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1 août 2007

성 루이 (Saint Louis = Louis IX)

끌로비쓰의 먼 후계자 중 한 명인 루이 9세 (1214-1226-1270) 는 역대 프랑쓰의 왕 중 유일하게 성인이 된 사람입니다. 루이 8세블렁슈 드 꺄스띠으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매우 신심이 깊고 정직한 성격을 지녔다고 전해지며, 정의감에 매우 민감하여, 프랑쓰 법조 체계의 기반을 다진 왕이기도 합니다. 그의 통치기간 중 프랑쓰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화려한 시기를 살았고, 루이 9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현명한 왕으로 통하여, 여러 나라의 왕들이 외교적인 문제의 판결을 그에게 의뢰하곤 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업적이 많지만, 종교와 직접 관련된 것으로는, 두 번의 십자군 전쟁 (croisade) 이 있습니다. 전쟁을 과연 업적이라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루이 9세 또는 성 루이는 7차 (1248-1254) 와 8차 (1270) 십자군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그가 목숨을 잃은 것도 8차 십자군 전쟁 중 뛰니쓰 (Tunis) 에서였습니다. 성 루이의 축일은 그가 죽은 1270년 8월 25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8월 25일 지냅니다.

그는 또한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인 빠리의 쌍뜨-샤뺄 (Sainte-Chapelle) 을 건축하도록 하였습니다 (1248년 완성). 벽이나 기둥이 전혀 없이 사방이 드높은 색유리로 둘러싸인 이 성당은 직접 방문해 보지 않고는 그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힘듭니다. 이 성당은 특별한 의도로 건축되었는데, 즉 루이 9세가 구입한 여러 종류의 성유물들 (Saintes Reliques) 을 보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이 9세는 우선 1238년에 베네치아로부터 진짜 가시관 (Sainte Couronne) 을 사들입니다. 다음으로는 진짜 십자가 (Sainte Croix) 의 한 조각,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의 끝 (Sainte Lance),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 (Saint Sang),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얼굴을 적시는데 사용되었다는 해면 (Sainte Éponge), 등등을 차례차례 수집했습니다. 쌍뜨-샤뺄은 결국 이 모든 보물들을 보관하기 위한 보석함이었던 것이지요. 성유물들의 대부분은 프랑쓰 혁명 중 파괴되었지만, 종교적 의미를 떠나,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몇몇 유물은 프랑쓰 국립 도서관에 한동안 보관되었다가, 지금은 빠리의 주교좌 성당노트르-담 (Notre-Dame) 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13세기 이후로 거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유물은 가시관으로서, 여전히 노트르-담에서 볼 수는 있되, 한 달에 한 번씩만 일반에게 공개됩니다.

Sainte-Chapelle


쌍뜨-샤뺄이 위치한 씨떼 섬 (île de la Cité) 바로 옆에는 쌍-루이 섬 (île Saint-Louis) 이 있는데, 이 섬의 이름이 루이 9세를 기념하기 위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죠 ? 그리고 또 미국의 도시 쎄인트 루이쓰 (Saint Louis, Missouri) 역시 성 루이의 이름을 기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애초에 이 도시가 프랑쓰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프랑쓰인들이 발을 들여 놓은 꺄나다, 쎄네걀 (Sénégal), 과들룹 (Guadeloupe), 레위니옹 (Réunion) 등등, 세계 곳곳, 여기저기에는 쌍-루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1 commentaire:

Anonyme a dit…

샹드 샤뻴, 넘 감동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