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fichage des articles dont le libellé est opéra. Afficher tous les articles
Affichage des articles dont le libellé est opéra. Afficher tous les articles

mardi 2 octobre 2007

벨리니 (Vincenzo Bellini)

노르마의 작곡가 빈첸쪼 벨리니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알고보니 몇몇 놀라운 점들이 눈에 띕니다 :

1. 우선 매우 짧은 삶을 살았습니다. 1801년에 태어나서 1835년에 죽었으니 서른 네 해 밖에는 살지 못했네요.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벨리니는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 명성은 1827년 이후로 라 스깔라 (La Sacala) 를 위해 오뻬라들을 쓰면서 생겨났으니, 그의 본격적인 활동 기간은 채 십 년이 못됩니다. 이 짧은 기간동안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습니다.

2. 매우 의외롭게도, 벨리니는 퓌또 (Puteaux) 에서 죽었습니다. 퓌또는 빠리 서쪽의 볼품없는 변두리 도시인데, 국제적으로 유명한 오뻬라 작곡가가 왜 젊은 나이에 여기에 와서 죽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고 보니 별 특별한 이유는 없고, 벨리니의 친구였던 한 영국인 은행가가 퓌또에 있는 자기 별장을 빌려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퓌또에 별장을 사는 부유한 외국인이 있을까 몹시 의심스럽지만, 이백년 전에는 상황이 달랐나 봅니다. 사실 그 때 퓌또는 한적한 시골이었던 것이지요. 벨리니는 빠리 중심가에 자기 아파트 (appartement) 가 있긴 했지만 너무 좁아서 항상 불만이었고, 또 자주 장이 아픈 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휴양도 할 겸 퓌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여기서 그의 마지막 오뻬라 청교도들 (I Puritani) 을 작곡한 후 죽었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는데, 로씨니 (Rossini) 의 요청으로 해부를 해 본 결과 장에 구멍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3. 벨리니는 그의 짧았던 일생 내내 피해망상증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마지막 수년간은 로씨니와 도니제띠에 대한 질투로 괴로와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선배격인 로씨니에 대해서는 덜했지만, 이딸리아에서나 프랑쓰에서나 그의 가장 큰 경쟁자였던 도니제띠를 향한 벨리니의 증오는 거의 광적이었다고 합니다. 설사 그의 작품이 도니제띠보다 더 좋은 평을 받고 더 많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을 때도 벨리니는 전세계가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망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빠리 시절 동안 벨리니를 자주 만났던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는 벨리니를 « 구두를 신은 한숨 (un soupir en escarpins) » 이라고 묘사했습니다. 한숨 쉬느라고 바빠서 벨리니는 결국 인기와 명예를 별로 행복하게 누리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의 장에 구멍이 난 게 정신적인 고민과 완전히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Moralité = Vivons heureux !

Portrait de Bellini, attribué à Giuseppe Cammarano, vers 1826.
Naples, Museo di San Martino

lundi 1 octobre 2007

노르마 (Norma)

이딸리아 작곡가 빈첸쪼 벨리니 (Vincenzo Bellini) 의 대표작인 노르마아스떼릭쓰 만화와 꽤 연관된 주제를 가진 오뻬라입니다. 펠리체 로마니 (Felice Romani) 의 대본에는 정확한 연도와 장소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단지 « 골 지방의 성스러운 숲 (nelle Gallie, nella foresta sacra) » 이라고만 되어 있지만, 내용을 보면 로마의 골 정복이 이루어진지 얼마 안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략 기원전 50년 무렵 (아스떼릭쓰와 같은 시대) 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오뻬라의 주인공들도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모두 로마에 대한 적대심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한 여자 만이 예외인데, 바로 주인공인 노르마입니다. 여자 드뤼이드 (femme druide ou druidesse) 인 노르마는 순결을 맹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인 뽈리오네 (Pollione) 를 사랑하여 몰래 두 아이까지 두었으므로, 골인들과 로마인들의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뽈리오네는 더 젊은 여자 아달지자 (Adalgisa) 와 새로 사랑에 빠져 노르마와 아이들을 버리고 로마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에 크게 분노한 노르마는 뽈리오네는 물론 아이들마저 죽이려 하지만, 결국은 골인들 앞에서 자신이 동족과 종교를 이중으로 배신했음을 고백한 후, 스스로 제물이 되어 불길 속에 몸을 던집니다.

물론, 대부분의 낭만주의 오뻬라들이 그러하듯, 노르마에서 골은 그저 이국적인 색채를 주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지요. 따라서 모순들과 피상적인 암시들로 가득합니다. 예를 들어 오뻬라의 첫 장면은 드뤼이드들이 황금낫으로 기 (gui) 를 따는 예식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아스떼릭쓰 만화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골 종교의 가장 잘 알려진 측면이지요. 또 오뻬라의 마지막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나, 달을 향한 기도 (유명한 아리아 « Casta diva ») 등도 대표적인 끌리셰들입니다.

황금낫과 기를 손에 들고 메니르 기념물 앞에 서 있는 여자 드뤼이드 (La Druidesse). 19세기 화가 라 로슈 (La Roche) 의 그림.

1831년 밀라노 초연에서 아달지자를, 1835년 빠리 초연에서 노르마를 노래한 쥴리아 그리지 (Giulia Grisi)

한편 노르마의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상당히 모호합니다. 오뻬라 대본에서 그녀는 때로는 여자 드뤼이드 (druidessa) 라 칭해지고, 때로는 예언녀 (veggente) 라 불리는데, 쎌트 종교에서 이 둘은 서로 다른 역할, 다른 계층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드뤼이드라고 해서 반드시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없었고, 지역마다, 부족마다, 조금씩 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드뤼이드가 순결을 지켜야 한다면, 어째서 노르마만 지켜야하고 그녀의 아버지인 오로베조 (Oroveso) 는 지키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왜냐면 오로베조야말로 « 드뤼이드들의 우두머리 (capo dei druidi) » 인 것으로 명시되니까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짜 우두머리는 마치 노르마인 것으로 그려집니다. 모두들 노르마의 한마디에 부들부들 떨고, 노르마가 전쟁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며, 기를 따는 것도, 희생 예식을 집전하는 것도 노르마입니다.

여자 드뤼이드인 것으로 보이는 나무 조각 (기원후 1세기). 프랑쓰 중부 샤말리에르 (Chamalière, Puy-de-Dôme) 에서 발견.

또한 프로꼰쑬인 뽈리오네가 노르마와, 그리고 뒤이어 아달지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사실 좀 억지스럽습니다. 로마가 파견한 프로꼰쑬 (proconsul) 은 골 전체를 다스리는 매우 높은 직책 (오늘날의 대통령에 비할 수 있는) 으로서, 혼자서 밤에 숲 속을 거닐며 일개 식민 부족의 드뤼이드와 몰래 사랑을 나누는 것은 거의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뽈리오네 (프랑꼬 꼬렐리) 와 노르마 (마리아 꺌라쓰).
제피렐리의 연출. 1964년 빠리 오뻬라.

물론 이 모든 것은 로마니 혼자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오뻬라의 원작이었던 알렉썽드르 쑤메 (Alexandre Soumet) 의 운문 희곡, 노르마 또는 유아살인 (Norma ou l'infanticide) 에서 이미 설정되었던 상황들이었지요. 중요한 차이점이라면, 원작에서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노르마가 실제로 아이들을 살해합니다. 즉, 원작에서는 노르마의 분노와 절망이 훨씬 더 극단적이고, 골인들과 오로베조의 태도도 훨씬 더 격렬하며, 숲 속에 귀신과 유령이 난무합니다. 그나마 로마니의 각색본이 보다 절제되고 이성적인 셈입니다.

전형적인 19세기 초반 이딸리아 오뻬라인 노르마는 음악적으로도 큰 독창성은 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비록 잘 작곡된 음악이고, 나름대로 아름다운 대목들이 여기저기 있긴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눈을 쥐어짜도, 쇼빵이 노르마를 보고서 흘렸다는 눈물은 나오지 않네요. 하지만 골을, 그리고 더 넓게는 쎌트 문화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들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노르마는 흥미를 가져볼 수 있는 오뻬라입니다.

vendredi 20 avril 2007

리골레또 (Rigoletto) 와 만또바 (Mantova)

베르디의 또다른 오뻬라 리골레또 역시 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쓰는데 (라 트라비아따처럼), 이것은 고유 명사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말은 실제 인명이 아니고 광대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뜻은 « 웃긴 녀석 » 정도 ? 그리고 rigoletto 는 이딸리아에는 없는 말로, 불어의 rigoler 동사를 변형시켜 만든 말입니다.

rigoler 의 어원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rireriole 이 만나서 생긴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하고들 있습니다. rire 는 현재 불어에서도 널리 쓰이는 « 웃다 » 라는 뜻의 동사이고, riole 은 지금은 사라진 옛 불어로, « 장난, 즐거움, 놀이판, 난장판 » 등의 뜻이었습니다. rire 가 보다 넓은 의미, 중립적 의미에서 « 웃다 » 라면, rigoler 는 « 깔깔거리다, 히죽거리다, 즐거워하다, 장난치다, 농담하다, 비웃다 » 등등의 뜻이 있지요.

Rigoletto 의 대본은 역시 삐아베가 썼는데, 그가 주인공의 이름을 불어에서 찾은 것은, 이 오뻬라의 원작이 프랑쓰의 희곡이었기 때문입니다 : 빅또르 위고의 왕이 즐거워하다 (Le roi s'amuse). 원작에서는 무대가 프렁쓰와 1세의 궁정이었고, 주인공의 이름은 트리불레 (Triboulet) 였습니다.

그런데 트리불레는 실존 인물로서 루이 12세와 프렁쓰와 1세, 두 왕을 섬기며 르네썽쓰 시대를 살았던 광대였습니다. 트리불레라는 이름은 궁정에서 붙여준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정확치는 않지만, Ferrial 또는 Févrial 또는 Le Févrial 또는 Le Feurail 였답니다. 원래는 농부였는데, 특이한 외모와 뛰어난 재치 덕에 유명해져서 심지어 왕의 눈에까지 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는 몇몇 일화들을 빼고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왕이 즐거워하다 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순전히 위고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은 초연 (1832년 11월 22일) 다음날로 즉시 공연 금지되었습니다, 왕정을 모욕했다는 핑계 하에. 그리고 이 금지는 오십여년 뒤에나 풀렸답니다.

1851년에 삐아베와 베르디가 이 희곡을 오뻬라로 만들려 했을 때도 역시 외스터라이히 제국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무대를 만또바로 옮겼다지요 (당시에 이미 만또바 공국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프렁쓰와 1세는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만또바의 공작으로 바뀌었구요.

Gilda 역시 원작에서는 Blanche 라는 이름이었고, 질다를 죽이는 Sparafucile 는 Saltabadil 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프랑쓰 이름 Saltabadil 이 별다른 뜻이 없는데 비해, Sparafucile 는 번역이 가능한 이름입니다. sparare (= 쏘다) 의 3인칭 현재 + fucile (= 총). 게다가 그의 직업이 청부살인자니, 아주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그가 질다를 죽일 때, 총이 아니라 칼로 죽이는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아무튼 죽은 블렁슈/질다를 원작에서는 쎈 강에다 던지려 하는데, 오뻬라에서는 당연히 민치오 강에 던지려 합니다.

민치오 (Mincio) 강은 뽀 강으로 합류되기 전에 만또바에 세 개의 호수를 주었습니다. 이 호수들은 특별한 이름은 없고, 그저 물결의 흐름에 따라, Lago superiore (윗 호수), Lago di mezzo (중간 호수), Lago inferiore (아래 호수) 라 불립니다. 중간 호수와 아래 호수가 만나는 지점에 유명한 만또바 공작의 궁이 있습니다.

Palazzo ducale di Mantova = Palais ducal de Mantoue

이 중세 풍의 외모를 지닌 궁은 밖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워낙 꼬불꼬불하고 복잡하여, 흔히 이딸리아말로 città-palazzo (도시-궁) 라고 부른답니다. 안에는 공중 정원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정원들이 있고, 본궁 외에도 중세의 요새였던 성 죠르죠 성과 특별히 음악적인 이유 때문에 지어진 성녀 바르바라 궁정 성당 (Basilica palatina di S. Barbara) 등 여러 건물들이 있습니다.

Castello di S. Giorgio = Château de St. Georges

실내 대부분은 안드레아 만떼냐 (Andrea Mantegna) 와 삐자넬로 (Pisanello) 에 의해 장식되었는데, 특히 만떼냐가 벽화를 그린 부부의 방은 매우 유명합니다.

Camera degli sposi = Chambre des époux

여기서 부부란 루도비꼬 3세 곤자가 (Ludovico III Gonzaga) 와 그의 부인 바르바라 디 브란데부르고 (Barbara di Brandeburgo) 를 말합니다. 호헨졸레른 (Hohenzollern) 가문의 이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루도비꼬 3세는 당시까지 별볼일 없던 만또바를 밀라노와 베네치아에 버금가는 위치로 올리고, 그 후로 4세기 동안 지속될 화려한 시대의 막을 열지요.

부부의 방 내부 북쪽 벽화. 왼쪽에 앉아 있는 두 남녀가 루도비꼬와 바르바라

또 현재 남아있는 오뻬라들 중 가장 오래된 오뻬라인 몬떼베르디 (Claudio Monteverdi) 의 오르페오 (L'Orfeo) 가 1607년 초연된 곳도 이 궁이었습니다. 그리고 80년대에 졍-삐에르 뽀넬 (Jean-Pierre Ponnelle) 이 연출한 오뻬라-영화 리골레또는 모든 장면이 실제로 만또바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공작의 궁 외에도 떼 궁전 (Palazzo di Tè) 등, 만또바의 유적지들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관광용으로나 보면 모를까, 연출 자체는 뽀넬답게 무척 지루합니다.)

mercredi 18 avril 2007

라 트라비아따 (La Traviata)

mittere 에서 파생된 말들과는 무관하게, 현대 프랑쓰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 보내다 » 라는 동사는 envoyer 입니다. 이 말은 en- + voie (길) + -er (1군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 로 구성되어서, « 길에 놓다, 길을 떠나게 하다, 보내다 » 라는 뜻이지요. 이딸리아말로는 inviare 라고 하고,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구성된 합성어 입니다. in- + via (길) + -are (1군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

길에서 벗어난 경우, 길을 똑바로 가지 않고 돌아가는 경우에는 en- 을 - 로 대체하여, dévoyer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어 단어는 도덕적인 의미로만 쓰입니다 : « 정도에서 벗어나다 ». 범죄를 저지르거나, 문란한 생활을 할 경우 쓰는 말이지요. 실제로 물리적으로 길을 돌아서 가는 경우에는 dévier 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딸리아말로도 deviare 라고 하면 « 실제로 우회하다 » 라는 뜻이고, « 도덕적 의미로 우회하다 » 라고 할 때는 traviare 라고 합니다. tra- 라는 말은 라띠나어 trans 가 줄어서 생긴 접두사로, « 넘다, 가로지르다, 건너다 »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traviare 는 « 정도를 똑바로 걸어가지 않고 그 밖으로 넘어서 옆길로 갔다 » 는 말이지요.

traviare 의 과거분사가 traviato, 여성형은 traviata 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관사를 붙여서 명사화 시키면 la traviata 가 되지요. 베르디의 오뻬라 La Traviata 는 한 꾸르띠잔 (courtisane = 일종의 고급 창녀) 의 얘기를 주제로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라 트라비아따가 무슨 뜻인지, 왜 우리 말로 번역을 안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딱 한 마디로 번역하기가 힘든 말이더군요. 물론 간혹 « 춘희 » 라고도 하지만, 그것도 정말 딱 들어 맞는 말은 아니고, 그렇다고 « 정도를 걷지 않고 옆길로 샌 여자 » 라고 할 수도 없을테고 말이죠.^^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여자가 올바른 길을 걷지 않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사실은 실존 인물이었답니다. 원래 이름은 알퐁씬 쁠레씨 (Alphonsine Plessis).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생스러운 막일을 많이 하다가, 미모 덕분에 한 부자의 눈에 들어 그 때부터 빠리의 상류 사회를 드나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뒤늦게 공부도 많이 해서, 당대 꾸르띠잔들 중 가장 교양이 뛰어났다는 평을 들었고, 수많은 작가, 철학가, 음악가들이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다지요. (그 중 떼오필 고띠에, 알렉썽드르 뒤마 피쓰, 프란츠 리스트...) 그리고 이름도 마리 뒤쁠레씨 (Marie Duplessis) 로 바꾸었답니다. 차마 de 를 붙이지는 못하고, du 라도 붙이면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일까 해서 그랬나 봅니다. 그러다가 아제노르 드 그라몽 (Agénor de Gramont) 과 사랑에 빠졌고, 프랑쓰의 매우 오래된 귀족 가문인 드 그라몽 집안에서 이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람에 결국 헤어졌지요. 실제로 두 젊은 연인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뻬라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헤어진 후로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마리는 다른 남자와 결혼도 하였었으나 얼마 못가 이혼하고, 결국은 스물 세 살의 나이에 폐병에 걸려 죽었고, 아제노르는 나뽈레옹 3세의 치하에서 외교관, 외무부 장관, 등을 지내며 오래도록 떵떵거리며 살았지요. 게다가 외교를 잘 못하는 바람에 독불 전쟁 (1870) 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기도 했답니다.

알렉썽드르 뒤마 피쓰는 직접 마리 뒤쁠레씨의 연인이기도 했었는데,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와 아제노르 드 그라몽 사이의 사랑을 주제로 La Dame aux camélias (동백 부인) 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소설을 개작하여 희곡으로 바꾸었고, 베르디의 오뻬라는 바로 이 희곡판을 기본으로 하지요. 뒤마는 자기 작품의 주인공들에게 Marguerite Gautier 와 Armand Duval 이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베르디의 오뻬라에서는 Violetta Valéry 와 Alfredo Germont 으로 이름이 또다시 바뀌었습니다. 각본가 삐아베(Francesco Maria Piave) 가 구상해 낸 이 이름들은 조금 웃긴 것이, 이름은 이딸리아식이고 성은 불어식이죠. (비올레따의 친구인 Flora Bervoix 역시)

1963년, 프레데릭 애쉬튼 (Frederick Ashton) 이 마곳 폰테인 (Margot Fonteyn) 을 위해 안무한 발레, 마르그릿과 아르멍 (Marguerite and Armand) 에서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다시 뒤마가 지은 이름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실제 인물은 현재 빠리의 몽마르트르 묘지에 알퐁씬 쁠레씨라는 본명으로 묻혀있습니다.

dimanche 8 avril 2007

Quelques photos en rapport avec « La Bohème »

Nadar, Henry Murger (vers 1860)

Giacomo Puccini, Giuseppe Giacosa, Luigi Illica
(photographe et date inconnus)

André Kertesz, Paris Quartier latin (1926)

Une scène extraite du film Sous les toits de Paris de René Clair (1930)

Le café Momus, 17, rue des Prêtres
Fusain de Thomas Boys (1819)

Rue des Prêtres où il y avait le café Momus. Celui-ci fut remplacé en 1850 par un marchand de couleurs, comme on le voit sur cette photo anonyme. À comparer avec la photo précédente.

La Barrière d'Enfer

Luigi Comenci et Simone Giannozzi,
pendant le tournage de L'Incompreso (1966)
(photographe inconnu)

samedi 7 avril 2007

Comparaison... de « La Bohème » (6)

6. Notes et bibliographie


Notes
  1. Voir La Bohème, programm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saison 1995-1996, pp. 35-37.
  2. Pour les numéros des répliques, nous nous référons à La Bohème, coll. L'Avant-Scène Opéra, n° 20, 1994.
  3. Manfred KELKEL, Naturalisme, vérisme et réalisme dans l'opéra, Vrin, p. 245.
  4. Damien COLAS, « Pour un essai de définition du vérisme musical », in La Bohème, programm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 70.
  5. L'expression est de Gilles MACASSAR, critique musical de Télérama.
  6. Cela dit, ce n'est pas une invention originale de Miller. C'est une interprétation assez courante dans des mises en scène de La Bohème, par exemple, celle très connue de Franco Zeffirelli avec Mirella Freni et Luciano Pavarotti, dans les années 60.
  7. Pour la partition, nous nous référons à la la version réduite piano-chant. En l'occurrence, voir pp. 83, 31 et 49.
  8. Ibid., p. 55.
  9. Pierre FLINOIS, « Vidéographie », in La Bohème, coll. L'Avant-Scène Opéra, p. 141.


Bibliographie

  • La Bohème. Programm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saison 1995-1996.
  • La Bohème, Éditions Premières Loges, coll. L'Avant-Scène Opéra, n° 20, 1994.
  • Cinéma et Opéra, Éditions Premières Loges, coll. L'Avant-Scène Opéra, n° 360 (comme série cinéma) et n° 98 (comme série opéra), s. d.
  • Encyclopédie de la musique, La Pochotèque, 1992.
  • CHION, Michel, La musique au cinéma, Fayard, 1995.
  • CLEMENT, Catherine, L'opéra ou la défaite des femmes, Grasset, 1979.
  • KELKEL, Manfred, Naturalisme, vérisme et réalisme dans l'opéra, Vrin, 1984.
  • LEIBOWITZ, René, Histoire de l'opéra, Bucher/Chastel, 1987.
  • LEIRIS, Michel, Operratiques, POL, 1992.
  • MURGER, Henry, Scènes de la vie de bohème, Gallimard, coll. folio, n° 1968, 1988.
  • PISTONE, Danièle, L'opéra italien au XIXe siècle de Rossini à Puccini, Champion, 1986.
  • PUCCINI, Giacomo, La Bohème, réduction pour le chant et le piano par Carlo Carignani, Ricordi, 1998.

Comparaison... de "La Bohème" (5)

4. Mise en scène de Luigi Comencini

5. Conclusion

Avant de terminer, il faudrait jeter un coup d'œil sur la perception du compositeur. La musique de La Bohème est composée d'un certain nombre de motifs qui sont liés à un personnage, à un lieu ou à une situation. Contrairement aux letimotivs wagnériens, les motifs pucciniens ne subissent pas de modifications notables et reviennent tels quels à différents endroits de l'œuvre. Explicites, il sont difficiles à ignorer. Par exemple, dans le premier tableau, chaque fois que Schaunard évoque le Quartier latin (rép. 89 et 160), on entend un motif particulier, appelé le motif du Quartier latin. Le même motif ouvrira le deuxième tableau et dominera tout le tableau, car il se déroule dans... le Quartier latin. (7)

Les autres motifs fonctionnent généralement de la même façon. Or, le motif de Mimi apparaît pour la première fois au moment de sa rencontre avec Rodolphe (rép. 185). (8) Cela signifie que Puccini n'avait pas compris l'intrigue de l'opéra comme Commencini. Pour correspondre à l'interprétation de Comencini, ce motif aurait dû résonner dès la réplique 2. Malheureusement, Puccini ne semble pas avoir aperçu les défauts du livret qu'il suit littéralement.

Mais la relation entre la musique et l'action est une autre problématique qui demande une étude spéciale à part entière. Et comme nous l'avons déjà dit, il est difficile de parler le vérisme musical. Concernant exclusivement l'action, on peut conclure que Comencini est le premier et reste à ce jour pratiquement le seul à avoir "rendu l'ouvrage parfaitement clair et intelligible" (9), ainsi qu'à avoir donné au personnage féminin la vraie dimension humaine acceptable.

6. Notes et bibliographie

vendredi 6 avril 2007

Luigi Comencini è morto + Comparaison... de « La Bohème » (4)


Luigi Comencini è morto

며칠전부터 쓸데 없이 라 보엠에 관한 글을 계속하여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루이지 꼬멘치니가 연출한 라 보엠에 대한 글을 올릴 예정이었는데, 오늘 아침 뉴쓰에서 들었습니다 : 꼬멘치니가 죽었다고. 가난한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 잊혀진 사람들,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해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던 꼬멘치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저의 가슴 속에 작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Dedico il mio povero scritto alla sua memoria.

----------------------------------------------------------

3. Mise en scène de Jonathan Miller

4. Mise en scène de Luigi Comencini

Contrairement à celle de Miller, la mise en scène de Comencini nous étonne dès les premières minutes. D'abord, la première image montre les toits gris et froids des immeubles parisiens et les lumières douces qui émanent des petites fenêtres des mansardes. Cette image est à la fois réaliste et poétique. Et le mouvement de la caméra est beaucoup plus élégant que celui de la captation pour la version de Miller.

Deuxièmement, une des plus grandes différences avec toutes les versions scéniques ou cinématographiques de La Bohème, c'est qu'ici on voit Mimi très tôt, dès la réplique 2. Elle est chez elle, assise sur une chaise, brodant. Et elle entend ses voisins se plaindre du froid. Toute idée part de là : c'est Mimi qui va prendre toutes les initiatives ! Sans doute, elle a déjà entendu et vu Rodolphe bien avant que notre histoire commence. Elle est attirée par lui, s'intéresse à lui, voudrait le connaître. Alors, elle cherche une occasion. Comme les quatre garçons font beaucoup de bruit et que les cloisons des mansardes sont minces, elle les entend naturellement, mais elle les écoute aussi avec attention. C'est ainsi que dans cette version, quand Benoît arrive chez Rodolphe, elle entrouvre sa propre porte pour voir ce qui se passe. Mimi est assez curieuse. Cette curiosité est manifeste aussi quand elle rencontre Musette.

Comme elle « épie » ses voisins, elle comprend qu'ils sont partis sauf Rodolphe. Alors, elle veut tenter sa chance. C'est pourquoi elle va le trouver avec une bougie qu'elle va éteindre exprès, pour avoir un prétexte. Elle fait semblant d'être fatiguée et feint de perdre la connaissance. Et elle guette un moment idéal pour poser rapidement la clé par terre. C'est un autre prétexte pour revenir. Et elle éteint la bougie de nouveau. C'est une invitation au jeu à laquelle Rodolphe répond en soufflant sa bougie lui aussi.

Ainsi, dans cette mise en scène, tous les hasards et toutes les contradictions du livret disparaissent. Mimi a tout préparé et Rodolphe est suffisamment séduit qu'il participe volontiers au jeu de Mimi. Il n'y a plus de problème d'incohérence de l'obscurité et de la lumière. Si elle est là, cette opposition se présente dans une autre dimension. Quand Rodolphe termine son air (rép. 230), Mimi n'est plus dans la pièce obscure mais dans le couloir où il y a de la lumière. Elle le fait venir vers elle par sa chanson dans laquelle elle dit son vrai nom, Lucia (rép. 231), un prénom associé à la lumière.

La fin du premier tableau où elle lui demande de l'accompagner au Momus s'explique de la même façon. Encore une fois, c'est elle qui prend l'initiative. Quand elle lui dit, « Io t'amo » (rép. 267), ces mots, qui semblaient si soudains, hors contexte et presque vulgaire chez Miller, ne sonnent pas faux chez Comencini, car celui-ci nous a fait savoir que Mimi aimait Rodolphe depuis quelque temps.

Il est vrai que c'est une version filmique et que la plupart de ces détails ont été réalisés grâce aux procédés cinématographiques : les divers plans dans les divers lieux, les expressions des visages, le cache-cache de la clé, et surtout une image fantastique qui représente Mimi nimbée de la lumière lunaire. Tout cela est pratiquement impossible dans une salle d'opéra. Je pense qu'en somme, La Bohème est un sujet beaucoup plus adapté au cinéma qu'au théâtre. Dans tous les cas, il semble absurde de le monter sur une scène aussi vaste que celle de l'Opéra Bastille. Mais il ne suffit évidemment pas de le filmer paresseusement. Il faut savoir démêler un livret si mal ficelé. Par exemple, La Bohème de F. Zeffirelli, même quand c'est un film, ne se différencie guère de sa propre version théâtrale et reste donc confus.

Il a fallu le talent et l'intelligence de Comencini pour que la dimension vériste de cet opéra soit respectée.

5. Conclusion

jeudi 5 avril 2007

Comparaison... de « La Bohème » (3)

2. Livret

3. Mise en scène de Jonathan Miller

Bien que régulièrement reprise à l'Opéra National, c'est une mise en scène sans grande originalité. Elle « ne brille guère par son invention »(5), et elle ne propose aucune réponse à mes questions. Elle suit assez fidèlement le livret, sans créativité ni crédibilité, et ne tente nullement de remédier aux contradictions du livret.

D'abord, le décor immense paraît complètement incongru. Il est cent fois plus grand qu'une mansarde « véritable ». Le plafond est tellement haut qu'on ne voit même pas s'il est en pente. Sur les grands murs, il y a des affiches gigantesques, et la porte et la fenêtre sont également colossales. Si l'on ne connaissait pas l'opéra, on ne saurait pas que c'est dans une mansarde que l'action se déroule. Étant donnée la taille générale des salles d'opéra du monde, ce genre d'« erreur » est assez fréquent dans des mises en scène de La Bohème, mais dans cette version, la proportion semble encore plus exagérée.

Par contre, les objets petits, mais importants pour la compréhension de l'histoire, tels que la bougie et la clé de Mimi sont (ou paraissent) encore plus petits et ne peuvent pas être aperçus par les spectateurs présents dans la salle, même ceux qui sont proches de la scène (ce qui était mon cas). Alors, on ne comprend pas que Mimi a perdu sa clé et que Rodolphe l'a retrouvée et cachée. On ne voit pas très bien non plus qu'il a pris sa « gelida manina » (rép. 230) en tâtonnant. En fait, presque tous les gestes des acteurs-chanteurs deviennent insignifiants, surtout dans la scène de la rencontre entre Mimi et Rodolphe où les actions sont réduites et délicates. Par conséquent, on ne peut pas obtenir une idée plus développée sur le personnage de Mimi que celle qu'on avait eu en lisant le livret.

Cependant, deux points différents des indications du livret méritent d'être appréciés :

  1. Rodolphe éteint sa bougie lui-même. Cela est beaucoup plus crédible que la bougie qui s'éteint toute seule. Comme il le dit au dernier tableau de l'opéra, il a aidé le destin (rép. 817). (6)
  2. Pendant que Benoît réclame le loyer, sa femme l'attend dans le couloir. Attendu, Benoît n'insiste pas trop quand les « quatre mousquetaires » le chasse. Autrement, un propriétaire qui abandonne aussi facilement serait peu réaliste.

Enfin, il faut signaler que l'interprétation musicale de l'orchestre et des chanteurs est excellente.

4. Mise en scène de Luigi Comencini

mercredi 4 avril 2007

Comparaison... de "La Bohème" (2)

1. Introduction

2. Livret


Il est communément admis que La Bohème de Puccini est un chef-d'œuvre. Mais en ce qui concerne le livret, je contesterais cette opinion, car il y a trop d'incohérences. Celles-ci sont sans doute dues à l'effort surhumain de réduire les vingt-trois chapitres des Scènes de la vie de bohème d'Henry Murger en quatre tableaux. En effet, les quatre personnes qui ont participé à la création de l'opéra, c'est-à-dire, Giuseppe Giacosa et Luigi Illica, les deux librettistes, Giacomo Puccini, le compositeur et Giulio Ricordi, le célèbre éditeur, avouent dans leurs correspondances réciproques la difficulté de ce travail. (1)

Bien que chaque phrase, prise individuellement, puisse être considérée comme magnifique, l'ensemble du livret est mal construit. Particulièrement dans le premier tableau, il y a beaucoup de contradictions, et il semble que c'est le hasard qui domine l'action. Surtout, le moment de la rencontre de Rodolphe et de Mimi semble totalement illogique.

Mimi vient chez Rodolphe pour demander du feu en disant que sa bougie est éteinte. Or, elle est la voisine de Rodolphe (réplique 215, "Importuna è la vicina...") (2). Elle habite, elle aussi, une mansarde sur le même palier que Rodolphe (réplique 233, "...Vivo sola, soletta là in una bianca cambretta : gaurdo sui tetti e in cielo...") D'ailleurs, on sait bien qu'elle allait rentrer chez elle, car elle avait sa clé dans la main. Pas de lumière, soit, mais elle était pratiquement devant chez elle. On ne comprend alors pas pourquoi elle a absolument besoin de frapper chez un voisin. Il lui aurait été plus facile d'entrer directement chez elle.

Son évanouissement dès l'entrée chez Rodolphe (rép. 193) paraît aussi trop irréaliste et la nouvelle extinction de sa bougie (rép. 208), suivie de celle de la bougie de Rodolphe (rép. 210), est vraiment peu crédible.

Et puis, à cause de la disparition de ces deux bougies, "la pièce est plongée dans l'obscurité" (rép. 210) ! Cette obscurité est tellement complète qu'ils doivent bouger à tâtons (rép. 211). Mais curieusement, au lieu de rallumer la bougie, ils préfèrent chercher la clé à tâton dans le noir !

Tout ces contradictions atteignent un sommet quand Rodolphe dit, "...Ma per fortuna è una notte di luna, e qui la luna l'abbiamo vicina..." (rép. 230). Les didascalies indiquent aussi que "par la fenêtre ouverte entrent des rayons de lune et la chambre en est tout éclairée" (rép. 238) et que Mimi, s'approchant de la fenêtre, "est éclairée par la lune" (rép. 247). Rodolphe admire ce "doux visage nimbé de suave clarté lunaire" (rép. 250). La chambre n'était-elle donc pas dans l'obscurité totale ?

Un autre point illogique est le moment où Rodolphe s'étonne quand Mimi propose de l'accompagner au café Momus (rép. 260), alors que lui-même, juste quelques minutes auparavant, a dit à ses amis de leur (Rodolphe et Mimi) garder de la place parce qu'ils, tous les deux, y seraient bientôt (rép. 244).

Dans un livret aussi contradictoire, comment interpréter les personnages, et surtout le personnage féminin qui est notre principal intérêt ? Tout au long de l'œuvre, Mimi apparaît tantôt timide et ingénue, tantôt coquette et maligne, tantôt vacillante comme sa bougie, tantôt aussi exubérante que Musette. Cette complexité du personnage vient certainement de la fusion des personnages de Murger. Les deux librettistes de l'opéra ont voulu mettre Mimi et Francine, deux grisettes du roman, dans un seul personnage. Mais apparemment, ils n'avaient pas d'idée précise de ce qu'ils voulaient créer, car le résultat reste assez confus. De plus, en amalgamant les deux personnages en un seul, ils ont ajouté une image éthérée qui n'appartenait à aucun. Cette idéalisation cause encore un autre désordre, parce qu'elle rend l'opéra ni vraiment vériste ni vraiment romantique. Que cette histoire traite d'une jeune fille ordinaire, une pauvre brodeuse, sa maladie, sa vie quotidienne parmi les siens, son amant qu'elle quitte pour un autre, etc... relève bien du vérisme. Mais en même temps, la sublimation de Mimi (et aussi de Rodolphe et de leur amour) est si forte qu'elle a tendance de voiler tous les aspects du vérisme. Ainsi, par exemple, la maladie dont souffre Mimi "est perçue comme une sorte de fatalité, et nullement comme un effet de la malnutrition, résultant de la misère sociale" (3).

En revanche, on pourrait considérer que Puccini, lui, a réussi l'idéalisation de l'héroïne avec sa musique. Contrairement à ses librettistes, le musicien n'avait pas vraiment de conflits à résoudre entre le vérisme et le romantisme. Car, comme Damien Colas l'explique, "le filon proprement "vériste" ne représente, dans le domaine de l'opéra, qu'une variété parmi tant d'autres d'un style musical adopté de façon générale par tous les compositeurs de l'époque" (4), à savoir l'abandon de l'alternance récitatif/air et l'insertion de la voix humaine dans la texture orchestrale. Effectivement, comme la musique est un art abstrait, elle n'a pas le même genre de problèmes que la littérature. Mais un opéra ne peut pas être que musical ni que littéraire. Le problème du livret en fait donc partie. Regardons comment les deux metteurs en scènes ont réagi.

3. Mise en scène de Jonathan Miller

mardi 3 avril 2007

Comparaison de deux représentations de « La Bohème » de Puccini

1. Introduction

Ce travail est une étude sur le livret de l'opéra La Bohème et la comparaison de deux représentations, l'une mise en scène par Jonathan Miller et l'autre par Luigi Comencini. Ce choix est fait au hasard du fait que ce sont les deux versions dont je dispose. La première est une version scènique présentée à l'Opéra Bastille et à laquelle j'ai assisté le 11 décembre 1995. Mais comme mes souvenirs ne peuvent pas être précis, pour ce travail, je m'appuie également sur la captation réalisée par Yves-André Hubert. La deuxième est une version cinématographique.

Le travail principal se concentrera sur le premier tableau de l'opéra et surtout sur le personnage de Mimi.

2. Livret
3. Mise en scène de Jonathan Miller
4. Mise en scène de Luigi Comencini
5. Conclusion
6. Notes et bibliographie

Quelques photos en rapport avec La Bohème

samedi 31 mars 2007

라 보엠 (La Bohème)

또스까보다 1년 전, 1896년에 발표된 뿌치니의 오뻬라 라 보엠 역시 프랑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엉리 뮈르제 (Henry Murger) 의 보엠의 삶의 장면들 (Scènes de la vie de bohème). 이 오뻬라에 대해 예전에 제가 인터넷 상에서 썼던 글이 있기에, 연결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