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꼬뮌 드 빠리로부터 팔십여년 뒤에 빠리시는 봉기를 통하여 또한번 시립 자치 정부를 구성합니다. 두번째, 또는 1871년의 꼬뮌 드 빠리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는 빠리시 뿐 아니라 지방의 주요 도시들 (리용, 마르쎄이으, 그르노블, 뚤루즈...) 에도 꼬뮌이 성립되었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말할 때는 종종 그냥 꼬뮌이라고도 합니다.
이 때도 역시,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킨 이유는, 한마디로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당시 프랑쓰는 독불전쟁을 막 치루고 난 참이었는데, 준비없이 무턱대고 일으킨 이 전쟁에서 프랑쓰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습니다. 또한 당시 황제였던 나뽈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면서 제 2 제정이 무너지는 바람에, 프랑쓰는 국내, 국외, 경제, 사회, 군사... 모든 면에서 큰 혼란을 겪습니다. 1870년 9월, 제 3 공화국이 곧 선포되었으나, 이 모든 혼란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오히려 빠리는, 수도까지 쳐들어온 독일군에게 거의 5개월간 포위 공격을 받았고, 아돌프 띠에르 (Adolphe Thiers) 가 지휘하는 새 정부는 결국 1871년 1월, 매우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때 알자쓰와 로렌 지방의 일부가 독일 땅이 됩니다).
모든 경제 활동이 마비된 채,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다섯개월, 특히 추운 겨울을 굶주리면서 버틴 빠리 시민들은 이 항복을, 그리고 무능력한 정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띠에르는 지나치게 긴장이 감도는 빠리를 벗어나, 정부와 국회를 베르싸이으로 옮겼고, 그에 따라 여러 고급 공무원들 및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 대부분이 빠리를 떠났습니다. 결국 빠리에는 가난한 서민 계층만 남은 셈이 되었지요. 그런데 띠에르는 3월 18일, 독일군의 포위 공격 때 쓰던 대포들을 수거하기 위하여 군대를 빠리에 보냈습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빠리시가 무기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우려되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이것이 발단이 되어 빠리의 가난한 노동자 계층은 군대와 무력 다툼을 벌인 끝에, 3월 28일, 빠리시 자치 정부, 즉 꼬뮌 드 빠리를 선포했습니다.
이 1871년의 꼬뮌은 1789년의 꼬뮌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이번 혁명은 더이상 세습 왕권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화국 정권에 대한 거부였으며, 무엇보다도 노동자 계층이 중산 계층에 대항한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맑쓰도 1871년의 꼬뮌을 역사상 최초의 프롤레따리아 혁명으로 평가했고, 레닌도 공산주의가 모델로 삼아야 할 혁명이라고 찬양했다지요. 실제로 꼬뮌 정부는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 최대 노동 시간과 최저 임금 측정, 야근 금지, 남녀 월급 동일, 학교의 무료화, 기업의 국영화, 정교 분리, 등등... 이외에도 가난한 사람, 과부, 고아, 빚에 억눌린 사람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기관과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채 두 달이 못되어 모두 무효로 돌아갔습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좌파 내에서도 의견과 사상이 분분하였고, 여러가지 경험 미숙에다가, 베르싸이으에서 보낸 프랑쓰 정규 부대에 의해 빠리시는 또다시 포위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독일군의 포위가 끝난지 불과 2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계속된 전투 끝에 정부군은 5월 21일, 마침내 빠리 시내를 뚫고 들어오는데 성공하였으며, 22일부터 28일까지 이만 명 이상의 시민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7일간을 가리켜 피의 주간 (Semaine sanglante)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살아남은 꼬뮈나르들도 결국은 단두대형을 선고받거나, 누벨-꺌레도니 (Nouvelle-Calédonie) 로 강제 추방, 또는 강제 노동 같은 매우 가혹한 징벌을 받았습니다. 지방의 꼬뮌들도 모두 엄하게 진압되어 대부분 빠리시보다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런 비극들을 겪는 와중 빠리의 서민들이 불렀던 노래가 랑떼르나씨오날과 버찌의 계절이었습니다.
lundi 21 juille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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