « 지역 » 이 되는데, 레지옹은 또 우리나라의 도보다는 더 큽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해당하는 번역어는 있을 수 없으며, 사실상 행정구역 명칭들도 대부분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냥 데빠르뜨멍 이라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프랑쓰 전국은 정확하게 백 개의 데빠르뜨멍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데빠르뜨멍은 이름이 있을 뿐 아니라 고유한 번호를 부여받습니다. 01번은 앙 (Ain) 이고, 95번은 발-드와즈 (Val-d'Oise) 입니다. 그리고 에로 (Hérault) 는 34번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쓰 사람들 중에는 이 데빠르뜨멍들의 이름과 번호를 열심히 노력하여 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데빠르뜨멍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100개의 데빠르뜨멍의 번호를 모두 정확하게 아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거든요. 프랑쓰의 자동차 번호에는 모두 그 차가 등록된 데빠르뜨멍의 번호가 포함되게 되어 있으므로, 사실 차 번호만 보아도, 이 차가 어느 데빠르뜨멍에서 온 차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때문에, 흔히 고속도로 등지에서 차가 밀릴 때, 옆의 차들의 번호판을 보면서 어느 데빠르뜨멍의 차인지 알아 맞히는 놀이 따위를 하기도 합니다.

데빠르뜨멍의 번호는 또한 우편번호에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75011 이라고 하면, 이것만 보아도, 빠리 11구에 있는 주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시 남의 우편번호를 보고 어느 데빠르뜨멍일지 짐작하는 놀이들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도시 하나에 데빠르뜨멍 번호를 부여하는 일은 없습니다. 한 데빠르뜨멍 안에는 크고 작은 도시가 수두룩 하지요. 유일한 예외가 바로 빠리인데, 빠리는 서울처럼 일종의 특별시이기 때문입니다. 빠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꼬뮌 (commune) 이면서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데빠르뜨멍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금 말했듯, 빠리의 번호는 75입니다.

프랑쓰에 백 개의 데빠르뜨멍이 있다면, 01부터 시작해서 100까지 차례대로 번호가 붙어야 할텐데, 엄격히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대다수는 그러합니다. 하지만 몇몇 예외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꼬르쓰 (Corse) 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와도 같이, 프랑쓰 남쪽에 위치한, 그리고 프랑쓰의 가장 큰 섬인 꼬르쓰는 20번에 해당되는데, 그 자체가 다시 두 데빠르뜨멍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오뜨-꼬르쓰 (Haute-Corse) 와 꼬르쓰-뒤-쒸드 (Corse-du-Sud). 차라리 Haute-Corse (높은 꼬르쓰) 와 Basse-Corse (낮은 꼬르쓰) 로 구별하든지, 아니면 Corse-du-Nord (북쪽 꼬르쓰) 와 Corse-du-Sud (남쪽 꼬르쓰) 로 구분하든지 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이리 꼬아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꼬르쓰 섬을 구성하는 두 데빠르뜨멍의 명칭은 이러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번호는 20이 아니라, 2B 와 2A 입니다.

그리고 프랑쓰는 네 개의 해외 데빠르뜨멍 (département d'outre-mer = DOM) 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중미의 엉띠으 제도 (Antilles) 에 두 개, 남미 대륙에 하나, 그리고 인도양에 하나. 이들은 두자리가 아니라 세자리 숫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971 = Guadeloupe, 972 = Martinique, 973 = Guyane, 974 = La Réunion. 이 네 개의 데빠르뜨멍은 비록 프랑쓰 본토 (France métropolitaine) 에서 멀리 있지만, 이름이 나타내듯, 다른 데빠르뜨멍과 동등하게 프랑쓰를 구성하는 정식 행정구역입니다. 이 해외 데빠르뜨멍도 공식적인 프랑쓰 영토에 속하며, 불어가 공식 언어이고, 외로 (euro) 가 공식 화폐이며, 이 지역에서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프랑쓰 국적과 선거권을 가집니다.

따라서 평범한 데빠르뜨멍 93 + 특별시 데빠르뜨멍 1 + 꼬르쓰 2 + 해외 데빠르뜨멍 4 = 100 이 됩니다.

참고로 département 이라는 단어는 불어동사 départir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동사는 « part, 즉 각자의 몫에 맞게 나누다, 분배하다 » 라는 뜻입니다.

프랑쓰 본토의 데빠르뜨멍 지도

dimanche 20 septembre 2009

héraut « 사자 »

héros 의 h 가 유성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héraut 의 영향을 받아서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프렁씩어 heriwald 에서 유래한 héraut 는 1180년 경부터 불어에서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제르마닉 계열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애초에는 h 가 발음되었을 것입니다. 1300년 경부터 héros 가 불어에 도입되었으므로, 이 때 héros 는 기존 어휘인 héraut 를 흉내내어 발음되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현대 불어에서 두 단어는 정확하게 똑같이 소리납니다.

héraut 라는 것은 중세 기사 (chevalier) 체제의 한 계급으로서, 왕이나 영주 등의 메싸쥬 (message) 를 전달하거나, 공식적인 선언문 등을 공표하는 역할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또한 중요한 행사나 의식 따위에서 순서를 알리고 진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흔히 나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하지요.

이렇게 항상 어떤 일의 알림을 맡았었기 때문에, 오늘날 héraut 는 « 선구자, 전조 » 등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하지만 중세에 에로의 중요한 임무는 기사들의 문장 (blason) 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자신이 속한 가문을 대표하는 문장을 방패와 깃발 등에 그려서 가지고 다녔는데, 기사들의 경기 (tournoi) 나 귀족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일일이 확인하고 어떤 가문의 누구인가를 재빠르게 파악하여 선포하는 것이 에로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문장을 연구하는 학문을 héraldique 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mardi 30 juin 2009

오페라의 유령 (Le fantôme de l'Opéra)

갸스똥 르루 (Gaston Leroux) 는 룰따비으 (Rouletabille) 연작 외에도 여러 소설을 남겼는데, 유달리 유명한 작품 하나가 있으니, 바로 오페라의 유령입니다. 이 소설은 빠리의 오페라 극장 (갸르니에 궁) 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괴이한 사건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낭만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번쯤 읽어 볼만은 하지만, 뭐가 그리 재미있고 대단한 건지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무려 삼십여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요 ? 또한 뮤지컬 (comédie musicale) 로도 큰 인기를 모았었습니다. 그런에 여기서 특이한 것은, 이 중 프랑쓰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소설이 1910년 발표되었고, 소설을 주제로 한 첫 영화가 이미 1916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최근까지 거의 백여년간을 거치면서, 프랑쓰 사람들 중에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압도적인 대다수는 영미권 영화들입니다. 뮤지컬 역시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 가 작곡하여 런던과 뉴욕의 무대에 오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불어로 된 자료들은 그저, 이러한 소설이 있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정도의 단순한 정보들을 반복하는데 불과하는데 비해, 영어로 된 싸이트들 중에는 이 소설에 — 보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의 주제에 거의 광적으로 열광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신비롭다 못해 기괴한 분위기, 빠리 오페라 극장이라는 어딘가 모르게 낭만적인 장소, 게다가 그 건물의 수백미터 지하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세계, 거기에다 추리적인 색채와 냉소적인 유머까지... 이 모든 것이 영미권 문화의 전통적인 문학 소재였던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이런 것이 일종의 문화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물론 프랑쓰에도 이런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이 소설은 어딘가 모르게 프랑쓰답지 못합니다. 설사 프랑쓰 작가가 불어로 쓴 작품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그리고 사실 외국인들은 원작을 직접 읽어 볼 기회가 드물어서, 아마 문학작품으로서 오페라의 유령 보다는, 그 전체적인 주제와 줄거리에만 집착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실제로 원작을 읽어 보면, 그렇게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체는 너무 오래되어 색바랜 느낌이 물씬 풍기고, 줄거리는 너무 황당무계하여 현실감이 없습니다. 게다가 마치 실제로 갸르니에 궁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고하듯이, 드문드문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인용하면서, 쓰고 있는데, 혹시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 다시 읽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무튼 아래 동영상은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중 유명한 이중창을 싸라 브라이트만 (Sarah Brightman) 과 안또니오 반데라쓰 (Antonio Banderas) 가 부른 것입니다. 한때 작곡가의 부인이기도 했던 브라이트만은 뮤지컬의 초연에서 여주인공 크리스띤 다에 (Christine Daaé) 역을 맡은 이후 이 역할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반데라쓰는 이 뮤지컬에 출연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아마 특별한 기회에 아래와 같은 자리가 마련된 것 같습니다. 원래 오페라의 유령 에릭 (Érik) 은 너무 추하게 생겨 가면을 쓰고 다니는데, 안또니오 반데라쓰는 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잘 생긴 것 같군요. 그리고 음역이 너무 높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남자 가수들이 부른 걸 들어 보면 훨씬 저음이던데... 그래도 반데라쓰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인 것 같습니다.

vendredi 30 janvier 2009

셩-젤리제 (Champs-Élysées)

자칭 타칭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la plus belle avenue du monde) 이라고 불리는 셩-젤리제는 빠리 중앙으로부터 서쪽을 향해 길게 뻗은 대로 (avenue) 를 말합니다. 정확한 행정 구역 이름은 avenue des Champs-Élysées 이며, 쁠라쓰 들 라 꽁꼬르드 (place de la Concorde) 와 쁠라쓰 샤를-드-골 (place Charles-De-Gaulle), 두 광장을 이어주는, 길이 약 2 킬로미터, 폭 약 70 미터의 길입니다. 빠리의 길들은 대부분 좁고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셩-젤리제처럼 곧고 넓은 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긴 하지만,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 이라는 것은 너무 광고문안적인 표현이 굳어진 것 아닌가 합니다. 혹시 옛날에는 더 아름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넓게 트인 길에 가로수가 끝이 안 보이게 줄지어 있고, 인도도 매우 넓어서 산책하기에 쾌적한 길이었을테니까요. 사실 이미 18세기에도 이 동네를 빠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역의 하나라고 묘사한 문서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점들, 은행들, 식당들, 여행사들이 너무 많이 들어 차 있어서, 과연 이 길만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최고급 상점들 위주라 희귀성이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전세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체인 상표들이 셩-젤리제를 수 놓고 있습니다.

셩-젤리제에서 그나마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부위는 꽁꼬르드 광장부터 롱-쁘왕 데 셩-젤리제 (rond-point des Champs-Élysées), 즉 아브뉘의 한 중간 정도까지입니다. 여기도 물론 차도에는 차들이 씽씽 달리지만, 양 옆 인도는 정원으로 꾸며져 있고, 인도의 폭이 거의 삼사백미터에 가깝도록 넓직하기 때문에 산책하는 맛이 있습니다. 물론 셩-젤리제의 나머지 부위도 빠리의 보도로서는 정말 넓은 편이지만, 관광객들로 미어 터지고, 소매치기들의 활약이 많으며, 잡상인들로 들끓기 때문에,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셩-젤리제 — 또는 빠리 사람들이 줄여 말하듯 셩 (Champs) — 에 가면, 알 수 없는 흥분과 때로는 « 감동 » 까지 느끼게 되는 것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괜히 술렁이는 분위기 때문이겠지만요. 특히 11월 말부터 가로수에 성탄절 장식을 했을 때는 정말 엘리제 (Élysées) 들판 (champs) 에 온 듯한 기분도 듭니다. 엘리제 들판은 그리쓰 신화에서 영웅들과 착한 사람들이 죽은 후 가게 되는, 일종의 천국과 같은 장소를 말하지요. 여기서부터 이 길의 이름이 왔으며, 그 외에도 프랑쓰에는 엘리제라는 이름을 딴 장소나 명소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ex. Palais de l'Élysée).

아브뉘 데 셩-젤리제는 매년 7월 14일 군인들의 행진 장소로 쓰이고, 또 매년 여름 뚜르 드 프렁쓰 (Tour de France = 프랑쓰 일주 자전거 대회) 의 종착지로도 쓰이며, 그 외에도 특별한 행사들, 주로 화려한 축제 분위기의 행사들이 종종 열립니다.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나라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는 빠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뛰쳐나와 모여드는 곳도 셩-젤리제랍니다.

셩-젤리제의 성탄 장식

꽁꼬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위에서부터 개선문 쪽을 향해 바라 본
아브뉘 데 셩-젤리제source de cette photo

mercredi 28 janvier 2009

엘리제 궁 (Palais de l'Élysée)

오뗄 마띠뇽프랑쓰 수상의 공식 관저라면, 프랑쓰 대통령의 공식 관저는 엘리제 궁입니다. 엘리제 궁도 갈리에라 궁처럼, 사실 궁이라기 보다는 오뗄 빠르띠뀔리에라 보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오뗄 마띠뇽과 비슷한 시기 (1722) 에 완성된 이 집은 그 첫주인인 에브르 백작 (Comte d'Évreux) 의 이름을 따서 한동안 오뗄 데브르 (Hôtel d'Évreux) 라고 불렸으며, 바띨드 도를레엉 (Bathilde d'Orléans), 즉 부르봉 공작 부인의 소유이던 시절에는 오뗄 드 부르봉 (Hôtel de Bourbon) 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프랑쓰 혁명으로 재산을 많이 잃게 된 바띨드 도를레엉은 오방 (Hovyn) 이라는 상인과 손을 잡고, 자신의 저택 1층과 정원을 대중에게 공개하였습니다. 이 때 여기에 일반인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저택의 위치가 아브뉘 데 셩-젤리제 (avenue des Champs-Élysées) 와 가깝다하여, 엘리제 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엘리제 궁은 공식적으로는 제 2 공화국 시절부터 프랑쓰 대통령의 공식 거처로 지정되었으나, 대통령으로 뽑힌 나뽈레옹 3세가 황제로 둔갑하면서, 역사적으로 진짜 왕궁이었던 뛰일르리로 옮겨 가 버리는 바람에, 엘리제 궁이 실제 역할을 발휘하게 된 것은 1873년 이후부터입니다. 이후로는 지금까지 프랑쓰의 모든 대통령들이 엘리제 궁에서 집무를 보고 생활을 하나, 대통령 관저로서 적합치 않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엘리제 궁이, 위에서 말했듯 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고, 관광객으로 들끓는 셩-젤리제 바로 옆, 상점들이 즐비한 좁고 긴 거리 (rue du faubourg saint-Honoré) 에 위치해 있는 데서 생기는 여러 안전 문제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대통령이 뽑힐 때마다 이사 계획이 논의되다가도, 번번이 무산되고 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알 수가 없지요. 엘리제 궁 역시 문화유산의 날들 같은 드문 기회에 일반인의 구경을 허락합니다.

삼색기가 휘날리는 엘리제 궁의 정문source de la photo

lundi 17 novembre 2008

따로 (tarot)

비록 오늘날에는 프랑쓰식 놀이용 카드가 전세계적으로 규격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몇몇 지역, 특히 프랑쓰 남부와 이딸리아, 스위쓰와 독일의 일부 지방 등에서는 고유한 전통 카드 역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예이자 가장 유명한 예로 따로 카드 (cartes de tarot) 를 들 수 있습니다. 따로 카드는 프랑쓰 카드에 비하여 모양이 보다 갸름하고 길며, 무늬도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한 벌을 이루는 카드의 수가 78 장으로, 보통 프랑쓰 카드보다 26장이나 더 많습니다. 그 중 네 장은 기사 (cavalier) 들로서, 그 가치는 시종 (valet) 과 부인 (dame) 의 중간입니다. 나머지 22장은 완전히 다른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1부터 21까지 번호가 크게 매겨져 있습니다. 마지막 한 장은 아무런 번호도 글자도 없는 대신, 또는 멍돌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Excuse (변명) 라고 불리는 이 카드는 일종의 죠커 역할을 합니다. 이 스물 두 장의 카드는 현대 불어로 atout, 즉 « 으뜸패 » 라고 불리는데, 오래 동안 triomphe, 즉 « 승리패 » 라고도 불렸습니다. 바로 여기서 영어의 trump 라는 용어가 비롯되었습니다.

외국에는 따로 카드가 마치 점술용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놀이용입니다. 따로 카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는 몇가지가 있으나,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따로지요. 따로라는 놀이를 하는데 사용되는 카드이기 때문에 바로 따로 카드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따로 놀이는 몇가지 변형이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네 명이서 하는 놀이입니다. 각각 18장의 카드를 손에 들고 시작하며, 앞사람이 낸 카드와 같은 무늬이면서 더 높은 값을 가진 카드를 내 놓는 원칙입니다. 같은 무늬가 없을 때는 바로 으뜸패 카드를 냄으로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18장의 카드가 모든 참가자들의 손을 떠나면 한 판이 끝나게 됩니다. 현대에 행해지는 많은 카드 놀이들의 규칙이 바로 따로에서부터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놀이들에 비해 한가지 유별난 점은 따로에서는 카드의 점수를 반점 단위로 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왕은 4.5, 부인은 3.5. 사실 따로에서 제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점이 바로 점수 계산법입니다. 카드의 값과 조합에 따라, 더하고 빼고 곱하는 매우 복잡한 점수 계산을 해야 합니다.

따로의 정확한 근원에 대해서는 매우 논란이 많습니다. 점술용으로도 쓰이는 점과 관련하여, 매우 황당하고 전설같은 해석들이 많은데, 언어학적으로는 이딸리아어 tarocco 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딸리아어 tarocco 가 과연 어디서 온 말인가에 대해서는 또다시 황당하고 전설적인 주장들이 난무합니다. 아무튼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따로 놀이는 1430년 경 롬바르디아 (현재 이딸리아 북서부) 에서 처음 목격되었으며, 곧 프로벙쓰 (현재 프랑쓰 남동부) 로 수입되었습니다. 라띠나어 문화권의 놀이이기에, 따로용 카드에는 오랫동안 라띤 무늬가 쓰였습니다 : 즉 그릇, 칼, 막대기, 동전. 그런데 18세기에 따로가 독일에 전해지면서, 오히려 프랑쓰 무늬로 변하였습니다 : 즉 심장, 창끝, 토끼풀, 네모. 또한 19세기에는 22장의 으뜸패를 장식하던 중세풍의 상징적인 그림 역시, 일상 생활 풍경을 묘사하는 귀여운 (?) 그림들로 변하였습니다. 하지만 점술용 따로 카드는 여전히 옛날식 무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색다르고 신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겠지요. 그때문에 오늘날 프랑쓰에는 크게 두 종류의 따로 카드가 존재합니다 : 놀이용 따로 (tarot à jouer) 와 점술용 따로 (tarot divinatoire).

점술용 따로는 자주 마르쎄이으 따로 (tarot de Marseille) 라고 불리며, 드물게 이딸리아 따로 (tarot italien) 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방금 말했듯, 마르쎄이으 (즉 프로벙쓰) 와 이딸리아에서 쓰이던 라띤 무늬 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점술에서는 22장의 특별 카드를 으뜸패승리패라 부르지 않고 대비밀 (arcanes majeurs) 이라고 칭합니다. 이런 것을 전혀 믿지 않는 저로서는 폭소가 터져나오는 표현이기는 하나, 아무튼 대비밀을 구성하는 카드들은 방금 말했듯 여전히 중세풍의 상징적, 은유적 그림을 띄고 있습니다.

1. Le bateleur (마술사)
2. La papesse (여교황)
3. L'impératrice (여제)
4. L'empereur (황제)5. Le pape (교황)6. L'amoureux (사랑에 빠진 남자)7. Le chariot (수레 또는 마차)8. La justice (정의)9. L'hermite (은둔자 또는 연금술사)10. La roue de la fortune (운명의 바퀴)
11. La force (힘)12. Le pendu (거꾸로 매달린 남자)13. L'arcane sans nom ou la mort (이름없는 비밀 또는 죽음)14. La tempérance (절제 또는 균형)15. Le diable (악마)
16. La Maison-Dieu (신-집)17. L'étoile (별)
18. La lune (달)19. Le soleil (해)20. Le jugement (심판)21. Le monde (세계)그리고 번호가 없는 마지막 카드 Le mat (광대)
나머지 카드들은 소비밀 (arcanes mineurs) 이라고 불리며, 소비밀과 대비밀의 여러 조합을 통하여 점을 치나 봅니다. 아무튼 따로 카드들은 그 그림의 특이함 때문에, 점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점술의 관점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서, 사회 현상으로서, 풍습의 역사로서 따로 카드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을 tarologie 라고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프랑쓰 국립 도서관에는 여러 벌의 희귀한 따로 카드들이 소중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 (15세기) 은 샤를 6세의 따로 (tarot de Charles VI) 라고 불리는 카드들로서, 불행히도 17장 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대부분을 위에 소개했으나,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방문하시길...

jeudi 13 novembre 2008

인내와 성공 (patience et réussite)

patienceréussite 은 각각 « 인내 » 와 « 성공 » 을 뜻하는 불어 단어들이지만, 또한 특별한 종류의 카드 놀이들을 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이 범주에 속하는 놀이들은 거의 대부분 혼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때 (patienter) 하는 놀이로서, 정해진 원칙에 따라 카드를 일정한 모양으로 늘어 놓거나, 또는 짝을 맞추어 가며 한 장도 남김 없이 모두 거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계 (horloge) 라고 불리는 빠씨엉쓰 (또는 레위씻) 는 52 장의 카드를 시계 모양으로 구성하는 놀이입니다. 즉 한시 자리에는 네 장의 1이 모두 모여야 하며, 여섯시 자리에는 네 장의 6이 모두 모여야 하는 식이지요. 이렇게하여 결과적으로 각각의 시간마다 그에 해당하는 숫자를 가진 네 장의 카드가 모두 놓이고, 가운데에는 왕이 네 장 놓여야 성공 (réussite) 입니다.

또, 삐라미드 (pyramide) 라 불리는 빠씨엉쓰는 애초에 카드들을 삐라미드 모양으로 늘어 놓고, 삐라미드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카드를 두 장씩 거두어 가는 놀이입니다. 이 때 조건은 두 카드의 합이 13을 이루어야 합니다 : 3과 10, 6과 7, 1과 왕비... 왕은 혼자서 13을 이루므로 한 장만 있어도 거두어 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삐라미드의 가장 꼭대기를 구성하는 마지막 한 장의 카드까지 모두 없애야 성공 (réussite) 입니다.

이외에도 14를 잡아라 (prenez le 14), 황제의 수행 (suite impériale), 몽떼-꺄를로 (Monte-Carlo), 죠제핀 (Joséphine), 숫자의 행진 (défilé des nombres), 초상화 회랑 (gallerie des portraits), 결혼 (mariage) 등, 특이한 이름을 가진 빠씨엉쓰와 레위씻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놀이들이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성공을 위해서는 인내를 가지고 침착하게 여러번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애초에는 (그리고 지금도) 이런 놀이들을 jeu de patience (참을성 놀이) 라 불렀습니다. 쥬 드 빠씨엉쓰는 카드 놀이 뿐 아니라, 그림 맞추기 퍼즐이나, 성냥개비 쌓기, 숫자 문제, 암호 해독, 복잡한 미로, 또는 뤼빅쓰 뀝 (Rubik's cube) 같이, 대개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 하게 되는, 그리고 어느 정도 인내심이 필요한 온갖 종류의 놀이들을 칭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카드를 가지고 하는 놀이를 그저 patience 라 부르게 되었지요. 따라서 patiencejeu de patience 는 조금 구별되는 용어입니다. 반면 patienceréussite 은 차이가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카드 놀이들은 사람에 따라 patience 라고도 불리고, réussite 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과정을 중시하느냐, 결과를 중시하느냐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 역사적으로는 patience 라는 말이 좀 더 일찍 등장했습니다. 이 단어 (카드 놀이라는 의미로서) 의 첫등장은 1779년 Mémoires sur les jeux (놀이에 대한 기록) 라는 저술에서였습니다. 또 1842년에는 오로지 빠씨엉쓰 놀이들의 규칙만을 모아 놓은 Livre des patiences (빠씨엉쓰 책) 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놀이와 단어는 곧 유럽 도처에 퍼져 오늘날까지도 영어, 독어, 러시아어 등에서는 patience 라는 불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대의 프랑쓰에서는 réussite 의 사용이 좀 더 일반화된 느낌이 듭니다.

vendredi 3 octobre 2008

passion « 수난 = 열정 »

불어 passion 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주로 « 열정, 격렬한 사랑 » 등의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 고통 » 의 뜻이었습니다. 특히, 신체적인 상처 보다는 정신적인 괴로움을 뜻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뜻이 발전하여,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너무 좋아할 때 느끼게 되는, 가슴이 거의 아픈 듯한 감정을 뜻하는 말이 된 것입니다. 이 단어는 그 강렬한 느낌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 불어에서는 너무 자주 쓰이다보니 의미가 좀 약화된 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Ma passion, c'est la musique 같은 문장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 말은 «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 는 뜻이지요. 물론 « 음악을 정말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좋아한다 » 는 의미일 수도 있겠으나, 문맥과 상황에 따라서는 그저 « 취미 생활로 음악을 즐긴다 » 정도의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거의 violon d'Ingres 의 동의어가 된 셈입니다.

한편, 원래의 뜻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다만 이 의미는 종교적인 맥락에서만 사용됩니다. la passion du Christ, 또는 절대적으로 la Passion 이라고 하면 « 그리스도의 수난 » 을 뜻하며, 꾸미는 말을 덧붙여, 다른 성인들, 순교자들이 겪은 박해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la passion de Jeanne d'Arc).

그리고 프랑쓰 사람들 중에도 fruit de la passion 의 의미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로 « 수난의 과일 » 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과일과 그리스도의 수난 사이에는 실제로는 아무 연관도 없지만, 수난꽃 (passiflore) 의 열매이다 보니 이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일의 강렬한 맛, 그리고 뜨거운 지방에서 온 열대 과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많은 프랑쓰 사람들이 이 과일의 이름을 « 정열의 과일, 사랑의 과일 » 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passion 은 또한 음악 용어로서, 성서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룬 부분에 음악을 붙인 « 수난곡 » 을 뜻합니다.

lundi 22 septembre 2008

orgue « 오르간 »

orguegens 이나 amour 처럼 성과 수의 사용이 조금 특별한 단어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첫눈에는 보통 단어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남성 단수 (un orgue) 는 한 대의 오르간을 가리키며, 남성 복수 (des orgues) 는 여러 대의 오르간을 가리키니까요.

문제는 여성 복수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때 특이한 점은 복수이면서도 여전히 단 한 대의 오르간을 칭하는 것입니다.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워낙 대규모이고 다양한 부위들 (수많은 관, 여러 층의 건반과 페달, 바람을 불어 넣는 송풍기, 음색을 조절하는 단추들과 기계장치들) 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한 대의 악기를 말할 때도 복수로 여기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un grand orgue = des grandes orgues = 한 대의 대형 오르간. 반면, des grands orgues = 여러 대의 대형 오르간.

물론 여성 복수형은 성당이나 큰 연주회장 등에 설치된 진짜 오르간에만 적용됩니다. 해먼드(식) 오르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전자 오르간) 이나 중세의 이동식 오르간, 바르바리 오르간 등은 다른 보통 남성 명사와 마찬가지 취급을 받습니다.

쌍-떼띠엔-뒤-몽 성당의 오르간
l'orgue ou les orgues de l'église Saint-Étienne-du-Mont

vendredi 19 septembre 2008

amour(s) « 사랑 »

불어를 잘,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대표적인 불어 단어로 잘 알려진 amourdélice 와 비슷한 문법적 특징을 가진 명사입니다. 즉 단수일 때는 남성으로, 복수일 때는 여성으로 취급됩니다. 예 : un amour pur ; des amours pures (et non purs).

그런데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사랑, 순수한 감정으로서의 사랑을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위의 원칙이 적용되나, 육체적인 사랑, 연애 관계, 사랑의 대상(물) 등을 뜻할 때는 복수이더라도 남성을 유지합니다. 예 : des amours secrets (et non secrètes).

단수일때는 비교적 일관적으로 남성으로 쓰이는 편이긴 하나, 드물게 여성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강조하고 싶은 의미에 따라, 발음의 조화로움에 따라, 성을 잘 골라서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이해할 때도 역시 조금 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사실 현대인들은 amour 의 성을 혼동하여 사용하는 추세이며, 유명한 작가들도 문학적인 암시와 각운 따위의 효과를 위해, 남성으로 써야 할 자리에 여성으로, 또는 그 반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amour 의 성이 고정되지 못한 것은 아마 단어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현대 불어 amour 는 라띠나어 amor 로부터 유래하긴 했는데, 대부분의 다른 불어 어휘들과는 달리, 라띠나어로부터 곧장 온 것이라기 보다는, 옥어를 한번 거쳐서 왔습니다. 만약 라띠나어가 자연스럽게 변했더라면 amor 는 불어에서 amour 가 아니라 *ameur 라는 형태를 띄었어야 정상입니다. 다른 예들 : calor (더위) => chaleur ; cantor (가수) => chanteur ; valor (가치) => valeur, etc. 반면 amoramour 로 변하는 것은 옥어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리고 바로 옥어에서 이 단어는 여성입니다. 옥어로부터 이 단어를 수입한 까닭에, 불어에서도 중세에는 amour 의 성이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our 로 끝나는 다른 단어들이 대부분 남성이므로, 그리고 원래 라띠나어에서도 amor 는 남성이었기 때문에, 불어 amour 를 남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로, 어떤 사람들은 남성으로, 또다른 사람들은 여성으로, 이럴 때는 남성으로, 저럴 때는 여성으로, 망설이며 사용하던 습관이 지금까지도 분명하게 고정되지 못한 채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amour, délice, hymne 등은 현대 불문법에서 두 가지 성이 있는 단어로 인정을 받은 경우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단어들이 지역에 따라, 공식적으로 정해진 성과는 반대의 성으로 쓰입니다. 한 예로, armoire (장롱) 는 공식적으로는, 그리고 프랑쓰 도처에서 여성으로 간주되지만, 루씨용 지방에서는 남성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고 합니다. 또 lièvre (산토끼) 는 사전에 남성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산토끼 중 특별히 수컷을 뜻함에도 불구하고, 뻬르삐녕 근처와 루에르그 지방에서는 여성 명사 취급을 받습니다. 성의 변화는 지역 뿐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도 나타납니다. doute (의심), poison (독약), navire (항해선) 등은 현재에는 모두 남성으로 고정된 단어들이지만, 17-18세기까지는 모두 여성 명사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예들은 모두, 문법적인 성이 얼마나 임의적이고 인위적인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불어 뿐 아니라, 성이 있는 외국어들을 배울 때 초보자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몇몇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지름길이 없습니다. 단어 하나하나 별로 무작정 외우는 수 밖에는...

samedi 23 août 2008

graduel « 화답송 »

« 층계, 계단 » 을 뜻하는 라띠나어 gradusgradus ad Parnassum 외에 또하나의 음악 용어 graduel 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répons granduel 이나, 흔히 줄여서 부르는 graduel 이라고만 하는 이 말은 꼭 음악 용어라기 보다는, 미사의 일부로써, 제 1 독서 뒤에 노래되는 응답송을 칭합니다. 이 기도문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약간의 논쟁이 있긴 하지만, 애초에는 제단이나 독서대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노래불렀기 때문인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로도 옛날에는 « 층계송 » 이라고 했었는데, 한동안 « 응송 » 이라고도 부르다가, 얼마전부터는 « 화답송 » 이라고 한답니다.

응송, 응답송, 화답송 같은 말은 불어 répons, 라띠나어 responsorium 등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노래를 부르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한 명의 독창자가 한 구절 (V) 을 노래하면, 나머지 신자 모두가 여기에 대한 « 답 » 으로 짧은 후렴구 (R) 를 노래하는 것이지요. 그러고나면 다시 독창자가 새로운 가사와 새로운 선율을 노래하고, 신자들은 다시 후렴구를 부르는 식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결국 아래와 같은 형식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R) - V1 - R- V2 - R - V3 - R - V4 - R, etc.

R 는 모두 합창이고 항상 똑같은 선율과 가사인 대신, V 는 모두 독창이고 새로운 가사이긴 하지만 반드시 선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는 독창자가 가사의 리듬과 길이에 따라 자유롭게 장식과 멜리슴 (mélisme) 을 넣어가며 부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천주교의 미사나 성무일도에는 이렇게 주고 받는 응답 방식으로 부르는 노래들이 여럿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라뒤엘인 것입니다.

현재는 그라뒤엘 또는 화답송을 노래로 부르는 일은 드뭅니다. 하지만 사회자 한 명이 기도문의 여러 구절을 읽는 동안 신자들이 중간중간 후렴구를 반복하는 그 낭독 방식은 여전히 음악적 기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jeudi 7 août 2008

세탁선 (Bateau-Lavoir)

세탁선 (un bateau-lavoir) 이란, 이름 그대로 빨래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배를 말합니다. 세탁기는 커녕, 집에 수도 시설 조차 없던 때에 - 대략 20세기 초까지는 빨래를 하기 위해 일부러 빨래감을 가지고 빨래터 (lavoir) 까지 찾아다녀야 했는데, 세탁선이 바로 그런 빨래터의 일종이었던 것입니다. 빨래터는 어차피 물가에 만들어야 하기에, 아예 강에 둥실 떠 있는 빨래터를 만든 것이지요. 세탁선으로 사용된 배들은 비교적 큰 규모로서, 안을 개조하여, 물을 퍼 올리는 시설, 물을 끓이는 시설, 빨래 말리는 장소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간혹 강을 따라 운항을 하며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세탁선도 있었지만, 대개 이런 배들은 운항을 하기에는 좀 낡은 배들을 개조한 것이라, 한 장소에 정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가서 더 자세한 설명과 사진들을 보세요.)

그런데 몽마르트르 산등성이에도 유명한 세탁선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배도 아니고, 빨래터도 아닙니다. 단지 이름만 그렇게 붙었을 따름이지요. 몽마르트르의 세탁선 또는 바또-라브와르 (le Bateau-Lavoir) 는 20세기 초반에 많은 화가들이 살았던 건물입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훗날 유명인이 되었지요 : 반 동겐, 모딜리아니, 그리쓰, 삐까쏘, etc... 또 오랜 기간 상주하지는 않았더라도 로렁쌍, 블라망끄, 뒤피, 마띠쓰, 브락, 레제, 드랑, 위트리요, 브란꾸지, 루쏘 등이 이 곳을 거쳐갔습니다. 그리고 화가들 외에도 아뽈리네르, 쟈리, 꼭또, 라디게, 스타인 남매, 쌀몽, 쟈꼽 등의 작가들 역시 자주 이 곳에 모였다고 하지요. 바또-라브와르는 그래서 20세기 초반에 명실공히 현대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무엇보다도 입체주의 또는 뀌비슴 (cubisme) 의 탄생지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서 1906년과 1907년에 걸쳐 삐까쏘가 아비뇽의 아가씨들 (Les Demoiselles d'Avignon) 을 그렸기 때문이지요.

애초에 피아노 공장이었던 이 건물은 1889년부터 화가들의 작업실로 변모되기 시작하였으며 1904년에 막쓰 쟈꼽이 바또-라브와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건물 모양이 세탁선들과 비슷하다하여). 지금은 아무리 상상력을 가지고 보아도 이 건물에서 전혀 배 모양이 연상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원래 건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지어졌던 건물은 1970년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그저 밋밋한 시멘트 벽만을 밖에서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 건물은 지금도 여전히 화가들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미 1차대전무렵부터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빛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몽마르트르에 살던 많은 화가들이 몽빠르나쓰로 이주하였기 때문이지요.

세탁선 (Bateau-Lavoir)

jeudi 17 juillet 2008

버찌철 (Le Temps des cerises)

Le Temps des cerises (버찌철, 버찌의 계절) 라는 노래는 랑떼르나씨오날과 더불어, 1871년의 꼬뮌 이후 크게 유행했던 저항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이 노래는 꼬뮌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고, 1866년, 제 2 제정 치하에서 작곡되었습니다. 하지만 1871년의 꼬뮌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 해 5월 말, 피의 주간 (Semaine sanglante) 이라고 불리는 한 주 동안, 수만 명의 꼬뮈나르 (communard = 꼬뮌에 참가한 사람) 들이 무참히 학살되고 나자, 이 사건과 이 노래 사이에 깊은 연관이 생겨났습니다. 아마도 마침 버찌철이 막 시작되고 있었고, 버찌와 피의 색깔이 닮은 데다가, 이 노래가 전하고 있는 쓸쓸함이, 너무나 짧게 끝나 버린 꼬뮌 정부 (약 두 달) 에 대한 아쉬움과 겹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이 노래의 작사가 졍-바띠스뜨 끌레멍 (Jean-Baptiste Clément) 은 비록 뒤늦게나마, 피의 주간에 학살당한 한 무명의 간호사에게 이 노래를 헌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금도 이 노래는 혁명가로, 좌익 사상을 담은 노래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사실 그냥 사랑의 노래로 보아도 좋습니다. 랑떼르나씨오날이나 라 마르쎄이예즈에 비하면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온순하고, 설사 혁명에 대한 상징을 찾아볼 수 있다고는 해도, 훨씬 덜 직설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음악적으로도 (작곡가는 엉뜨완 르나르) 랑떼르나씨오날이나 라 마르쎄이예즈보다 더 완성도가 높습니다. 필경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오늘날 버찌철은 정치적 상황을 떠나 많은 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랑떼르나씨오날이나 라 마르쎄이예즈보다 국제적으로는 덜 알려진 듯 하지만, 하야오 미야자끼의 팬들은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놀랍게도 빨간 돼지 (Porco rosso) 에 이 노래가 등장하니까요. 아마도 일본 가수가 부르는 듯 한데, 불어 발음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들을만 합니다. 영화 속에서 버찌철은 직접적인 정치적 의미는 없고, 그저 막연한 향수감을 불어 일으키는 아름다운 노래로만 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노래를 통해, 젊은 시절 노동 조합원으로 활동했던 미야자끼의 과거를 보기도 하더군요. 또한 1996년,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프렁쓰와 미떼렁 (François Mitterrand) 이 죽었을 때, 바르바라 헨드릭쓰 (Barbara Hendricks) 는 그에 대한 마지막 추모로 바스띠으 광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스띠으 근처에 사는 저는 그 때 집에 앉아서 창문으로 울려 들어오던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Quand nous chanterons, le temps des cerises,
Et gai rossignol et merle moqueur
Seront tous en fête.
Les belles auront la folie en tête
Et les amoureux du soleil au cœur
Quand nous chanterons, le temps des cerises,
Sifflera bien mieux le merle moqueur.

Mais il est bien court, le temps des cerises
Où l’on s'en va deux cueillir en rêvant
Des pendants d'oreille.
Cerises d’amour aux robes pareilles
Tombant sur la feuille en gouttes de sang
Mais il est bien court, le temps des cerises
Pendants de corail qu’on cueille en rêvant.

Quand vous en serez au temps des cerises,
Si vous avez peur des chagrins d’amour,
Evitez les belles.
Moi qui ne crains pas les peines cruelles,
Je ne vivrai point sans souffrir un jour.
Quand vous en serez au temps des cerises,
Vous aurez aussi des peines d’amour.

J’aimerai toujours le temps des cerises.
C’est de ce temps-là que je garde au cœur
Une plaie ouverte.
Et Dame Fortune, en m’étant offerte
Ne pourra jamais fermer ma douleur.
J’aimerai toujours le temps des cerises
Et le souvenir que je garde au cœur.

버찌철에 우리가 노래를 하면, 즐거운 꾀꼬리와 장난스런 메를 (새의 일종) 도 모두 모여 축제를 열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들은 머리에 공상을 담을 테고,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가슴에 태양을 담을 것이다. 버찌철에 우리가 노래를 하면, 장난스런 메를이 더 잘 지저귈 것이다.

하지만 버찌철은 너무 짧다. 둘이서 꿈을 꾸며 버찌를 따다가 귀걸이를 만드는 철, 저리도 아름다운 빛깔의 사랑의 버찌가 나뭇잎 위로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철. 버찌의 계절은 너무 짧다. 꿈꾸며 산호빛 귀거리를 따는 철...

버찌철이 왔는데도 사랑의 아픔을 겪기 싫다면, 미녀들을 피하라. 잔인한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는 살다 보면 언젠가 괴로울 것을 알고 있다. 버찌철이 오면 당신들도 사랑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나는 영원히 버찌철을 좋아할 것이다.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상처는 바로 이 계절에 생긴 것. 자연의 어머니도 내 상처를 절대로 아물게 못한다. 나는 영원히 버찌철을 좋아할 것이고, 마음 속에 그 추억을 간직할 것이다.


mercredi 16 juillet 2008

랑떼르나씨오날 (L'Internationale)

오늘날 라 마르쎄이예즈우파와 극우파의 « 책략 » 으로 인해 프랑쓰 국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 된 느낌이지만, 20세기 초반까지도 이 노래는 대표적인 저항의 노래로서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불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길을 걸은 노래가 하나 더 있습니다 : 바로 랑떼르나씨오날 !

랑떼르나씨오날1871년 6월, 꼬뮌 (Commune) 혁명의 실패와 그에 뒤따른 끔찍한 진압을 겪고난 후, 으젠 뽀띠에 (Eugène Pottier) 라는 정치가이자 시인이, 라 마르쎄이예즈의 선율에 맞춰 부를 수 있도록 가사를 쓴 노래입니다. 실제로 두 노래는 가사를 서로 바꿔불러도 꼭 들어 맞습니다. 그리하여 몇년간 이 노랫말은 라 마르쎄이예즈와 함께 불리웠는데, 1888년, 벨직 출신의 노동자 음악가 삐에르 드제떼르 (Pierre Degeyter) 가 여기에 새로운 선율을 작곡하여 붙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랑떼르나씨오날이 태어났습니다.

이 새로운 랑떼르나씨오날은 1888년, 릴 (Lille) 의 노동자 축제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선보임과 동시에 큰 호응을 얻었으며, 다음해 빠리에서 결성된 제 2 차 국제 노동자 연맹 (La IIe Internationale) 의 공식 찬가로 채택되었습니다. 이후로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의 사회당, 공산당, 노동 조합, 기타 좌파 성향의 여러 모임들에서 찬가로 불려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쏘련의 국가 (hymne national) 이기도 했답니다. 그 때문에 각 나라 말로 번역/각색된 노랫말이 있으며, 불어판 자체도 애초에 비해서 조금 달라졌습니다. 현재 프랑쓰에서 불려지는 랑떼르나씨오날의 1절 가사 :

Debout ! les damnés de la terre,
Debout ! les forçats de la faim,
La raison tonne en son cratère :
C’est l’éruption de la fin.
Du passé faisons table rase,
Foule esclave, debout ! debout !
Le monde va changer de base :
Nous ne sommes rien, soyons tout !
C’est la lutte finale.
Groupons-nous et demain
L’Internationale
Sera le genre humain.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우리말 판의 가사가 있긴 하지만, 번역이나 각색으로 보기에는 너무 내용이 달라, 직역을 해 보았습니다 :

일어서라, 이 땅의 저주를 받은이여 ! 일어서라, 허기진 죄수여 ! 이성이 들끓으니, 이제 마지막 폭발이다. 과거는 깨끗이 지우자. 노예의 군중이여, 일어서라, 일어서라 ! 세상의 기반을 바꿀 때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 되도록 하자. 자, 최후의 전투다. 함께 뭉치자. 내일은 모든 인류가 노동 연맹을 이룰 것이니.

저는 이 노래를 처음 귀로만 접했을 때, 마지막 구절을 « demain l'international sera le genre humain » 으로 들었습니다. 미래에는 남자, 여자, 백인, 흑인, 황인, 부자, 빈자, 프랑쓰인, 한국인, 등의 구별 없이, 지구 상에 오로지 단 하나의 인종, 즉 국제인이라는 인종 만이 생길 것이다, 라는 바람 또는 믿음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 정말 좋은 노래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l'international 이 아니라 l'Internationale 이더군요.^^ 이 문맥에서 l'Internationalel'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Travailleurs 의 준말로, 1864년 이후로 여러 차례 조성되었던 « 국제 노동자 연맹 » 을 가리킵니다. 결국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이 동맹에 참가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얘기지요.

아무튼, 똑같이 혁명가로 출발한 라 마르쎄이예즈는 오늘날 프랑쓰라는 한 기존 정권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어 버렸는데 비해, 랑떼르나씨오날은 아직도, 그 이름처럼 전 세계에서 저항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