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떵삐는 13세기와 14세기에 유행했던 기악 음악의 한 졍르로, 애초에는 춤곡이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형식의 특징은 같은 악절이 두번씩 반복되면서, 다만 마지막 부분만 살짝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번씩 반복될 때, 첫번째는 열린 형식 (ouvert) 으로, 두번째는 닫힌 형식 (clos) 으로 끝납니다. 따라서 형식을 요약하면 AA' BB' CC'... 와 같습니다. 즉 부속가와 매우 비슷한 것이지요. 에스떵삐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부속가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에스떵삐들은 모두 순수한 기악곡인데, 오로지 단 한 곡, 그리고 가장 오래된 에스떵삐이며 가장 유명하기도 한 깔렌다 마야 (Calenda maia 또는 Kalenda maya) 는 가사를 가지고 있는 성악곡입니다. 이 노래는 라임바웃 데 바께이라쓰 (Raimbaut de Vaqueiras) 라는 트루바두르가 이딸리아에 머물던 중 프랑쓰로부터 온 두 명의 죵글뢰르 (jongleur) 가 연주하는 기악곡을 듣고 여기에 시를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음악을 라임바웃이 작곡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심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에스떵삐도 애초에는 순수 기악 춤곡이었을 확률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또는 이 이야기는 그저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화로 보고, 실제로 이 노래의 시와 음악을 모두 지은 사람이 라임바웃이 맞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또는 가장 오래된 에스떵삐는 옥씨따니 (Occitanie) 에서 유래했다고 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 비록 이딸리아에서 작곡되기는 했어도, 라임바웃은 옥씨따니 사람이니까요. 실제로 불어 estampie 라는 단어는 옥어 estampida 에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14세기에는 istanpita 라고 이딸리아어화된 이름으로 불리는 에스떵삐들이 여러 곡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부제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는 saltarello 라는 부제가 실려 있습니다.
16세기에 유행했던 춤 중에 갸이야르드와 비슷한 것으로 쌀따렐이라는 춤이 있습니다. 이딸리아어로는 saltarello 라고 하는데, 이딸리아어 동사 saltare (= sauter = 뛰다, 도약하다) 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16세기의 쌀따렐과 갸이야르드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쌀따렐이 보다 작은 도약을 하는 춤이고, 갸이야르드는 더 « 힘있는 » (= gaillard) 도약을 하는 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제목을 어떻게 붙였느냐의 문제이지 실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갸이야르드처럼 쌀따렐 역시 빠반 같은 악곡과 짝을 이루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쌀따렐은 갸이야르드보다 역사가 더 깊은데, 이미 14세기부터 쌀따렐이라는 춤곡이 등장했었으며, 이 때의 쌀따렐은 갸이야르드와는 다릅니다. 14세기의 쌀따렐은 모두 단선율 기악곡이며, 오히려 에스떵삐 (estampie) 와 흡사한 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갸이야르드는 흔히 빠반과 결합하여 추어졌던 16-17세기의 춤으로, 빠반이 느리고 장중한 반면, 갸이야르드는 보다 밝고 빠릅니다. 사실 gaillard 라는 단어 자체가 « 활발한, 힘있는, 즐거운 »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빠반이 2박자 또는 4박자 계열인데 반해, 갸이야르드는 3박자 계열, 즉 3/2, 3/4, 6/8 박자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갸이야르드도 빠반과 마찬가지로 이딸리아에서 유래한 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딸리아말로는 gagliarda.
갸이야르드는 이름대로 발을 « 힘차게 » 차 올리면서 추던 춤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쌀따렐 (saltarelle) 과 매우 흡사합니다. 사실상 쌀따렐과 갸이야르드는 이름 말고는 차이가 그다지 없으며, 음악적으로는 특히나 구별이 불가능합니다. 갸이야르드는 빠반과 마찬가지로 프랑쓰와 이딸리아에서 크게 유행했으며, 영국에서 버드, 다울랜드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서 기악곡으로 확립되었습니다.
빠반이라는 춤은 se pavaner 라는 동사를 낳기는 했지만, 공작새 (paon) 와는 사실상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비록 빠반이라는 춤이 마치 공작새가 거닐듯, 여유롭고 느긋하며 거만스러운 데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실제로 이 빠반이라는 춤이 어떤 춤이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6세기 유럽 궁정에서 추워진 것은 확실한데, 실제로 안무에 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춤을 반주하던 음악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음악들의 성격이 모두 느리고, 엄숙하며, 장중한 분위기라는 점에서, 춤도 비슷한 성격을 가졌으리라 짐작해 보는 것입니다.
pavane 이라는 이름은 이딸리아어 padovana 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춤이 이딸리아의 도시 빠도바 (Padova) 에서 유래한 듯 싶습니다. 또는 에스빠냐가 근원지라는 설도 있는데, 그래도 이딸리아의 빠도바를 거친 다음에야 다른 곳에도 전파된 듯 보입니다. 아무튼 이딸리아, 프랑쓰, 에스빠냐, 그리고 심지어 독일의 궁정들에서 16세기 내내 유행하였는데, 특히 영국에서는 기악 음악의 한 형식으로 자리잡으면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버드 (Byrd), 기본쓰 (Gibbons), 다울랜드 (Dowland), 등등이 빠반이라는 건반악기 작품을 정말 많이 남겼지요. 이런 사람들의 작품에서 느리고 4박자 또는 2박자 계열의 빠반은 대개 더 빠르고 즐거운 3박자 계열의 다른 춤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갸이야르드 또는 쌀따렐).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빠반은 흔히 pavan, paven, pavin 이라고 표기되기도 합니다.
보다 현대로 가까이 와서도 몇몇 작곡가들이 빠반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쌍썽쓰 (Camille Saine-Saëns) 의 빠반이 있고, 또 포레 (Gabriel Fauré) 의 빠반도 매우 유명하지요. 하지만 아마도 가장 유명한 빠반은 라벨 (Maurice Ravel) 이 작곡한 죽은 인판따를 위한 빠반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일 것입니다. 이러한 빠반들은 물론 르네썽쓰 시대의 양식과는 매우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빠반의 특성을 잘 살려서, 느리고 무거우며 엄숙하면서도, 상당히 너울너울 춤 분위기가 나는 걸작들입니다.
갸스똥 르루 (Gaston Leroux) 는 룰따비으 (Rouletabille) 연작 외에도 여러 소설을 남겼는데, 유달리 유명한 작품 하나가 있으니, 바로 오페라의 유령입니다. 이 소설은 빠리의 오페라 극장 (갸르니에 궁) 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괴이한 사건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낭만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번쯤 읽어 볼만은 하지만, 뭐가 그리 재미있고 대단한 건지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무려 삼십여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요 ? 또한 뮤지컬 (comédie musicale) 로도 큰 인기를 모았었습니다. 그런에 여기서 특이한 것은, 이 중 프랑쓰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소설이 1910년 발표되었고, 소설을 주제로 한 첫 영화가 이미 1916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최근까지 거의 백여년간을 거치면서, 프랑쓰 사람들 중에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압도적인 대다수는 영미권 영화들입니다. 뮤지컬 역시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 가 작곡하여 런던과 뉴욕의 무대에 오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불어로 된 자료들은 그저, 이러한 소설이 있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정도의 단순한 정보들을 반복하는데 불과하는데 비해, 영어로 된 싸이트들 중에는 이 소설에 — 보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의 주제에 거의 광적으로 열광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신비롭다 못해 기괴한 분위기, 빠리 오페라 극장이라는 어딘가 모르게 낭만적인 장소, 게다가 그 건물의 수백미터 지하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세계, 거기에다 추리적인 색채와 냉소적인 유머까지... 이 모든 것이 영미권 문화의 전통적인 문학 소재였던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이런 것이 일종의 문화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물론 프랑쓰에도 이런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이 소설은 어딘가 모르게 프랑쓰답지 못합니다. 설사 프랑쓰 작가가 불어로 쓴 작품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그리고 사실 외국인들은 원작을 직접 읽어 볼 기회가 드물어서, 아마 문학작품으로서 오페라의 유령 보다는, 그 전체적인 주제와 줄거리에만 집착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실제로 원작을 읽어 보면, 그렇게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체는 너무 오래되어 색바랜 느낌이 물씬 풍기고, 줄거리는 너무 황당무계하여 현실감이 없습니다. 게다가 마치 실제로 갸르니에 궁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고하듯이, 드문드문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인용하면서, 쓰고 있는데, 혹시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 다시 읽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무튼 아래 동영상은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중 유명한 이중창을 싸라 브라이트만 (Sarah Brightman) 과 안또니오 반데라쓰 (Antonio Banderas) 가 부른 것입니다. 한때 작곡가의 부인이기도 했던 브라이트만은 뮤지컬의 초연에서 여주인공 크리스띤 다에 (Christine Daaé) 역을 맡은 이후 이 역할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반데라쓰는 이 뮤지컬에 출연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아마 특별한 기회에 아래와 같은 자리가 마련된 것 같습니다. 원래 오페라의 유령 에릭 (Érik) 은 너무 추하게 생겨 가면을 쓰고 다니는데, 안또니오 반데라쓰는 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잘 생긴 것 같군요. 그리고 음역이 너무 높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남자 가수들이 부른 걸 들어 보면 훨씬 저음이던데... 그래도 반데라쓰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인 것 같습니다.
땅땅하면 저는 어딘가 모르게 룰따비으가 생각납니다. 룰따비으도 프랑쓰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허구 속의 인물로, 역시 취재보다는 사건 해결에 집중하는 젊은 기자입니다. 다만, 땅땅이 만화의 주인공인 반면, 룰따비으는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룰따비으는 프랑쓰의 작가 갸스똥 르루 (Gaston Leroux, 1868-1927) 가 만들어낸 인물로, 노란 방의 비밀 (Le Mystère de la chambre jaune, 1907) 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 후 이 책의 후속편이랄 수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부인의 향기 (Le Parfum de la dame en noir, 1908) 에도 등장하지요. 그외에도 르루는 룰따비으가 등장하는 추리소설들을 여러권 발표하였습니다 (총 여덟 편).
이 인물의 원래의 이름은 죠제프 죠제팡 (Joseph Joséphin) 인데, 룰따비으는 일종의 별명처럼 쓰입니다. 불어를 아는 사람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Rouletabille 는 Roule ta bille, 즉 « 너의 구슬을 굴려라 » 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bille 는 직역하면 « 구슬 » 이지만, 때로는 사람의 동그란 « 머리 » 를 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대중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이름을 « 머리를 굴려라 » 라고 이해하면 더 재미있겠지요. ^^
실제로 소설에서 룰따비으는 매우 동그란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특히 이마가 넓어서 더욱 동글동글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동그란 머리를 굴려서 복잡한 사건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지요. 에르제가 그린 땅땅 역시 매우 동그란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룰따비으의 이야기들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었고, 텔레비젼 연속극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프랑쓰에서 다시 룰따비으 바람이 분 것은 2003년에 브뤼노 뽀달리데쓰 (Bruno Podalydès) 가 노란 방의 비밀을 다시 연출하면서이지요. 여기서 룰따비으 역할은 유명 배우이자 브뤼노의 동생인 드니 뽀달리데쓰 (Denis Podalydès) 가 맡았습니다. 사실 소설 속 룰따비으는 18세인데, 드니 뽀달리데쓰가 이 역할을 연기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니 뽀달리데쓰는 소설 속의 묘사처럼 동그란 머리와 똘망똘망한 눈빛을 갖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이 역할에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어린 배우를 쓴 것보다 더 현실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니 뽀달리데쓰 이외에도 이 영화에는 프랑쓰의 수많은 명배우들이 등장했습니다 : 싸빈 아제마 (Sabine Azéma), 삐에르 아르디띠 (Pierre Arditi), 미꺄엘 롱달 (Michael Lonsdale), 끌로드 리슈 (Claude Rich)... 이들 대부분이 같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후속작 검은 옷을 입은 부인의 향기 (2005) 에도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저는 개인적으로 르루의 소설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치밀하게 짜여진 추리소설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영화는 나름대로 독특한 유머가 돋보여서 재미있었습니다.
관따나메라는 죠 다쌍의 초기 히트곡 중 하나입니다 (1965). 물론 이 노래는 죠 다쌍보다 훨씬 이전 (1928) 에 호쎄이또 페르난데스 (Joseíto Fernandez) 가 불러서 유명해졌으며, 그 후로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여러 나라 판이 꾸준히 소개되어 왔지요.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Guajira guantanamera, 즉 « 관따나모 (Guantánamo) 의 과히라 » 였는데, 차차 제목이 줄어 오늘날은, 그리고 죠 다쌍이 이 노래의 불어판을 불렀을 무렵에도 이미 관따나메라라고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에스빠냐어 (보다 정확히는 꾸바어) guajira 는 « 시골 여자 » 라는 뜻이 있기에, 이 노래도 때로는 « 관따나모의 시골 처녀 » 라고 번역되기도 하나, 여기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과히라는 사실 전형적인 꾸바 음악의 한 졍르로서, 일종의 대중적인 시골 민요를 말합니다. 물론 « 시골 여자 » 를 뜻하는 guajira 와 « 시골 민요 » 를 뜻하는 guajira, 두 단어는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bergamasque 가 « 베르가모에서 노래한 춤곡 » 과 « 베르가모 여자 » 를 동시에 칭하는 것처럼. 아무튼 볼살이 포동포동한 젊은 죠 다쌍이 부르는 관따나메라를 들어보세요.
외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듯 하지만, 프랑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가수로 죠 다쌍 (Joe Dassin)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 출신이지만, 거의 모든 활동을 프랑쓰에서 했습니다. 영화감독 쥘 다쌍 (Jules Dassin) 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가 마꺄르띠슴 (maccarthysme) 의 횡포로 망명하게 되면서, 유럽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교육을 받았고, 결국 그르노블에서 고등학교 졸업장 (baccalauréat) 을 땄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불어를 전혀 억양 없이 말할 줄 알며,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후에도 결국은 프랑쓰로 되돌아와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죠 다쌍은 육십년대와 칠십년대 동안 프랑쓰와 불어권 국가들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며, 여전히 인기가 한창이던 1980년에 불행히도 41세의 나이로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지 삼십여년 가까이 되는 지금까지도 프랑쓰에서는 그의 노래들이 여전히 인기가 있으며, 그의 전기가 쏟아져 나오고, 텔레비젼에서도 툭하면 죠 다쌍 특집, 죠 다쌍 히트곡 모음, 죠 다쌍의 숨겨진 인터뷰 발굴... 따위의 프로그람들을 방송하곤 합니다.
다쌍은 단지 한 두 곡의 히트곡을 낸 사람이 아닙니다. 이루 셀 수가 없지만 최소한 사십 곡은 됩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부른 노래들이 대부분 음악적으로 단순한, 말그대로 대중 유행가 (chanson populaire) 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때문에 다쌍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현학적인 음악보다는, 사람들의 가슴에 쉽게 와 닿는 노래가 좋은 노래라는 믿음을 가졌던 가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노래들이 유치하거나 저속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처음 들어도 친숙하게 들리고, 금방 외워지고, 따라부르기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노래들이지요. 그의 노래들은 즐거운 가사에 즐거운 리듬을 가지고 있어도, 항상 약간의 우울함이 젖어 있습니다. 가사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 역시 일상 생활입니다 : 아침마다 빵 사러 가는 얘기 (Le petit pain au chocolat), 자동차가 밀려서 짜증나는 얘기 (Bip-bip, La complainte de l'heure de pointe) 모기가 물어서 귀찮다는 투정 (Le moustique), 프랑쓰에서 유명한 만화책 속의 주인공들 (Les Dalton) ... 그리고 물론 동서고금 유행가들의 영원한 주제, 사랑을 노래한 곡도 많지요.
재미있는 것은 그의 노래 대부분이 영미권 노래의 편곡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원곡들은 거의 단 한 곡도 유명세를 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어 가사가 붙고, 약간의 편곡이 가해진 후 죠 다쌍에 의해 불려지면, 발표되는 족족 프랑쓰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것이지요. 그 중 몇 곡은 프랑쓰에서 너무 유명해지자 오히려 대표적인 프랑쓰 노래로서 원래의 나라에 또는 전 세계에 재수출 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 곡이 레 셩-젤리제 (Les Champs-Élysées) 입니다. 프랑쓰 문화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알 법한 이 노래는 사실은 윌쉬 (Wilsh) 와 데이건 (Deighan) 이라는 사람들이 작사작곡한 워털루 로드 (Waterloo Road) 라는 영국 노래였다고 합니다. 삐에르 들라노에 (Pierre Delanoë) 가 개작한 불어판 가사는 아브뉘 데 셩젤리제에 가면 원하는 게 다 있다 라는 단순하고 유쾌한 내용입니다.
작 드미의 재미있고 환상적인 영화 당나귀가죽 (Peau d'âne) 에 출연한 바 있는 델핀 쎄릭 (1932-1990) 은 드미와 마찬가지로 몽빠르나쓰 묘지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무덤은 그녀의 살아 생전 이미지처럼 깔끔하고 단정합니다.
쎄릭의 무덤
당나귀가죽에서 쎄릭은 응큼한 생각을 품고 있는 약간 엉뚱한 라일락의 요정 (Fée des lilas) 을 연기했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는 대부분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역할들을 맡았습니다. 특히 그녀의 이름을 널리게 한 작품은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알랑 레네 (Alain Resnais) 의 지난해 마리엔바드에서 (L'Année dernière à Marienbad, 1961) 입니다. 알랑 로브-그리예 (A. Robbe-Grillet) 가 각본을 쓴 이 난해한 영화는 두 남녀가 그 이전 해에 마리엔바드에서 만난 적이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고민하는 수수께끼같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뒤이어 쎄릭은 다시 한번 레네의 대작으로 평가받는 뮈리엘 또는 어느 귀환 (Muriel ou le temps d'un retour, 1963) 에서 주인공 엘렌 역을 맡습니다. 제목의 뮈리엘은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라, 영화 속에는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 인물로서, 아련한 기억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지난해 마리엔바드에서 가 사실과 가정, 기억과 꿈 등을 뒤섞는 몽환적인 작품인데 비해, 뮈리엘 은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며, 사실주의적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그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쎄릭의 또다른 주목할만한 출연작은 프렁쓰와 트뤼포의 도둑맞은 입맞춤 (Baisers volés, 1968) 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이제 청년이 된 엉뜨완 드와넬의 흠모를 받는 연상의 기혼녀 역할을 하는데, 영화 속에서 엉뜨완 드와넬이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 « Ce n'est pas une femme. C'est une apparition ! » (그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환영이야.) 이 대사는 영화 속 인물 뿐 아니라, 신비로운 미모와 그윽한 목소리, 늘 노래부르는 듯한 억양을 가졌던 실제 델핀 쎄릭에게도 자주 적용되었습니다.
쎄릭은 1971년에는 최초로 엘리자벳 바또리 (Elisabeth Bathory) 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붉은 입술 (Les Lèvres rouges) 에서 이 유명한 흡혈 살인범을 연기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두 편의 로제 (사고, 인형의 집), 두 편의 뷔뉘엘 (은하수, 중산계층의 은밀한 매력), 두 편의 아께르만 (쟌 딜만, 황금의 팔십년대), 세 편의 뒤라쓰 (라 뮈지꺄, 인디아 쏭, 박스떼르, 베라 박스떼르) 영화를 찍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스스로도 직접 몇 편의 영화들을 감독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모두 여성인권운동의 발전을 위한 자료영화들입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여러 여배우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예쁘게 꾸미고 입닥치고 있어 (Sois belle et tais-toi, 1975-77).
아래의 비데오는 드미의 영화 당나귀가죽의 한 장면으로, 대녀인 당나귀가죽 (꺄트린 드뇌브) 에게 아버지와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대모인 라일락의 요정이 노래로 설교하는 장면입니다. (그 이유는 사실은 자기가 결혼하고 싶어서.^^)
당나귀가죽 중 라일락 요정의 충고 Les conseils de la Fée des lilas, extraits du film Peau d'âne
문화와 예술, 학문과 지식의 보금자리라 믿어지는 빠르나쏘쓰 산은 빠리의 한 구역과 프랑쓰의 문학 운동에 그 이름을 주었을 뿐 아니라 gradus ad Parnassum [그라두쓰 아드 빠르나쑴] 이라는 라띠나어 표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직역하면 « 빠르나쏘쓰로 오르는 계단 », 의역하면 « 예술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밟아야 할 체계적인 과정 » 을 뜻하는 이 표현은 사실상 교본, 사전, 자습서, 연습문제 같은 책의 제목으로 자주 쓰였고, 더 나아가 그런 부류의 책을 포괄하는 일반 용어가 되었습니다. 불어에서도 gradus ad Parnassum [그라뒤쓰 아드 빠르나썸] 또는 그저 gradus [그라뒤쓰] 라고 하면, 특별히 라띠나어 시 작법을 설명한 책과 라띠나어 운율 사전 등을 칭합니다.
시 외에도 이 표현은 종종 음악 분야에서도 쓰였습니다. 특히 유명한 저술 하나는 외스터라이히의 작곡가 푹쓰 (Johann Joseph Fux) 가 지은 Gradus ad Parnassum 입니다 (1725). 스승과 제자의 대화 형식으로 쓰여진 이 대위법 설명서는 많은 유명 작곡가들의 교본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끌레멘띠 (Muzio Clementi) 의 Gradus ad Parnassum (1817) 은 글로된 저술이 아니라, 피아노를 위한 실제 음악 작품입니다. 총 100 곡으로 구성된 이 피아노 연습집은 갈수록 난이도를 높여가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게끔 엮어졌기 때문에, 이 백 곡을 차근차근 연마하면 이론적으로는 피아노의 정상, 즉 빠르나쓰의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피아노를 배워 보신 분들은 아마 아농 (Charles-Louis Hanon) 이나 체르니 (Carl Czerny) 의 연습곡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 교본들이 바로 그라두쓰 아드 빠르나쑴의 일종입니다.
드뷔씨의 유명한 Doctor Gradus ad Parnassum 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의 구석 (Children's Corner) 의 첫 곡인 이 작품은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지겨워하는 연습곡을 의인화하여 박사라는 호칭을 붙였고, 그럼으로써 제목만 들어도 따분하고 현학적인 느낌을 줍니다. 곡 자체도 음계 연습을 연상시키지만, 물론 이 작품은 연습곡이 아니라 재미있는 풍자곡이지요.
Le Temps des cerises (버찌철, 버찌의 계절) 라는 노래는 랑떼르나씨오날과 더불어, 1871년의 꼬뮌 이후 크게 유행했던 저항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이 노래는 꼬뮌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고, 1866년, 제 2 제정 치하에서 작곡되었습니다. 하지만 1871년의 꼬뮌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 해 5월 말, 피의 주간 (Semaine sanglante) 이라고 불리는 한 주 동안, 수만 명의 꼬뮈나르 (communard = 꼬뮌에 참가한 사람) 들이 무참히 학살되고 나자, 이 사건과 이 노래 사이에 깊은 연관이 생겨났습니다. 아마도 마침 버찌철이 막 시작되고 있었고, 버찌와 피의 색깔이 닮은 데다가, 이 노래가 전하고 있는 쓸쓸함이, 너무나 짧게 끝나 버린 꼬뮌 정부 (약 두 달) 에 대한 아쉬움과 겹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이 노래의 작사가 졍-바띠스뜨 끌레멍 (Jean-Baptiste Clément) 은 비록 뒤늦게나마, 피의 주간에 학살당한 한 무명의 간호사에게 이 노래를 헌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금도 이 노래는 혁명가로, 좌익 사상을 담은 노래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사실 그냥 사랑의 노래로 보아도 좋습니다. 랑떼르나씨오날이나 라 마르쎄이예즈에 비하면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온순하고, 설사 혁명에 대한 상징을 찾아볼 수 있다고는 해도, 훨씬 덜 직설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음악적으로도 (작곡가는 엉뜨완 르나르) 랑떼르나씨오날이나 라 마르쎄이예즈보다 더 완성도가 높습니다. 필경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오늘날 버찌철은 정치적 상황을 떠나 많은 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랑떼르나씨오날이나 라 마르쎄이예즈보다 국제적으로는 덜 알려진 듯 하지만, 하야오 미야자끼의 팬들은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놀랍게도 빨간 돼지 (Porco rosso) 에 이 노래가 등장하니까요. 아마도 일본 가수가 부르는 듯 한데, 불어 발음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들을만 합니다. 영화 속에서 버찌철은 직접적인 정치적 의미는 없고, 그저 막연한 향수감을 불어 일으키는 아름다운 노래로만 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노래를 통해, 젊은 시절 노동 조합원으로 활동했던 미야자끼의 과거를 보기도 하더군요. 또한 1996년,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프렁쓰와 미떼렁 (François Mitterrand) 이 죽었을 때, 바르바라 헨드릭쓰 (Barbara Hendricks) 는 그에 대한 마지막 추모로 바스띠으 광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스띠으 근처에 사는 저는 그 때 집에 앉아서 창문으로 울려 들어오던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Quand nous chanterons, le temps des cerises, Et gai rossignol et merle moqueur Seront tous en fête. Les belles auront la folie en tête Et les amoureux du soleil au cœur Quand nous chanterons, le temps des cerises, Sifflera bien mieux le merle moqueur.
Mais il est bien court, le temps des cerises Où l’on s'en va deux cueillir en rêvant Des pendants d'oreille. Cerises d’amour aux robes pareilles Tombant sur la feuille en gouttes de sang Mais il est bien court, le temps des cerises Pendants de corail qu’on cueille en rêvant.
Quand vous en serez au temps des cerises, Si vous avez peur des chagrins d’amour, Evitez les belles. Moi qui ne crains pas les peines cruelles, Je ne vivrai point sans souffrir un jour. Quand vous en serez au temps des cerises, Vous aurez aussi des peines d’amour.
J’aimerai toujours le temps des cerises. C’est de ce temps-là que je garde au cœur Une plaie ouverte. Et Dame Fortune, en m’étant offerte Ne pourra jamais fermer ma douleur. J’aimerai toujours le temps des cerises Et le souvenir que je garde au cœur.
버찌철에 우리가 노래를 하면, 즐거운 꾀꼬리와 장난스런 메를 (새의 일종) 도 모두 모여 축제를 열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들은 머리에 공상을 담을 테고,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가슴에 태양을 담을 것이다. 버찌철에 우리가 노래를 하면, 장난스런 메를이 더 잘 지저귈 것이다.
하지만 버찌철은 너무 짧다. 둘이서 꿈을 꾸며 버찌를 따다가 귀걸이를 만드는 철, 저리도 아름다운 빛깔의 사랑의 버찌가 나뭇잎 위로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철. 버찌의 계절은 너무 짧다. 꿈꾸며 산호빛 귀거리를 따는 철...
버찌철이 왔는데도 사랑의 아픔을 겪기 싫다면, 미녀들을 피하라. 잔인한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는 살다 보면 언젠가 괴로울 것을 알고 있다. 버찌철이 오면 당신들도 사랑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나는 영원히 버찌철을 좋아할 것이다.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상처는 바로 이 계절에 생긴 것. 자연의 어머니도 내 상처를 절대로 아물게 못한다. 나는 영원히 버찌철을 좋아할 것이고, 마음 속에 그 추억을 간직할 것이다.
오늘날 라 마르쎄이예즈는 우파와 극우파의 « 책략 » 으로 인해 프랑쓰 국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 된 느낌이지만, 20세기 초반까지도 이 노래는 대표적인 저항의 노래로서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불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길을 걸은 노래가 하나 더 있습니다 : 바로 랑떼르나씨오날 !
랑떼르나씨오날은 1871년 6월, 꼬뮌 (Commune) 혁명의 실패와 그에 뒤따른 끔찍한 진압을 겪고난 후, 으젠 뽀띠에 (Eugène Pottier) 라는 정치가이자 시인이, 라 마르쎄이예즈의 선율에 맞춰 부를 수 있도록 가사를 쓴 노래입니다. 실제로 두 노래는 가사를 서로 바꿔불러도 꼭 들어 맞습니다. 그리하여 몇년간 이 노랫말은 라 마르쎄이예즈와 함께 불리웠는데, 1888년, 벨직 출신의 노동자 음악가 삐에르 드제떼르 (Pierre Degeyter) 가 여기에 새로운 선율을 작곡하여 붙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랑떼르나씨오날이 태어났습니다.
이 새로운 랑떼르나씨오날은 1888년, 릴 (Lille) 의 노동자 축제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선보임과 동시에 큰 호응을 얻었으며, 다음해 빠리에서 결성된 제 2 차 국제 노동자 연맹 (La IIe Internationale) 의 공식 찬가로 채택되었습니다. 이후로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의 사회당, 공산당, 노동 조합, 기타 좌파 성향의 여러 모임들에서 찬가로 불려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쏘련의 국가 (hymne national) 이기도 했답니다. 그 때문에 각 나라 말로 번역/각색된 노랫말이 있으며, 불어판 자체도 애초에 비해서 조금 달라졌습니다. 현재 프랑쓰에서 불려지는 랑떼르나씨오날의 1절 가사 :
Debout ! les damnés de la terre, Debout ! les forçats de la faim, La raison tonne en son cratère : C’est l’éruption de la fin. Du passé faisons table rase, Foule esclave, debout ! debout ! Le monde va changer de base : Nous ne sommes rien, soyons tout ! C’est la lutte finale. Groupons-nous et demain L’Internationale Sera le genre humain.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우리말 판의 가사가 있긴 하지만, 번역이나 각색으로 보기에는 너무 내용이 달라, 직역을 해 보았습니다 :
일어서라, 이 땅의 저주를 받은이여 ! 일어서라, 허기진 죄수여 ! 이성이 들끓으니, 이제 마지막 폭발이다. 과거는 깨끗이 지우자. 노예의 군중이여, 일어서라, 일어서라 ! 세상의 기반을 바꿀 때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 되도록 하자. 자, 최후의 전투다. 함께 뭉치자. 내일은 모든 인류가 노동 연맹을 이룰 것이니.
저는 이 노래를 처음 귀로만 접했을 때, 마지막 구절을 « demain l'international sera le genre humain » 으로 들었습니다. 미래에는 남자, 여자, 백인, 흑인, 황인, 부자, 빈자, 프랑쓰인, 한국인, 등의 구별 없이, 지구 상에 오로지 단 하나의 인종, 즉 국제인이라는 인종 만이 생길 것이다, 라는 바람 또는 믿음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 정말 좋은 노래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l'international 이 아니라 l'Internationale 이더군요.^^ 이 문맥에서 l'Internationale 은 l'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Travailleurs 의 준말로, 1864년 이후로 여러 차례 조성되었던 « 국제 노동자 연맹 » 을 가리킵니다. 결국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이 동맹에 참가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얘기지요.
아무튼, 똑같이 혁명가로 출발한 라 마르쎄이예즈는 오늘날 프랑쓰라는 한 기존 정권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어 버렸는데 비해, 랑떼르나씨오날은 아직도, 그 이름처럼 전 세계에서 저항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7월 14일은 프랑쓰공화국의 국가 축일 (Fête nationale) 로서, 도처에서 삼색기가 휘날리고, 국가 (hymne national) 라 마르쎄이예즈가 울려 퍼집니다. 남부지방 (특히 마르쎄이으) 군인들이 불러서 유명해지는 바람에 이런 이름으로 굳어졌지만, 애초에 이 노래는 스트라쓰부르 (Strasbourg) 에 주둔하던 랑 군대 (Armée du Rhin) 의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랑 군대의 한 젊은 장교였던 루제 들 릴 (Claude-Joseph Rouget de Lisle) 은 스트라쓰부르 시장의 청을 받아, 1792년 4월 25일, 곧 외스터라이히와 전쟁에 들어갈 혁명군들을 위해 Chant de guerre pour l'Armée du Rhin (랑 군대를 위한 전쟁가) 이라는 노래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루제 들 릴이 가사를 쓴 것은 확실하나, 음악도 정말 그가 작곡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랬으리라고 그냥 믿고 있을 뿐이지요.
북동부에서 작곡된 이 노래가 어찌어찌하여 남쪽까지 내려가게 되었고, 남쪽 사람들이 다시 빠리까지 가지고 올라오면서, 이 노래는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어, 1795년 7월 14일, 프랑쓰의 국가로 공식 채택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어딘지 한 나라의 국가답지 않은 면이 있어서, 저는 마음에 듭니다. 선율은 슬프고 쓸쓸하며, 가사는 매우 끔찍합니다. 혁명군이 전쟁에 나가면서 부르던 노래니 그럴 수 밖에 없지요. 모두 7절까지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함 일색이라, 이제는 가사를 바꾸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매우 자주 나옵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 애국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1절 밖에는 모르지요.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 ! Contre nous de la tyrannie, L'étendard sanglant est levé (bis). Entendez-vous dans les campagnes Mugir ces féroces soldats ? Ils viennent jusque dans nos bras Égorger nos fils, nos compagnes ! Aux armes, citoyens Formez vos bataillons Marchons, marchons !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
(자, 조국의 자식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 폭정은 우리에 대적하여 피묻은 깃발을 올렸다, 피묻은 깃발을 올렸다. 들판에서 저 잔인한 군인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는가 ? 그들은 우리의 품 안에까지 쳐들어와, 우리의 자식과 아내의 목을 따질 않는가 !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 열을 지어, 걷고 또 걷자 ! 저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들의 논밭을 적실때까지 !)
인터넷 여기저기에는 프랑쓰 정부가 군악부에게 연주시킨 매우 공식적인 라 마르쎄이예즈 녹음이나, 아니면 한때 마리안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우파 정부를 위해서라면 혼신의 희생을 마다 않는 미레이으 마띠으 (Mireille Matthieu) 가 애국심에 복받쳐 열창하는 동영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둘 다 너무 제 취향이 아니라서, 저는 영화 꺄자블렁꺄 (Casablanca) 중 한 장면을 골랐습니다. 이 장면에서 라 마르쎄이예즈는 프랑쓰의 국가로 불려진다기 보다는 권위적인 독일군, 그들과 한 패인 프랑쓰의 비쉬 정부에 대한 혁명가, 저항가로서 불려지기에, 훨씬 더 노래의 본의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륏은 현대의 기타 (guitare) 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현악기로, 고대부터 여러 문명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유럽의 륏은 중세에 아랍 문화권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그 때문에 악기의 이름에도 아랍어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luth 이라는 불어는 아랍어 ud 에서 왔는데, 이것은 물론 악기 자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 (재질로서의) 나무 »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악기의 주 재료가 나무이기 때문이지요. 아랍어에서 이 단어는 악기 외에도 나무로 만든 다른 물건들, 예를 들면 « 탁자 » 따위를 뜻하기도 한답니다. 이 단어에 정관사 al 을 붙이면 al ud 가 되는데, 이 표현이 유럽으로 건너오면서,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첫글자 a 가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azimut, hasard, aubergine, abricot 에서 보았듯이, 아랍어 정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불어 어휘들에서 문제가 되는 글자는 대개는 l 이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륏은 대략 13세기 무렵부터 서양 음악에서 매우 인기있는 악기가 되었는데, 워낙 종류가 다양했기 때문에, 단 한마디로 어떤 악기라고 정의 내리기는 힘듭니다. 모양과 크기도 가지 각색이었고, 줄의 수, 조율법, 연주법도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 중세 문헌에서 륏이라고 하면 사실 어떤 특정한 악기가 아니라, 현악기 전체를 뜻하는 포괄적인 명사로 이해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불어에서는 지금도 luthier 는 륏 뿐 아니라, 바이올린, 첼로, 기타, 멍돌린 등등 모든 종류의 « 현악기를 만들고 파는 사람 » 을 뜻합니다. 반면 luthiste 는 오로지 « 륏 연주자 » 만을 뜻합니다.
13세기의 유명한 성가 모음집 Cantigas de Santa Maria (성모의 노래) 의 한 필사본 (Bibliothèque de l'Escurial, J. b. 2) 에 실린 륏으로 추정되는 악기의 그림. 여기서는 륏이 훗날의 륏과 매우 닮은 모양을 가졌지만, 실제로 중세 필사본에서 발견되는 륏 그림들은 매우 다채롭습니다. 르네썽쓰 시기를 지나면서 륏은 차차, 배를 반 쪽으로 자른 모양에, 여섯 개의 줄을 달고, 짧은 손잡이를 갖추었으며, 그 끝이 뒷쪽으로 꺾어진 모습으로 굳어져 갔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 사진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배를 반쪽으로 잘라서 만든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륏에는 여전히 여러가지 변수가 많았습니다. 우선 줄의 수가 여섯 개라고 했지만, 사실은 각각의 음을 내는데 두 개의 줄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줄은 흔히 이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대개는 열한 개의 줄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2 + 2 + 2 + 2 + 2 + 1. 하지만 이 역시 시대와 지역별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각각의 줄을 어떤 음으로 조율하는 가도 오래동안 변동이 심했는데, 1640년 이후로는 프랑쓰의 작곡가였던 드니 고띠에 (Denis Gaultier, 1600 ?-1672) 의 규칙을 따라 라1 - 레2 - 파2 - 라2 - 레3 - 파3 로 조율하는 관습이 굳어졌다고 합니다. 드니 고띠에 외에도 16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 각국에는 륏 음악 전문 작곡가들이 매우 많았는데, 불행히도 오늘날에는 대부분 잊혀진 이름들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여전히 종종 연주되는 작곡가는 필경 죤 다울랜드 (John Dowland, 1562-1626) 일 듯 싶습니다.
John Dowland, Fortune my foe, P 62, interprété par Valéry Sauvage
Bergamo 에 해당하는 불어 형용사는 bergamasque 입니다 (이딸리아어로는 bergamasco/a). « 베르가모의, 베르가모 사람의, 베르가모 언어의... » 또한 명사화 시켜서, « 베르가모 지방 언어, 베르가모 주민, 베르가모 출신 사람 » 이란 뜻도 되구요. 물론 사람을 칭할 때는 첫자를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 la Bergamasque = « 베르가모 여자 ».
여성명사이되 첫자를 소문자로 쓰면 (la bergamasque), « 베르가모에서 유래한 춤, 그 춤을 위한 음악, 노래 » 를 뜻합니다. 그런데 사실 베르가마스크를 정확히 정의내리기는 힘듭니다. 16-17세기에 유행했던 이 민속춤은 뚜렷하게 정해진 양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 즉흥적이고 자발적으로 추어졌던 것 같습니다. 음악 역시 매우 광범위하여, 처음에는 이 춤을 반주할 수만 있다면 어떤 종류든지 간에 베르가마스크 라 불렸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간단한 선율에, 빠른 2박자, 4박자 계열의 음악이었지만요. 또한 흔히 베르가모 지방 언어로 된 가사가 붙기도 했다고 합니다.
16세기말부터 베르가마스크는 기악 음악의 한 졍르로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특징은 역시 빠른 2박자, I-IV-V-I 화성진행의 반복, 그 위에 얹혀진 간단한 선율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특징들 중 그 어떤 것도 오로지 베르가마스크에만 고유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베르가마스크는 흔히 모레스크 (mauresque) 니, 따렁뗄 (tarentelle) 이니, 쌀따렐로 (saltarello) 니, 그리고 심지어 샤꼰 (chaconne) 같은, 다른 춤곡과 자주 혼동됩니다.
많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베르가마스크라는 제목을 가진 기타 (guitare) 와 륏 (luth) 음악을 썼지만, 프레스꼬발디 (Girolamo Frescobaldi) 정도를 제외하면 오늘날은 대부분 잊혀진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베르가마스크 라는 제목을 가진 음악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드뷔씨 (Claude Debussy) 의 베르가마스크 조곡 (Suite bergamasque, 1890/1905) 일 것입니다. 다만 이 작품은 베르가모 시와도, 춤과도, 음악 졍르와도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이 음악은 드뷔씨가 베를렌 (Paul Verlaine) 의 시집 우아한 축제 (Les Fêtes galantes, 1869) 를 읽고서 그 느낌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일 따름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 달빛 » 의 한 구절로부터 이 조곡의 전체 제목이 유래했습니다.
베를렌의 시 « 달빛 (Clair de lune) »
Votre âme est un paysage choisi Que vont charmant masques et bergamasques Jouant du luth et dansant et quasi Tristes sous leurs déguisements fantasques.
Tout en chantant sur le mode mineur L’amour vainqueur et la vie opportune, Ils n’ont pas l’air de croire à leur bonheur Et leur chanson se mêle au clair de lune,
Au calme clair de lune triste et beau, Qui fait rêver les oiseaux dans les arbres Et sangloter d’extase les jets d’eau, Les grands jets d’eau sveltes parmi les marbres.
첫 연 (strophe) 의 대충 번역 :
당신의 영혼은 선택된 경치
그 속으로 멋부리며 지나가는 가면과 베르가마스크의 행렬 륏을 연주하며 춤추며
화려한 변장 뒤에서 슬퍼하며.
이 시의 두번째 행에 bergamasque 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조차도 베르가모 도시나 베르가마스크 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여기서 이 단어는 그 앞 단어 masque 와 닮은 발음을 반복하고, 두 줄 밑의 fantasque 와 운을 맞추기 위한 싯적 언어일 뿐, 그 실제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à ce propos, voir Parnasse). 여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애초에는 베르가마스크 조곡의 일부로 « 가면 (Masque) » 이라는 악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 가면 » 은 분리되어 독립된 곡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또한 조곡의 세번째 악장은 다름아닌 매우 유명한 « 달빛 (Claire de lune) » 이지요. 역시 위의 시에서 그 제목이 비롯되었습니다.
드뷔씨의 베르가마스크 조곡 중 « 달빛 »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축제는 드뷔씨 외에 또다른 프랑쓰 작곡가 갸브리엘 포레 (Gabriel Fauré) 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포레의 마스크와 베르가마스크 (Masques et Bergamasques, op. 112) 는 애초에는 르네 포슈와 (René Fauchois) 의 동명 제목을 가진 연극을 위한 부수 음악으로, 현재는 여덟 곡의 음악이 관현악 조곡처럼 묶여서 연주됩니다. 이 여덟 곡은 사실 모두 독립적인 작품들로, 그 중 일부는 이미 출판된 적이 있는 작품이며, 연극을 위해 새로 작곡된 음악들도 그들 사이에 어떤 밀접한 응집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두 우아하고 감미롭고 향수어린 춤곡들 (므뉘에, 갸봇, 빠반) 로, 연극의 주제, 그리고 연극의 기원이 된 베를렌의 시집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음악들입니다. 이 중 여섯번째 곡은 역시 « 달빛 (Claire de lune) »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위에서 인용된 베를렌의 시를 실제로 가사로 사용하는 성악곡입니다. 또한 여덟번째 곡 « 빠반 (Pavane) » 역시 매우 유명하지요.
베로닉 졍쓰 (Véronique Gens) 가 부르는 포레의 마스크와 베르가마스크 중 « 달빛 »
Sarah Chang joue le concerto pour violon en ré majeur, op. 35, de Tchaïkovsky, avec l'Orchestre National de France , dirigé par Kurt Masur, le 22 novembre 2006, au Théâtre des Champs-Élysées, Paris.
S. Chang et K. Masur sous des applaudissements et des bravos
Sarah Chang m'a signé un autographe après le conc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