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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edi 7 novembre 2009

담놀이 (Jeu de dames)

장기와 비슷한 놀이로 프랑쓰에서 즐기는 담 (dames) 이라는 놀이가 있습니다. 담놀이판은 장기판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는데, 64 꽁빠르띠멍 대신 정확하게 100 개의 꽁빠르띠멍으로 나뉘어진 점 만이 다릅니다. 담은 장기와 비슷한 듯 하지만 동시에 매우 다릅니다. 말이 움직이는 규칙은 일단 장기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여기서는 장기처럼 말마다 이름과 성격, 움직이는 노선이 정해져있지 않고, 스무 개의 말들이 모두 같은 모양으로 생겼으며, 같은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장기보다 훨씬 단순해 보이는 이 놀이도 막상 시작해 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헤쳐 나와야 합니다.

담놀이에 사용되는 말들은 동전처럼 생긴 동글납작한 원형으로써, 이 말들이 상대방 진영의 끝 줄까지 건너가서 닿으면 한낱 말 (pion) 에서 담 (dame = 왕비, 여왕, 부인) 으로 승격을 합니다. 담이 되면 다른 말과 구별하기 위해서 말을 하나 포개어 얹습니다. 그리고 사방팔방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지요. 그 때문에 바로 담이라는 이름을 주게 된 것 같습니다. 장기에서도 왕비는 매우 자유롭게 움직이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장기에서도 왕비를 잃는 것은 왕에게 치명적인데, 담놀이에서도 적에게 담을 하나 허락하고 나면, 사실 이기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담놀이에 사용되는 판은 damier 라고 합니다. 그런데 뜻이 발전하여 오늘날 damier 라고 하면 두가지 색의 네모가 교대되는 무늬를 칭합니다. 사실 장기판도 마찬가지 무늬이기 때문에 에쉬끼에 무늬라고 해도 될텐데, 이렇게 말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다미에 무늬로 유명한 루이 뷔똥의 가방

mardi 3 novembre 2009

échec « 장기 » 또는 « 실패 »

« 장기 놀이 » 를 불어로 échecs (échec 의 복수) 이라 합니다. 이 단어는 뻬르쓰어 shah 가 변하여 된 것인데, « 왕 »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매우 오래된 놀이인 장기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인도나 중국 쪽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는데, 600년 경에는 뻬르쓰 (Perse) 에 이 놀이가 널리 퍼져있었답니다. 그리고 아랍 문화권과 에스빠냐를 거쳐 1000년 경에 유럽에 도입되었습니다. 뻬르쓰에서는 이 놀이의 가장 마지막에 더이상 왕이 꼼짝 못하게 되면, Shah mat 이라고 외쳤는데, 이것은 « 왕이 죽었다 » 는 뜻입니다. 현대 불어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왕을 꼼짝 못하게 하는 수를 두면서 Échec et mat 이라고 외칩니다.

여기서부터 « 실패 » 라는 뜻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다양한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échec 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놀이에서 비롯되었으며, 애초에는 왕이라는 뜻이었다니, 정말 재미있지요 ?

한편 « 실패하다 » 라는 동사는 échouer 라고 하는데, échec 과 당연히 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의외로 이건 또 그렇지 않습니다. échouer 의 원래 의미는 « (배가) 좌초하다, (배 밑이) 땅에 닿다 » 라는 의미로서, 아마도 échoir « 떨어지다 » 와 상관있어 보입니다. 배가 물 위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땅에 닿아있으니, 여기서 실패하다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입니다.

요약하면 échec 이라고 단수로 쓰면 실패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장기에서 왕을 지게 하는 결정적인 수를 가리킵니다. 반면 놀이 자체를 뜻하기 위해서는 échecs 이라고 복수를 사용합니다. 이 복수 형태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chess 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 장기판 » 은 불어로 échiquier 라 합니다. 장기판은 담놀이판 (damier) 과는 다르게 64개의 꽁빠르띠멍으로 나뉘어져 있지요.

장기판이 새겨진 놀이용 탁자
졍-엉리 리즈네르 (Jean-Henri Riesener) 가 만든 것으로 추정됨 (1785)
빠리, 꺄르나발레 박물관
루이 16세기 떵쁠에 갇혀있는 동안 사용했던 장기말들
빠리, 꺄르나발레 박물관
옛날에 장기를 두던 모습
하이델베르크 대학, 마네쓰 필사본 (Codex Manesse, 14세기)

lundi 17 novembre 2008

따로 (tarot)

비록 오늘날에는 프랑쓰식 놀이용 카드가 전세계적으로 규격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몇몇 지역, 특히 프랑쓰 남부와 이딸리아, 스위쓰와 독일의 일부 지방 등에서는 고유한 전통 카드 역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예이자 가장 유명한 예로 따로 카드 (cartes de tarot) 를 들 수 있습니다. 따로 카드는 프랑쓰 카드에 비하여 모양이 보다 갸름하고 길며, 무늬도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한 벌을 이루는 카드의 수가 78 장으로, 보통 프랑쓰 카드보다 26장이나 더 많습니다. 그 중 네 장은 기사 (cavalier) 들로서, 그 가치는 시종 (valet) 과 부인 (dame) 의 중간입니다. 나머지 22장은 완전히 다른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1부터 21까지 번호가 크게 매겨져 있습니다. 마지막 한 장은 아무런 번호도 글자도 없는 대신, 또는 멍돌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Excuse (변명) 라고 불리는 이 카드는 일종의 죠커 역할을 합니다. 이 스물 두 장의 카드는 현대 불어로 atout, 즉 « 으뜸패 » 라고 불리는데, 오래 동안 triomphe, 즉 « 승리패 » 라고도 불렸습니다. 바로 여기서 영어의 trump 라는 용어가 비롯되었습니다.

외국에는 따로 카드가 마치 점술용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놀이용입니다. 따로 카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는 몇가지가 있으나,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따로지요. 따로라는 놀이를 하는데 사용되는 카드이기 때문에 바로 따로 카드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따로 놀이는 몇가지 변형이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네 명이서 하는 놀이입니다. 각각 18장의 카드를 손에 들고 시작하며, 앞사람이 낸 카드와 같은 무늬이면서 더 높은 값을 가진 카드를 내 놓는 원칙입니다. 같은 무늬가 없을 때는 바로 으뜸패 카드를 냄으로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18장의 카드가 모든 참가자들의 손을 떠나면 한 판이 끝나게 됩니다. 현대에 행해지는 많은 카드 놀이들의 규칙이 바로 따로에서부터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놀이들에 비해 한가지 유별난 점은 따로에서는 카드의 점수를 반점 단위로 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왕은 4.5, 부인은 3.5. 사실 따로에서 제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점이 바로 점수 계산법입니다. 카드의 값과 조합에 따라, 더하고 빼고 곱하는 매우 복잡한 점수 계산을 해야 합니다.

따로의 정확한 근원에 대해서는 매우 논란이 많습니다. 점술용으로도 쓰이는 점과 관련하여, 매우 황당하고 전설같은 해석들이 많은데, 언어학적으로는 이딸리아어 tarocco 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딸리아어 tarocco 가 과연 어디서 온 말인가에 대해서는 또다시 황당하고 전설적인 주장들이 난무합니다. 아무튼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따로 놀이는 1430년 경 롬바르디아 (현재 이딸리아 북서부) 에서 처음 목격되었으며, 곧 프로벙쓰 (현재 프랑쓰 남동부) 로 수입되었습니다. 라띠나어 문화권의 놀이이기에, 따로용 카드에는 오랫동안 라띤 무늬가 쓰였습니다 : 즉 그릇, 칼, 막대기, 동전. 그런데 18세기에 따로가 독일에 전해지면서, 오히려 프랑쓰 무늬로 변하였습니다 : 즉 심장, 창끝, 토끼풀, 네모. 또한 19세기에는 22장의 으뜸패를 장식하던 중세풍의 상징적인 그림 역시, 일상 생활 풍경을 묘사하는 귀여운 (?) 그림들로 변하였습니다. 하지만 점술용 따로 카드는 여전히 옛날식 무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색다르고 신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겠지요. 그때문에 오늘날 프랑쓰에는 크게 두 종류의 따로 카드가 존재합니다 : 놀이용 따로 (tarot à jouer) 와 점술용 따로 (tarot divinatoire).

점술용 따로는 자주 마르쎄이으 따로 (tarot de Marseille) 라고 불리며, 드물게 이딸리아 따로 (tarot italien) 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방금 말했듯, 마르쎄이으 (즉 프로벙쓰) 와 이딸리아에서 쓰이던 라띤 무늬 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점술에서는 22장의 특별 카드를 으뜸패승리패라 부르지 않고 대비밀 (arcanes majeurs) 이라고 칭합니다. 이런 것을 전혀 믿지 않는 저로서는 폭소가 터져나오는 표현이기는 하나, 아무튼 대비밀을 구성하는 카드들은 방금 말했듯 여전히 중세풍의 상징적, 은유적 그림을 띄고 있습니다.

1. Le bateleur (마술사)
2. La papesse (여교황)
3. L'impératrice (여제)
4. L'empereur (황제)5. Le pape (교황)6. L'amoureux (사랑에 빠진 남자)7. Le chariot (수레 또는 마차)8. La justice (정의)9. L'hermite (은둔자 또는 연금술사)10. La roue de la fortune (운명의 바퀴)
11. La force (힘)12. Le pendu (거꾸로 매달린 남자)13. L'arcane sans nom ou la mort (이름없는 비밀 또는 죽음)14. La tempérance (절제 또는 균형)15. Le diable (악마)
16. La Maison-Dieu (신-집)17. L'étoile (별)
18. La lune (달)19. Le soleil (해)20. Le jugement (심판)21. Le monde (세계)그리고 번호가 없는 마지막 카드 Le mat (광대)
나머지 카드들은 소비밀 (arcanes mineurs) 이라고 불리며, 소비밀과 대비밀의 여러 조합을 통하여 점을 치나 봅니다. 아무튼 따로 카드들은 그 그림의 특이함 때문에, 점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점술의 관점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서, 사회 현상으로서, 풍습의 역사로서 따로 카드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을 tarologie 라고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프랑쓰 국립 도서관에는 여러 벌의 희귀한 따로 카드들이 소중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 (15세기) 은 샤를 6세의 따로 (tarot de Charles VI) 라고 불리는 카드들로서, 불행히도 17장 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대부분을 위에 소개했으나,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방문하시길...

samedi 15 novembre 2008

놀이용 카드 (cartes à jouer)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늘날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서양식 놀이용 카드는 그 기원이 프랑쓰 (보다 정확히는 루엉) 입니다. 물론 놀이용 카드 자체의 기원은 중국으로 짐작하고 있으며,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에는 이슬람 문화권을 거쳐 1370년 경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중세의 놀이용 카드는 화가들이 일일이 손으로 그려야 했으므로, 매우 값비싼 예술품이었습니다. 따라서 귀족들이나 부유한 시민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지요. (한 예로, 15세기에 제작된 샤를 6세의 따로 카드를 보세요.) 그런데 카드 한 장 한 장이 독창적인 « 작품 » 이나 다름없다 보니, 놀이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내가 가진 카드들과 상대방이 소유한 카드들의 크기와 모양, 색깔과 그림이 다 달랐으니까요. 따라서 15세기 무렵부터는 정해진 모양에 따라 통일된 카드를 만들어 내는 일을 전문 직업으로 삼는 cartier 들이 등장했습니다. (프랑쓰에는 Cartier 라는 성이 매우 흔한데, 필경 먼 조상들 중에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이 되었다고는 해도 처음부터 당장 유럽 전역에서 똑같은 카드를 사용할 수는 없었겠지요 ? 따라서 나라마다, 지방마다 고유의 카드가 있었습니다. 르네썽쓰 시대에는 크게 세 종류의 카드가 존재했습니다 : 라띤 무늬 카드 (couleurs latines), 제르마닉 무늬 카드 (couleurs germaniques), 그리고 프랑쓰 무늬 카드 (couleurs françaises). 라띤 카드는 프랑쓰 남부와 이딸리아, 에스빠냐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그릇, 칼, 막대기, 동전을 무늬로 가지고 있습니다. 제르마닉 카드는 심장, 나뭇잎, 도토리, 방울을 무늬로 하며, 두말할 나위 없이 오늘날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프랑쓰는 당연히 라띤 카드를 사용하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카드를 개발했습니다. 이때 채택된 무늬가 바로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무늬들을 지칭하기 위하여 영어를 사용하나, 다른 나라들은 당연히 자국어를 사용합니다. 불어로는 각각 cœur (심장), pique (창끝), trèfle (토끼풀), carreau (네모).

또한 10 이상의 값을 가진 카드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불어로는 valet (시종), dame (부인), roi (왕) 라고 부르며, 따라서 카드에는 약자로 V, D, R 로 표기합니다 (J, Q, K 가 아니라). 이 초상들 역시 16세기 초반 빠리에서 처음 표준화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각자 그리고 싶은 얼굴을 그렸지요.

그리고 1 점을 가진 카드의 원래 명칭도 ace 가 아닌 as 입니다. 아쓰는 로마 시대에 사용된 화폐이자 무게의 단위인데, 주사위에서 점이 하나만 찍혀진 면을 일컫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사위 놀이에서 아쓰 동전을 내기돈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주사위 놀이에서나 카드 놀이에서나 아쓰는 그 표면값과는 달리, 가장 높은 점수로 자주 취급되었고, 그 때문에 테니쓰에서도 상대방을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강한 공을 as 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as 라고 하면 한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위의 특징들을 종합하여 16세기 초반 루엉 (Rouen) 에서 프랑쓰식 카드가 완성되었습니다. 루엉은 당시 유럽에서 매우 중요한 상업 도시였기 때문에 곧 프랑쓰 카드가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카드도 사실상 루엉의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두가지 차이점이라면, 우선, 당시에는 카드에 위아래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카드들은 아쓰 같이 몇몇 특정한 카드를 제외하면 위와 아래를 구분할 수 없지요. 이것은 인쇄술의 발전으로 19세기 이후에야 도입된 특징이라고 합니다. 두번째 차이점은 죠커 (joker) 입니다. 역시 19세기에 미국에서 도입된 죠커는 그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카드였습니다. 물론 죠커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따로 카드에는 이미 광대 그림이 있었고, 이 카드는 다른 어떤 카드든지 대체할 수 있었지요. 아무튼 joker 는 프랑쓰 카드들을 지칭하는 이름들 중 유일하게 영어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입니다.

죠르쥬 들 라 뚜르, 네모 아쓰를 가진 속임꾼
Le Tricheur à l'as de carreau, Georges de la Tour (vers 1635)
Musée du Louvre, Paris.

jeudi 13 novembre 2008

인내와 성공 (patience et réussite)

patienceréussite 은 각각 « 인내 » 와 « 성공 » 을 뜻하는 불어 단어들이지만, 또한 특별한 종류의 카드 놀이들을 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이 범주에 속하는 놀이들은 거의 대부분 혼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때 (patienter) 하는 놀이로서, 정해진 원칙에 따라 카드를 일정한 모양으로 늘어 놓거나, 또는 짝을 맞추어 가며 한 장도 남김 없이 모두 거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계 (horloge) 라고 불리는 빠씨엉쓰 (또는 레위씻) 는 52 장의 카드를 시계 모양으로 구성하는 놀이입니다. 즉 한시 자리에는 네 장의 1이 모두 모여야 하며, 여섯시 자리에는 네 장의 6이 모두 모여야 하는 식이지요. 이렇게하여 결과적으로 각각의 시간마다 그에 해당하는 숫자를 가진 네 장의 카드가 모두 놓이고, 가운데에는 왕이 네 장 놓여야 성공 (réussite) 입니다.

또, 삐라미드 (pyramide) 라 불리는 빠씨엉쓰는 애초에 카드들을 삐라미드 모양으로 늘어 놓고, 삐라미드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카드를 두 장씩 거두어 가는 놀이입니다. 이 때 조건은 두 카드의 합이 13을 이루어야 합니다 : 3과 10, 6과 7, 1과 왕비... 왕은 혼자서 13을 이루므로 한 장만 있어도 거두어 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삐라미드의 가장 꼭대기를 구성하는 마지막 한 장의 카드까지 모두 없애야 성공 (réussite) 입니다.

이외에도 14를 잡아라 (prenez le 14), 황제의 수행 (suite impériale), 몽떼-꺄를로 (Monte-Carlo), 죠제핀 (Joséphine), 숫자의 행진 (défilé des nombres), 초상화 회랑 (gallerie des portraits), 결혼 (mariage) 등, 특이한 이름을 가진 빠씨엉쓰와 레위씻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놀이들이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성공을 위해서는 인내를 가지고 침착하게 여러번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애초에는 (그리고 지금도) 이런 놀이들을 jeu de patience (참을성 놀이) 라 불렀습니다. 쥬 드 빠씨엉쓰는 카드 놀이 뿐 아니라, 그림 맞추기 퍼즐이나, 성냥개비 쌓기, 숫자 문제, 암호 해독, 복잡한 미로, 또는 뤼빅쓰 뀝 (Rubik's cube) 같이, 대개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 하게 되는, 그리고 어느 정도 인내심이 필요한 온갖 종류의 놀이들을 칭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카드를 가지고 하는 놀이를 그저 patience 라 부르게 되었지요. 따라서 patiencejeu de patience 는 조금 구별되는 용어입니다. 반면 patienceréussite 은 차이가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카드 놀이들은 사람에 따라 patience 라고도 불리고, réussite 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과정을 중시하느냐, 결과를 중시하느냐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 역사적으로는 patience 라는 말이 좀 더 일찍 등장했습니다. 이 단어 (카드 놀이라는 의미로서) 의 첫등장은 1779년 Mémoires sur les jeux (놀이에 대한 기록) 라는 저술에서였습니다. 또 1842년에는 오로지 빠씨엉쓰 놀이들의 규칙만을 모아 놓은 Livre des patiences (빠씨엉쓰 책) 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놀이와 단어는 곧 유럽 도처에 퍼져 오늘날까지도 영어, 독어, 러시아어 등에서는 patience 라는 불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대의 프랑쓰에서는 réussite 의 사용이 좀 더 일반화된 느낌이 듭니다.

jeudi 20 décembre 2007

백조 편의 시 (CMMP)

그동안 보아온 울리뽀의 몇가지 구속과 놀이들 (쏠리씨뛰드, 마튜스의 알고리틈, 문체 연습, 바오밥, 아나에로비, 아크로님, 빨랑드롬, 리뽀그람, 뻥그람, 에떼로그람, 등등) 의 첫시작은 바로 레몽 끄노백조 편의 시 (Cent mille milliards de poèmes, 약칭 CMMP) 였습니다. 1961년, 즉 울리뽀의 창시 후 1년 뒤에 발간된, 울리뽀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시집에서 끄노는 독자 스스로 백조 (100 000 000 000 000) 편의 쏘네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쏘네 (sonnet) 란 간단히 말해, 14행으로 구성된 시인데, CMMP 에서 끄노는 각 행 당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열 개의 선택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10의 14승, 즉 백조 편의 서로 다른 시를 조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이 책은 열 네 개의 띠로 잘라진 특이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 이 띠들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독자는 매번 조금씩, 또는 완전히 다른 시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조합을 이루든 간에 의미가 통하고 문법에 맞는 쏘네가 만들어지며, 운의 구조 역시 완벽하게 규칙에 들어 맞습니다.

Cent mille milliards de poèmes, de Raymond Queneau, Paris, Gallimard, 1961.

1961년 초판본 서문에서 끄노는 자신의 책을 스스로 « machine à fabriquer des poèmes (시를 만드는 기계) » 라고 칭했는데, 이제는 컴퓨터 덕분에 이 책은 실제로 기계화되었습니다. 즉 걀리마르사는 1999년에 이 책의 쎄데롬 판을 내었습니다. 열 네 줄로 잘린 종이 조각들을 가지고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쎄데롬판은 훨씬 편리하고, 끌릭 한 번으로 재깍 새로운 시를 조합시켜 줌으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백조 편의 시를 모두 읽기 위해서는 시간 절약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쏘네 한 편을 읽는데 대략 45초가 걸린다 치고, 종이 띠들을 넘기고 조합하는데 넉넉잡아 15초가 걸린다고 했을 때, 백조 편의 쏘네를 모두 읽기 위해서는 하루 24시간씩 일년 내내 읽는다고 해도 총 190 258 751 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무리 쎄데롬을 이용한다고 해도 백조 편의 모든 조합을 다 읽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요.

울리뽀 회원들은 CMMP 의 규칙을 쏘네 외의 다른 형식의 시들과 다른 문학 졍르에 적용하기도 하였으며, 영국인 울리삐앙인 스땐리 찹만 (Stanley Chapman, 1925-) 은 끄노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mercredi 19 décembre 2007

쏠리씨뛰드 (sollicitude)

프렁-노앙 (Franc-Nohain, 1872-1934) 은 라벨의 오뻬라, 에스빠냐의 시간 (L'Heure espagnole) 을 위한 대본을 제외하면, 오늘날 알려진 작품이 거의 없는 작가이지만, 쏠리씨뛰드라는 재밌는 졍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 예 :

Appétit vigoureux, tempérament de fer,
Member languit, Member se meurt – ami si cher,
Qu’a Member ?

(입맛 좋고, 강철 같은 성격을 가진 멍베르가 기력을 잃고 죽어 간다 - 소중한 친구여, 도대체 멍베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

sollicitude (걱정, 염려, 배려) 란 위와 같이 (가상의) 친구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을 가진 짤막한 시입니다. 여기에는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형식적 규칙이 있습니다. 우선 반드시 세 줄이어야 하며, 첫 두 줄은 12음절, 마지막 행은 3음절 싯구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행은 반드시 Qu'a 로 시작되어야 하며, 친구의 안부를 묻는 의문문인 동시에 어떤 일반 명사의 동음어여야 합니다. Qu'a Member ? 는 « 멍베르에게 무슨 일이 있나 ? » 라는 뜻의 문장이지만, 동시에 camembert, 즉 « 꺄멍베르 치즈 » 와 발음이 같습니다. 또한 운의 구조는 a a a 여야 합니다 (윗 시에서는 -er).

프렁-노앙의 또다른 쏠리씨뛰드 :

Je viens de rencontrer, allant je ne sais où,
Outchou, le professeur, qui courait comme un fou.
Qu’a Outchou ?

(방금 길을 가다가,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는 우츄 선생님을 만났다. 우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

역시 3 행이며, 첫 두 줄은 12음절, 마지막 행은 3음절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 행은 Qu'a 로 시작하며, 우츄를 걱정하는 의문문인 동시에, caoutchouc, 즉 « 고무 » 와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의 구조는 역시 a a a (-ou).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재미있는 말장난은 울리뽀 회원들을 자극하였습니다. 특히 쟉 루보올리비에 쌀롱 (Olivier Salon, 1955-) 은 프렁-노앙의 규칙을 넘어서는 현대판 쏠리씨뛰드 (sollicitude moderne) 를 만들었습니다.
쟉 루보의 현대판 쏠리씨뛰드 하나 :

Ils sont des centaines de mille,
Lecteurs de Nothomb ou d’Angot.
Leurs romans, on en cause en ville,
Dans Le Monde ou Le Figaro.
Mais qui lit Mandjaro ?

(노똥이나 엉고의 독자는 수백만명에 이른다. 그녀들의 소설은 도시에서, 르 몽드피가로에서 언급된다. 하지만 누가 멍쟈로를 읽는단 말인가 ?)

이 쏠리씨뛰드는 보다시피 다섯줄이며, 첫 네 줄은 8음절 싯구입니다. 운의 구조 역시 a b a b b 로 더 다양해졌습니다 (-ille, -o). 마지막 줄의 음절수 역시 늘어났지만, 발음에 의한 말장난임은 여전합니다. qui lit Mandjaro ? = «누가 멍쟈로를 읽는가 ? » : Kilimandjaro = « 낄리멍쟈로 산맥 ».

올리비에 쌀롱이 지은 다음의 쏠리씨뛰드는 또 조금 다릅니다 :

Quel est donc ce nageur qui, après un plongeon,
A rejoint les saumons, les bars et les goujons
Dans les profondes eaux : l’océan d’Arpajon ?
Est-ce Turgeon ? Est-ce Padon ?

(잠수 끝에 연어와 농어와 모샘치를 만나러 아르빠죵 대양으로 간 수영 선수는 누구인가 ? 뛰르죵인가 ? 빠동인가 ?)

이건 네 줄로 구성되었으며, 첫 세 줄은 12음절, 마지막 행은 8음절입니다. 운의 구조는 a a a a (-on). 마지막 행은 두 개의 의문문인 동시에 각각 esturgeon (철갑상어) 과 espadon (황새치) 의 동음어입니다.

이런 식으로 보다 다양한 조합을 통해 울리뽀 회원들은 재미있는 현대판 쏠리씨뛰드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mardi 18 décembre 2007

마튜스의 알고리틈 (Algorithme de Mathews)

1971년 이후로 니끼 드 쌍-팔과 졍 땅글리의 이름은 분리시켜 생각하기 힘들지만, 땅글리를 만나기 전 쌍-팔은 아리 마튜스 또는 해리 매튜스 (Harry Mathews, 1930-) 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작가 마튜스는 울리뽀의 회원으로 뽑힌 드문 외국인 중 한 명입니다. 비록 마르쎌 뒤셩이 생애 말기에 미국 국적을 얻기는 했지만, 사실상 프랑쓰인이었고, 그의 본질적인 작업이 문학 보다는 미술이었으므로, 마튜스는 실질적으로 최초의 미국인 울리삐앙 작가라 볼 수 있습니다.

마튜스는 울리뽀를 위해 몇가지 구속을 발명했는데, 그 중 재밌는 예 한가지는 마튜스의 알고리틈입니다. 이것은 가로로 쓰여진 일련의 단어들에 차례차례 글자전환을 가함으로써, 세로로 읽혀지는 새로운 단어들의 연속을 얻어내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의 표가 있다고 칩시다 :

C I R E (밀랍)
M U R E (성숙한)
P A V E (도로 포장용 벽돌)
R A L E (불평)

첫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영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두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한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세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두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네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세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표가 생깁니다.

C I R E
U R E M
V E P A
E R A L

이 새로운 표는 첫글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터 시작하여 세로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CUVE (통), RIRE (웃음), PARE (준비된), MALE (남자, 수컷의) 이라는 네 개의 새로운 단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극히 간단한 예이고, 실제로는 보다 복잡한 실현을 통해 다양한 어휘들을 얻어내게 되는 것이지요.

jeudi 13 décembre 2007

엉덩이가 뜨거워 (L. H. O. O. Q.)

때때로 현대 미술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미술사에 큰 혁신을 가져온 마르쎌 뒤셩 (Marcel Duchamp, 1887-1968) 은 울리뽀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울리뽀의 다른 동료들, 즉 브라포르르 뗄리에 보다 훨씬 이전에 라 죠꽁드 (La Joconde) 를 풍자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919년, 뒤셩은 엽서 만한 크기의 라 죠꽁드의 복제본에 수염을 그려 넣고, 그림 밑에는 L. H. O. O. Q. 라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달았습니다. 약자처럼 보이지만 약자가 아닌 이 글자들의 나열은 몬나 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에 대한 뒤셩 나름의 해답입니다. 즉, 뒤셩 생각에 그녀가 살며시 웃을듯 말듯 미소 짓는 이유는 엉덩이가 뜨겁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불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불어권 사람들이라도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자칫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는 말장난입니다. L. H. O. O. Q 의 글자 이름들을 그대로 읽으면, [엘. 아슈. 오. 오. 뀌.] 가 되고, 이것은 마치 불어 문장 Elle a chaud au cul 를 발음한 것처럼 들립니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 » 라는 뜻인데, 실제로 엉덩이 주변의 온도가 높아서 뜨겁다는 뜻이 아니라, 성적으로 흥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안그래도 라 죠꽁드가 레오나르 드 방씨의 분장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거기다가 수염을 그려서 남자처럼 만들고, 성적인 암시가 들어간 제목까지 덧붙이는 바람에, 이 그림은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오늘날 난무하는 수많은 라 죠꽁드 풍자화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뒤셩은 이 그림 (보다 정확히는 레디-메이드) 을 루이 아라공 (Louis Aragon) 에게 선물하였고, 아라공은 생애 말기에 이 작품을 프랑쓰 공산당에 기증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그림은 여전히 프랑쓰 공산당의 소유품이지만, 2005년부터 뽕삐두 쎈터 (Centre Pompidou) 에 99년간 빌려 주었다고 합니다.

L. H. O. O. Q. de Marcel Duchamp (1919)

mardi 11 décembre 2007

라 죠꽁드 (La Joconde)

끄노가 바흐에게 영감을 받아 문체 연습을 지었다면, 르 뗄리에는 끄노의 문체 연습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두 편의 라 죠꽁드 연작을 썼습니다.

라 죠꽁드는 레오나르 드 방씨 (Léonard de Vinci, 1452-1519) 가 그린, 정의 내리기 힘든 미소 (sourire indéfinissable) 로 유명한 초상화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턱대고 영어를 따라 모나 리자 라고 부르지만,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La Joconde (이딸리아어로는 La Gioconda) 입니다. Monna Lisa 라는 별칭은 뒤늦게 리자 델 죠꼰도 (Lisa del Giocondo) 라는 여자가 그림의 모델이었다는 설이 나오면서 생겨났습니다. 이 설은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최근의 연구들에 의하여 더욱 더 유력한 것으로 인정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리자 델 죠꼰도 외에도 당대의 다른 이딸리아 귀부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며, 심지어 레오나르 자신이 여자로 분장한 채 그린 자화상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리자는 귀족 부인이었으므로 그 이름 앞에는 경칭인 madonna (불어 madame) 를 붙이는데, 옛 이딸리아어에서 madonna 는 간혹 monna [몬나] 라는 형태로 축약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딸리아어와 불어에서는 그림의 제목을 말할 때는 La Gioconda, La Joconde 라 하고, 모델의 이름을 거론할 때는 Monna Lisa 라고 합니다. mona [모나] 는 이딸리아 속어로 « 여성의 성기 » 를 칭하기 때문에, Mona Lisa 라고 쓰는 것은 아무런 뜻도, 근거도 없는, 잘못된 형태입니다. 게다가 lisa 는 « (헝겊이) 헤진, 닳은, 너덜너덜한 » 이라는 뜻의 형용사이기도 하므로, [모나 리자] 라는 말을 들으면 이딸리아 사람들은 뒤로 넘어갑니다.

한편 Gioconda 라는 말은 리자 델 죠꼰도의 성 (nom) 을 여성화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여자가 정말로 모델이었는지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저 보통 단어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gioconda, joconde 는 모두 라띠나어 jucundus [유꾼두쓰] 에서 온 말로, « 기분 좋은, 마음에 드는, 상쾌한, 매력적인 » 등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입니다. La Joconde 는 그러니까 « 매력적인 여자, (보고 있으면)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는 여자 » 라는 뜻이지요.

프랑쓰의 왕 프렁쓰와 1세 (François Ier, 1494-1515-1547) 가 이 그림을 보고 바로 그런 기분을 느꼈나 봅니다. 그는 레오나르 드 방씨가 1516년 프랑쓰로 가져 온 라 죠꽁드를 곧 사들였습니다. 그 후 이 그림은 역대 프랑쓰 왕들의 개인 보물로 전수되면서, 퐁뗀블로, 베르싸이으, 루브르, 뛰일르리 등, 왕궁을 옮겨 다니며 전시되었습니다. 현재도, 박물관이 된 루브르에 걸려 있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그림이 뭐가 그리 특별난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르네썽쓰 시대부터 라 죠꽁드는 수많은 찬미와 관심, 모방과 풍자, 해석과 분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학자이자 울리삐앙에르베 르 뗄리에 (Hervé Le Tellier, 1957-) 역시 라 죠꽁드를 대상으로 하여 두 편의 책을 썼습니다. 우선 1998년 출판된 Joconde jusqu'à cent (100 까지의 죠꽁드) 는 끄노의 문체 연습을 본따, 라 죠꽁드를 99 가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책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직업, 여러 사회 신분, 계층, 나이, 유명인, 허구의 인물 등의 싯점이 포함됩니다. 99 가지 관점만이 제시되었는데도 책의 제목이 « 100 까지... » 라고 되어 있는 이유는, 책의 가장 마지막 쪽은 독자의 관점을 스스로 적도록 백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목은 발음에 의한 말장난이기도 한데, Je compte jusqu'à cent = « 백까지 세겠다 » 고 하는 표현을 Joconde jusqu'à cent 으로 바꾼 것입니다.

2002년에 새로 나온 제 2 권, Joconde sur votre indulgence 역시 비슷한 말장난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compter 는 위의 예에서처럼 « 수를 세다 » 라는 뜻의 동사이기도 하지만, compter sur 라고 하면 « -를 믿다, -에 의존하다 » 라는 뜻도 됩니다. 따라서 Je compte sur votre indulgence 는 «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믿겠습니다 » 라는 뜻인데, 역시 je comptejoconde 의 발음이 비슷한 점을 이용하여 제목을 지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1 권에 더하여, 라 죠꽁드를 바라보는 백가지의 또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유명한 그림 라 죠꽁드를 이렇게 비웃고 풍자한 것을 용서해 달라는 의미이지요.

이 두 책은 끄노의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에서 영감을 받았고, 화자의 관점에 따라 문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엄격히 말해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은 아닙니다. 때로는 같은 그림을 바라 보는 서로 다른 시선들이 다루어지기도 하나, 때로는 리자와 레오나르가 직접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무대가 르네썽쓰 시대의 피렌체이기도 하다가, 현대 빠리의 꺄페나, 문제 구역의 경찰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어 문법만 알아서는 이해가 힘들고, 문화적 상황과 맥락을 알아야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방송 프로그람, 시사 풍자, 인기있는 영화나 노래에 대한 암시, 말장난, 유명인들의 어투나 유행어 모방 등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 중 번역이나 긴 설명이 굳이 필요 없는 몇가지 예 :

007의 관점 (le point de vue de l'agent 007)
- Ne nous sommes-nous pas déjà rencontrés, Monsieur ?
- Cond, my name is Cond. Joe Cond.

인쇄기술자의 관점

성악가의 관점

dimanche 9 décembre 2007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작곡 기법을 글자에 적용시킨 뻬렉의 알파베가 다소 실망스러운 데가 있다면, 역시 음악을 모방하려는 노력에서 태어난 끄노의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1947) 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생각으로 가득차고, 보다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문학 작품의 하나입니다.

울리뽀를 창시한 장본인이기도 한 프랑쓰의 작가 레몽 끄노 (Raymond Queneau, 1903-1976) 는 J. S. 바흐의 퓌그의 예술 (L'Art de la fugue = Dis Kunst der Fuge) 에서 영감을 받아 문체 연습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퓌그의 예술은 미완성으로 남은 바흐의 최후 작품으로써, 간단한 단선율 주제 하나를 약 스무가지 (미완성이기 때문에 출판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음) 의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이를 위해 바흐는 자신의 모든 기량을 쏟아 부었으며, 따라서 퓌그의 예술은 바흐의 작곡술을 총망라한, 그의 최고 걸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입니다.

끄노는 문체 연습을 통해서 비슷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극히 간단하고 평범한 이야기 — 버쓰 안에서 한 청년이 옆 승객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빈자리가 나자 그리로 가서 앉고, 몇 시간 뒤 그는 쌍-라자르 (Saint-Lazare) 역 앞에서 친구와 만나, 옷에 단추를 새로 달아야겠다는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가 아흔아홉 가지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그 중에는 간결체, 화려체, 감탄체, 의문체 등 실제로 좁은 의미에서 문체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아예 문학 졍르 자체가 바뀌기도 합니다 : 다양한 형식의 시, 희곡, 산문 등... 또는 일인칭으로 본 주관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가 하면, 삼인칭의 객관적인 묘사, 의학적 분석, 사전적 정의 등, 화자의 시점에 따라 문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또 화자의 국적에 따라, 외국어를 흉내낸 어투 (영어, 이딸리아어...) 도 있고, 전문 용어, 직업 용어, 은어, 속어, 욕설, 고유명사 등으로만 작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오로지 부정문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또 다른 경우에는 역순으로 이야기를 회상해 올라갑니다. 그런가하면 특정한 감각에 촛점을 맞춰, 유난히 냄새, 맛, 촉감, 시각, 청각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기도문, 공식 편지, 전보, 대화, 독백 등 다양한 문체와 어투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일정한 원칙에 따라 글자를 전환시키거나, 단어의 순서를 바꾸거나, 글자를 빼고 집어 넣는 등 울리뽀 특유의 말장난들도 등장합니다.

99가지 문체 중 대부분은 책의 한두 쪽을 차지하지만, 어떤 문체는 단지 세네줄로 본질적인 이야기를 다 끝내는가 하면, 어떤 문체로는 똑같은 이야기가 네다섯 쪽에 이르도록 길고 상세하게 전개됩니다.

문체 연습의 몇몇 단락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책의 순서와는 무관) :
  • Notations « 기록 »
  • Surprises « 놀람 »
  • Analyse logique « 논리 분석 »
  • Moi, je « 나는 말이지... »
  • Ampoulé « 과장 »
  • Désinvolte « 경박 »
  • Philosophique « 철학 »
  • Permutations par groupes croissants de mots « 증가 순에 따른 단어 교체 » (울리뽀의 말장난의 일종)
  • Antonymique « 반대말 »
  • Contre-petteries « 꽁트르뻬트리 » (글자의 위치를 바꾸는 말장난의 일종)
  • Gastronomique « 요리 »
  • Interjections « 감탄사 »
  • Ignorance « 무지 »
  • Prière d'insérer « 첨가하시오 »
  • Onomatopées « 의성어 »
  • Lettre officielle « 공식 편지 »

vendredi 7 décembre 2007

알파베 (Alphabets)

루보가 고안한 바오밥도 음악과 무관하지 않지만, 죠르쥬 뻬렉은 12음 기법을 문학에 적용시킨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간략히 설명하면, 12음 기법이란 서양 음계에 포함되어 있는 열 두 개의 음을 고르게 사용한 음악입니다. 한마디로, 도 음이 한 번 나왔으면, 다른 열 한 개의 음이 다 고르게 한번씩 나오기 전까지는 도 음은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12음 기법에 크게 매료된 뻬렉은 1976년 출판된 알파베라는 제목의 시집에서 이 원칙을 글자에 응용하려는 시도를 행했습니다.

알파베는 모두 176편의 시를 담고 있으며, 각각의 시는 열 한 개의 글자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첫번째 시 :

Satin, or bleu, trouble sain.
Rite : nous balbutions la réalité.
Nous brûlons.

Abrite la brune toison, brutalise
le bâton suri, ablutions errantes :
oubli...

언뜻 보아서는 별다른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글자를 하나하나 세어보면, 오로지 A, B, E, I, L, N, O, R, S, T, U 만이 각기 열 한 번씩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 그 조합은 달라집니다. 윗 시의 분석표 :

SATINORBLEU
TROUBLESAIN
RITENOUSBAL
BUTIONSLARE
ALITENOUSBR
ULONSABRITE
LABRUNETOIS
ONBRUTALISE
LEBATONSURI
ABLUTIONSER
RANTESOUBLI

영어가 편한 분들을 위한 또다른 예, 171번째 시 (176편의 시 중 유일하게 영어로 작성) :

Is only true a year in soul,
tears lyin' out at your silent relay

Is noun reality ? Sour - yes - nail out,
solitary, uneasy in our letters
(inlay, outlay) : use iron !

분석표 :

ISONLYTRUEA
YEARINSOULT
EARSLYINOUT
ATYOURSILEN
TRELAYISNOU
NREALITYSOU
RYESNAILOUT
SOLITARYUNE
ASYINOURLET
TERSINLAYOU
TLAYUSEIRON

알파베의 모든 시는 위와 같은 표를 함께 가지고 있으며, 예외 없이 모두 열 한 줄로 분석됩니다. 즉 열 한 개의 글자가 열 한 번씩 쓰인 것이지요. 저자가 왜 11 이라는 숫자를 선택했는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아마도 불어 알파베의 스물 여섯 자를 모두 고르게 사용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지만, 그렇다면 이것은 큰 문제를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12음 기법의 정신에 매우 어긋나기 때문이지요. 12음 기법은 바로 이러한 차별, 즉 몇몇 음들 만이 선호되는 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운동인데, 뻬렉은 결국 일부 글자들만을 선택함으로써 12음 기법을 흉내는 냈지만, 그 가장 근본 정신은 배신한 셈입니다.

그리고 글자를 단위로 삼은 점도 실수로 보입니다. 불어처럼 유난히 묵음이 많고, 철자와 발음이 다른 언어에서, 과연 글자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실제로 소리의 균형을 이루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 차라리 음절, 또는 음소를 단위로 삼았으면 어떨까 궁금해 집니다. 또 아무리 시라고 해도, 문학에서는 의미의 문제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기에, 즉 뜻이 어느 정도라도 통하는 문장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12음 기법은 결국 문학에는 적용시키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이 원칙을 사용하여 176 편에 이르는 시를 쓴 뻬렉의 작업은 물론 찬미받을 만은 하나, 저 개인적으로는 알파베는 그의 다른 작품들(Le Grand Palindrome, La Disparition, Les Revenentes)에 비하여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mardi 4 décembre 2007

바오밥 (baobab)

수학자이자 작가인 쟉 루보 (Jacques Roubaud, 1932-) 가 1996년, 울리뽀를 위해 고안한 바오밥이라는 구속은 나무 바오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루보는 단지 baobab 이라는 단어가 [바] 라는 음절과 [오] 라는 음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바] 라는 소리는 불어 단어 bas (낮은) 를 연상시킵니다. [오] 라는 소리는 불어 단어 haut (높은) 를 연상시킵니다. 바오밥은 즉, 이 두 반대말 음절이 동시에 들어있는 문장을 쓰는 놀이입니다. 예 :
  • Ah, quel chaos dans le cabas. (아, 시장 바구니 안이 난장판이네.)
이 문장이 보여주듯, 단지 [오] 와 [바] 가 제대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그 앞 (또는 뒤, 또는 양쪽 모두) 음절까지 같은 경우 (윗문장에서는 [꺄]), 엄격 바오밥 (baobab strict) 이라 부릅니다. 또다른 엄격 바오밥의 예들 :
  • Il y a Othon avec son ton. Il y a Otto avec son bateau. (오똥은 막대기를 들고 있고, 오또는 배를 가지고 있다.)
  • Vas-donc, tard du tarot ! (가거라, 따로의 사생아야 !)
이 마지막 예는 더욱 놀라운 것이 [바] 와 [오] 를 양 끝에 두고 음절이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du 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거울 효과이지요.

물론 엄격 바오밥 외에 평바오밥, 또는 유연한 구속의 바오밥 (baobab ordinaire ou à contrainte molle) 도 있습니다. 이 때는 그저 두 음절을 잔뜩 집어 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바] 와 [오] 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두 음절, 주로 반대말, 또는 짝을 이루는 말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pou (이) 와 tique (진드기), 두 벌레의 이름을 이용한 평바오밥 :
Je voudrais partir.
Quitter
la poussière des villes frénétiques,
l’odeur épouvantable des poubelles aromatiques,
les poulaillers pathétiques
les pouddings au goût de plastiques [...]
(나는 떠나고 싶다. 광적인 도시의 먼지, 냄새나는 쓰레기통의 지독한 악취, 닭장같이 비참한 세계와 플라스틱 맛이 나는 푸딩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그리고 바오밥은 그저 혼자서 쓰고 눈으로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낭독, 또는 « 연주 » 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3성으로 ! 즉 [바] 음절은 낮은 (bas) 목소리로, [오] 음절은 높은 (haut) 목소리로, 나머지 음절들은 중간 음역의 목소리로. 물론 혼자서도 목소리를 달리 하며 읽을 수 있겠지만, 이상적으로는 세 명의 서로 다른 음역의 « 연주자들 » 을 필요로 합니다. [뿌] 와 [틱] 같은 경우에도 음역을 세 사람 사이에 배분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더 나아가 [뿌] 를 발음하는 사람은 매번 이 (pou) 를, [틱] 을 발음하는 사람은 매번 진드기 (tique) 를 흉내낼 것이 권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오밥은 거의 음악적인 작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형식에 촛점을 많이 맞추었기에, 울리뽀의 작업과 작품들의 대다수는 음악과 자주 연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lundi 3 décembre 2007

공기 제거 (anaérobie)

울리삐앙들은 아크로님이나 빨랑드롬, 리뽀그람 (=글자 생략), 뻥그람 등 기존의 말장난들을 마음껏 활용하였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자기들이 직접 새로운 말장난을 고안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중 하나로 공기 제거라는 것이 있습니다. « 공기 제거 » 는 anaérobie 의 정확한 해석은 아닌데, 마땅한 말이 없어서 제가 그냥 그렇게 번역한 말입니다. anaérobie 의 정확한 뜻은 « 공기나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발달할 수 있는 » 이며,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입니다. 주로 미생물 따위에 관해 말해지는 전문적인 용어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불어에서 공기를 뜻하는 단어 air 는 글자 R 와 발음이 같습니다. 따라서 문맥을 모른 채 « [에르] 가 없다 » 는 말을 들으면, 산소가 모자란다는 뜻인지, 글자 R 가 빠졌다는 뜻인지 혼돈이 올 수 있지요. 이 점을 이용하여, 수학자-물리학자-작가-울리뽀 회원이었던 뤽 에띠엔 (Luc Étienne, 1908-1984) 은 아나에로비, 즉 « 에르 (air) 제거 또는 에르 (R) 제거 » 라는 구속을 만들었습니다. 이 구속에 따르면 문장을 짓되, 에르, 즉 글자 R 를 모두 빼어도 의미가 통하는 문장을 써야 합니다. 예 :

Cette rosse amorale a fait crouler le parterre. (저 무도덕한 사람이 관중을 완전히 정복했다)

이 문장에서 R 를 모두 빼면 다음의 문장이 됩니다 :

Cet os à moelle a fait couler le pâté. (저 뼈 때문에 고기 반죽에서 물이 흘렀다)

글자로 쓰여진 것만 보면, R 외에 다른 글자들도 빠졌고 (cette/cet), 또는 새로운 글자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amorale/à moelle), 아나에로비는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발음의 문제입니다. 발음을 해보면, 오로지 R 만 빠져나갔음이 확인됩니다. 반면, couler 에는 여전히 R 가 붙어 있는데, 이 역시 croulercouler 건, 마지막 R 는 어차피 묵음이기 때문에, 발음상으로는 R 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해서 얻어진 새로운 문장을 첫 문장의 아나에로비라고 부릅니다. 또는 그 역도 가능합니다. 즉 R 가 없던 문장에 R 를 잔뜩 집어 넣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이죠. 이 작업은 aération, 즉 « 환기 » 라고 부릅니다.

한편 아나에로비에는 몇가지 변형이 있습니다. 공기를 제거하는 대신, 날개를 잘라내거나, 차를 금지시킬 수도 있는 것이지요. 날개 (aile) 를 잘라낸다는 것은 글자 L [엘] 을 빼는 행위이며, 차 (thé) 를 못마시게 하는 것은 글자 T [떼] 를 지우는 것입니다.

dimanche 2 décembre 2007

아크로님 (acronyme)

울리삐앙들이 즐기는 말장난 중 하나는 아크로님 만들기입니다. 아크로님은 머릿글자들만 모아서 만들어진 약칭이되, 보통 단어들처럼 읽고 쓰이는 단어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Oulipo =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아크로님은 씨글 (sigle) 의 일종인 동시에 씨글과 구별됩니다. sigle 은 머릿글자들을 따서 만들어진 약칭을 보다 포괄적으로 총칭하는 말로, 예를 들면,
  • SNCF = 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 = 프랑쓰 국립 철도청
  • RATP = Régie Autonome des Transports Parisiens = 빠리 지하철 공사
등입니다. 이 두 예에서 보다시피 씨글은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고, 읽을 때도 그저 철자 이름을 차례차례 읽는 수 밖에 없지요. 원래, 약자 뒤에는 마침표를 찍는 것이 원칙이나 (S. N. C. F.), 지금은 점점 더 생략하는 추세인 듯 합니다. 그리고 씨글은 성수의 변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크로님은 씨글을 만들어 놓고 보니, 자음과 모음이 적절하게 섞여, 일반 단어처럼 읽을 수 있게 된 경우입니다. 예 :
  • ovni = Objet Volant Non-Identifié = 미확인 비행 물체
  • sida = Syndrome d'Immuno-Déficience Acquise = 후천성 면역 결핍증

이 두 예에서 보다시피 아크로님은 소문자로도 쓰는 것이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대문자로 쓰다가도 (SIDA, OVNI),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보니, 아예 일반 단어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크로님들 중에는 성수의 변화를 받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un ovni, des ovnis)

심지어 어떤 아크로님들은 그 자신이 어원이 되어 파생어들을 낳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Salaire Minimum Interprofessionnel de Croissance 는 « 최저임금 » 이란 뜻인데, 너무 길어서 약호화 시켜 놓고 보니, SMIC 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S. M. I. C. 으로 표기하고 따로 끊어 읽기도 했지만, 곧 자연스럽게 [스믹] 이라 읽게 되었으며, 표기도 SMIC 또는 smic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smicard(e), 즉 «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 (여자) »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크로님이라고 해서 모두 일반 명사화되고, 모두 소문자로 쓰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OTAN = Organisation du Traité de l'Atlantique Nord = « 북대서양 조약 기구 » 는 항상 [오떵] 이라고 읽는 아크로님이지만,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거나, 최소한 첫자는 대문자로 표기합니다 (Otan). 즉 고유명사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지요.

ONU = Oraganisation des Nations Unies = « 국제 연합 » 도 비슷한 예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모두 대문자로만 쓰며, 때로는 아크로님으로, 때로는 씨글로 취급됩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오뉘] 라고 읽는가하면, 또다른 사람들은 [오. 엔. 위] 라고 발음합니다.

사실 어떤 단어가 씨글로 남아있고, 어떤 단어가 아크로님으로 변모하는가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용 (특히 언론에서) 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DEA = Diplôme d'Études Approfondies = « 박사 과정 수료 학위 » 는 [데아] 라고 발음될 수 있고, 복수형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항상 대문자로만 쓰며, [데. 으. 아] 라고 끊어 읽고, 복수일 때도 s 가 붙지 않습니다.

요즘은 점점 더 기업, 단체, 상품명 등이 자연스러운 단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첫자 외에 몇몇 다른 글자들을 집어 넣는 경향이 있는 듯 보입니다. 또다시 울리뽀를 예로 들면, 엄격하게 따져서 이것의 약자는 OLP 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오.엘.뻬] 라 읽히는 멋대가리 없는 말이 되니까, 첫자만 뽑는 대신, 아예 첫음절을 모아 Oulipo 라는 말을 만든 것이지요.

vendredi 30 novembre 2007

울리뽀 (OuLiPo)

실종 (La Disparition) 이나 돌아온 여자들 (Les Revenentes) 같은 특이한 작품은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만 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울리뽀의 일원이었는데, 이 문학 모임의 회원들은 모두 형식적 구속을 받는 작품들을 쓰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OuLiPo 라는 말은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잠재적 문학의 작업장) 의 첫자들을 따서 만들어진 말로, 1960년, 작가 레몽 끄노 (Raymond Queneau) 와 수학자 프렁쓰와 르 리요네 (François Le Lionnais) 에 의해 창설된 후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문학 운동입니다. 그 회원은 oulipien 이라 불리는데, 유명한 울리삐앙으로는 두 창설자를 비롯하여 죠르쥬 뻬렉, 이딸로 깔비노 (Italo Calvino), 쟉 루보 (Jacques Roubaud), 베르나르 쎄르낄리니 (Bernard Cerquiglini) 같은 작가, 수학자, 언어학자 등을 꼽을 수 있지만, 그외에도 대중적으로 덜 유명한 사람들도 있고, 몇몇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인 수는 창설 이래 지금까지 총 서른명 정도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울리삐앙의 목록. 이들 중 일부는 이제 죽고 없지만, 울리뽀는 일단 가입하면 절대 탈퇴가 안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들도 여전히 회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기 모임에 나오지 않아도 너그러이 용서해 준다는군요.^^

울리삐앙들은 모두 특이한 형식, 말장난, 수학 공식, 복잡한 틀 등을 적용시킨 문학 작품을 쓰는 것을 즐깁니다. 그들은 이러한 구속이 더욱 상상력을 발휘시킨다고 생각하며, 형식적 제한을 받으면서도 내용이 제대로 성립되는 글을 쓰는 것을 문학적 도전으로 삼습니다.

울리뽀는 여러 비슷한 모임을 낳았습니다. 예를 들면,
  • 울리뽀뽀 (OuLiPoPo) = Ouvoir de Littérature Policière Potentielle = 잠재적 추리 문학의 작업장
  • 우빵뽀 (OuPeinPo) = Ouvoir de Peinture Potentielle = 잠재적 미술의 작업장
  • 우트라뽀 (OuTraPo) = Ouvoir de Tragicomédie Potentielle = 잠재적 희비극의 작업장

그외에도,

  • 우뮈뽀 (OuMuPo) = Musique = 음악
  • 울리트라뮈뽀 = OuLiTraMuPo = Littérature Traduite en Musique = 음악으로 번역된 문학
  • 우바뽀 (OuBaPo) = Bande dessinée = 만화
  • 우그라뽀 (OuGraPo) = Grammaire = 문법
  • 우이스뽀 (OuHisPo) = Histoire = 역사
  • 우마뽀 (OuMaPo) = Marionnette = 인형극
  • 우포뽀 (OuPhoPo) = Photographie = 사진
  • 우씨뽀 (OuCiPo) = Cinématographie = 영화
  • 우라뽀 (OuRaPo) = Radio = 라디오
  • 우앙뽀 (OuInPo) = Informatique = 컴퓨터
  • 우뽈뽀 (OuPolPo) = Politique = 정치
  • 우뀌이뽀 (OuCuiPo) = Cuisine = 요리
  • 우쟈뽀 (OuJaPo) = Jardinage = 정원가꾸기
등등.

그리고 이 모든 모임들을 통칭하여 우익쓰뽀 (OuXPo) 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X 는 변수로서, 위에서 보다시피 각 분야의 첫음절로 대치되는 것이지요.

mercredi 28 novembre 2007

돌아온 여자들 또는 글자들 (Les Revenentes)

글자 e 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완성한 소설, 실종 (La Disparition) 으로부터 몇 년 뒤 (1972), 뻬렉 (Georges Perec) 은 자신이 e 에게 부당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여, 이번엔 오로지 e 만 사용한 소설을 썼습니다. 즉, a 도, i 도, o 도, u 도, 이 소설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y 은 반모음/반자음이기 때문에, 드물게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돌아온 여자들. 실종처럼 제목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 하나는 소설의 내용에 등장하는 오랫만에 돌아온 여자들을 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e 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 글자 » 는 LA lettre, 즉 여성이기 때문에). 그 시작의 일부 :

Telles des chèvres en détresse, sept Mercedes-Benz vertes, les fenêtres crêpées de reps grège, descendent lentement West End Street et prennent sénestrement Temple Street vers les vertes venelles semées de hêtres et de frênes près desqelles se dresse, svelte et empesé en même temps, l'Évêché d'Exeter. Près de l'entrée des thermes, des gens s'empressent. Qels secrets recèlent ces fenêtres scellées ?

역시나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뻬렉이 간혹 편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발음만 같으면 글자를 바꾸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단 제목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원래 정확한 철자대로 쓰자면 Les Revenantes 여야 하는데 이것을 Les Revenentes 로 바꾼 것이지요. 발음은 두 경우 모두 [레 르브넝뜨] 라고 되기 때문. 그 외에도 위의 예문에서도 보면, desqellesqels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들도 원래는 각각 desquellesquels 이어야 합니다. 다른 서양 언어들에서도 비슷하지만, 불어에서도 u 가 뒤따르지 않는 q 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런데 불어에서는 qu 가 들어가는 단어가 매우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기를 약호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종에 비해서는 반 밖에 안되는 부피이지만 (140쪽), 그래도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엔 글자 하나가 아니고 네 개나 뺏으니까요 !

mardi 27 novembre 2007

출현 (apparition)

e 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쓰여진 뻬렉의 소설 실종 (La Disparition) 은 간혹 좀 특이한 단어나 잘 안쓰는 표현들이 억지스럽게 나오는 감도 없지 않으나,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매우 유연하게 쓰여져, 읽다 보면 어느새 e 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그저 보통 책처럼 자연스럽게 읽지 않고, 눈에 불을 키고 e 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장난기 많은 뻬렉이 몰래 e 를 하나 숨겨두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의도적이 아니었더라도 실수로 e 가 들어간 말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들이 이 책과 뻬렉에 대한 관심이 넘쳐난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인지, 아무튼 이 실종된 e 찾기는 1969년 책이 출판된 이후, 세대를 넘어 가면서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고, 사람들은 뻬렉의 천재성에 감탄하거나, 아니면 순전히 무의미한 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2003 년에 드디어 e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해 4월에 걀리마르 (Gallimard) 사에서 재판되어 나온 실종 의 119 쪽, 위에서 네번째 줄, 왼쪽에서 두번째 단어에 분명히 e 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 이 네번째 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

« Booz dorme non loin du grain qu'on amassait »
(보즈는 우리가 줍던 곡식알 가까에서 잔다)

그런데 여기서 이 dorme 라는 단어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dormir (잠자다) 라는 동사가 접속법 현재 3인칭 단수로 쓰인 것인데, 문맥과 문장 구조상 여기서는 접속법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의 조사에 나선 뻬렉의 추종자들은 원문은 dormait 라고, 즉 e 가 없는 형태라고 주장했습니다. dormaitdormir 동사의 직설법 반과거 3인칭 단수로, 해석은 « 자고 있었다 » 가 되며, 그래야 문맥에도 맞고 문법에도 맞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전 판본들을 보아도 쉽게 확인되는 것이고, 심지어 2003년 재판되어 나온 책들 중에도 dormait 라고, 원문대로 잘 찍혀 있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즉, 재판본들 중에서도 일부 권수에만 오자가 난 것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 실수, 장난, 기적 ? 우선, 현대의 인쇄 기술상 이런 식의 실수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고의적인 장난일 확률이 가장 많은데, 사람들은 제일 먼저 걀리마르 출판사를 의심했습니다. 일부러 이런 소란을 일으켜서 책을 많이 팔고자 하는 속셈 아닐까 하는 것이죠. 그런데 걀리마르사는 이 사건에 대해 정말로 놀라면서, 그러한 상업적 계획이 없음을 진심으로 맹세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인쇄소에 의심이 돌아갔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이야 어디서 왔건, 실질적으로는 인쇄 과정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잘 돌아가고 있던 기계를 잠시 멈추고, 문제의 글자를 바꿔 놓은 다음, 다시 기계를 돌리다가, 또 슬쩍 멈추고는, 글자를 다시 원래대로 수정해 놓고는 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이지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인쇄소 직원인지, 아니면 출판사 직원인지, 아니면 몰래 침입한 제 삼 자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혼자 생각으로 저지른 일인지, 출판사에서 내려온 비밀 방침을 따른 것인지, 등등은 정말로 심각하고 본격적인 수사가 있어야 밝혀질 수 있는 문제였는데, 아무도 그렇게까지 파해칠 마음은 없었나 봅니다. 대신 출판사는 오자가 난 판본들을 가능한 한 모두 거둬들여 파본시키기로 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일하게 e 가 찍힌 실종 판은 모두가 찾아 헤매는 희귀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책의 본문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거의 의식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책의 표지에 e 가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바로 저자의 이름 중에 : Georges Perec. 게다가 이 책은 imaginaire 라는 이름의 총서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까지 치면 다섯 번이나 등장하는 셈입니다. (옆에 그림에는 제목이 안 보이는데, 제목이 흰색 바탕에 흰색 글자로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책을 손에 들고 봐도 잘 안 보입니다.)

lundi 26 novembre 2007

실종 (La Disparition)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1936-1982) 은 대회문 (Le Grand Palindrome) 을 비롯하여 특이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실종 (La Disparition, 1969)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실종된 인물을 찾는 일종의 탐정-추리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책의 제목에는 또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름아닌 글자 e 의 실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 삼백여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단 한번도 e 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문장들에서 e 자만 빼고 인쇄한 것이 아니라, e 가 들어있는 단어 자체를 작가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서양 언어에서나 e 라는 모음은 많이 쓰이겠지만, 불어에는 유난히 e 가 들어간 단어가 많습니다. 그리고 e 는 문법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애초에는 e 가 없던 단어에도, e 를 첨가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동사의 시제를 변화시킬 때, 발음을 구별해야 할 때, 여성형을 만들 때, 등등. 따라서 e 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휘의 선택과 활용을 극도로 제한하겠다고 작가가 스스로에게 구속을 거는 것입니다. 뻬렉은 이러한 형식적인 틀에 구속을 받으면서도 내용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을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다음은 그 중 한 문단 :
Il fut bon pour l'oto-rhino, un gars jovial, au poil ras, aux longs favoris roux, portant lorgnons, papillon gris à pois blancs, fumant un cigarillo qui puait l'alcool. L'oto-rhino prit son pouls, l'ausculta, introduisit un miroir rond sous son palais, tripota son pavillon, farfouilla son tympan, malaxa son larynx, son naso-pharynx, son sinus droit, sa cloison. L'oto-rhino faisait du bon travail, mais il sifflotait durant l'auscultation ; ça finit par aigrir Anton.

보다시피 e 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한 문단만 해도 정말 대단해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삼백쪽이나 계속되니, 그저 놀랍고 신기할 수 밖에 ! 어떻게 e 를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도 이리 교묘하게 문장을 만들어 나갈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따름입니다.

dimanche 25 novembre 2007

회문 (palindrome)

그리쓰어에서 온 접두사 palin- 은 « 다시 »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접두사는 불어에 별로 많은 어휘를 낳지는 않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단어 하나는 palimpseste. palin- + psân (긁다) 이라는 동사의 과거분사로 구성된 이 말은 « 다시 긁어낸 (필사본) » 이라는 뜻.

또다른 잘 알려진 단어로 palindrome 이 있습니다. palin- + drome 으로 구성된 이 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은 다음,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다시 읽어도 똑같은 형태와 의미를 유지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지칭합니다. 방금 달려온 길을 거꾸로 다시 (palin) 달려가는 (drome) 행위에 비유한 것이지요. 불한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 회문 » 이라고 한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아마도 회전하는 문장이라는 뜻인 듯.

회문은 그저 개별적인 단어일 수도 있지만 (예 : ressasser, Éve), 대개는 짤막한 문장들입니다 :

À l'étape épate-la. (그 단계에서 그녀를 놀래켜라.)
Eh ! ça va, la vache ? (야, 암소는 잘 지내냐 ?)
L'ami naturel ? le rut animal. (자연스런 친구 ? 동물적인 발정.)

이 세 빨랑드롬은 말장난을 좋아했던 프랑쓰의 작가 루이즈 드 빌모랑 (Louise de Vilmorin, 1902-1969) 의 창작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또 벨직의 작가 루이 스뀌뜨네르 (Louis Scutenaire, 1905-1987) 의 회문 하나 :

La mère Gide digère mal. (지드 할멈은 소화를 잘 못시킨다.)

특이한 작품을 많이 쓴 프랑쓰의 작가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1936-1982) 은 1969년에 Le Grand Palindrome 이라는 제목의, 엄청나게 긴 회문을 발표했습니다. 1247 개의 단어와 5566 글자로 구성된 이 문장은 아마도 가장 긴 (최소한 불어로 된 것들 중에서는) 빨랑드롬일 것입니다. 그 시작과 끝 :

Trace l'inégal palindrome. Neige. Bagatelle, dira Hercule. Le brut repentir, cet écrit né Perec. L'arc lu pèse trop, lis à vice-versa. Perte. Cerise d'une vérité banale, le Mälstrom, Alep, mort édulcoré, crêpe porté de ce désir brisé d'un iota...

...à toi, nu désir brisé, décédé, trope percé, roc lu. Détrompe-la. Morts : l'Âme, l'Élan abêti, revenu. Désire ce trépas rêvé : Ci va ! S'il porte, sépulcral, ce repentir, cet écrit ne perturbe le lucre : haridelle, ta gabegie ne mord ni la plage ni l'écart.

전문을 감상하려면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