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가죽에서 쎄릭은 응큼한 생각을 품고 있는 약간 엉뚱한 라일락의 요정 (Fée des lilas) 을 연기했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는 대부분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역할들을 맡았습니다. 특히 그녀의 이름을 널리게 한 작품은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알랑 레네 (Alain Resnais) 의 지난해 마리엔바드에서 (L'Année dernière à Marienbad, 1961) 입니다. 알랑 로브-그리예 (A. Robbe-Grillet) 가 각본을 쓴 이 난해한 영화는 두 남녀가 그 이전 해에 마리엔바드에서 만난 적이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고민하는 수수께끼같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뒤이어 쎄릭은 다시 한번 레네의 대작으로 평가받는 뮈리엘 또는 어느 귀환 (Muriel ou le temps d'un retour, 1963) 에서 주인공 엘렌 역을 맡습니다. 제목의 뮈리엘은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라, 영화 속에는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 인물로서, 아련한 기억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지난해 마리엔바드에서 가 사실과 가정, 기억과 꿈 등을 뒤섞는 몽환적인 작품인데 비해, 뮈리엘 은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며, 사실주의적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그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쎄릭의 또다른 주목할만한 출연작은 프렁쓰와 트뤼포의 도둑맞은 입맞춤 (Baisers volés, 1968) 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이제 청년이 된 엉뜨완 드와넬의 흠모를 받는 연상의 기혼녀 역할을 하는데, 영화 속에서 엉뜨완 드와넬이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 « Ce n'est pas une femme. C'est une apparition ! » (그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환영이야.) 이 대사는 영화 속 인물 뿐 아니라, 신비로운 미모와 그윽한 목소리, 늘 노래부르는 듯한 억양을 가졌던 실제 델핀 쎄릭에게도 자주 적용되었습니다.
쎄릭은 1971년에는 최초로 엘리자벳 바또리 (Elisabeth Bathory) 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붉은 입술 (Les Lèvres rouges) 에서 이 유명한 흡혈 살인범을 연기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두 편의 로제 (사고, 인형의 집), 두 편의 뷔뉘엘 (은하수, 중산계층의 은밀한 매력), 두 편의 아께르만 (쟌 딜만, 황금의 팔십년대), 세 편의 뒤라쓰 (라 뮈지꺄, 인디아 쏭, 박스떼르, 베라 박스떼르) 영화를 찍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스스로도 직접 몇 편의 영화들을 감독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모두 여성인권운동의 발전을 위한 자료영화들입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여러 여배우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예쁘게 꾸미고 입닥치고 있어 (Sois belle et tais-toi, 1975-77).
아래의 비데오는 드미의 영화 당나귀가죽의 한 장면으로, 대녀인 당나귀가죽 (꺄트린 드뇌브) 에게 아버지와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대모인 라일락의 요정이 노래로 설교하는 장면입니다. (그 이유는 사실은 자기가 결혼하고 싶어서.^^)
당나귀가죽 중 라일락 요정의 충고
Les conseils de la Fée des lilas, extraits du film Peau d'âne
Les conseils de la Fée des lilas, extraits du film Peau d'â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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