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anche 7 février 2010

루이 8세 르 리옹 (Louis VIII le Lion)

필립 오귀스뜨이자벨 드 에노 사이에서 태어난 루이 8세 (1187-1223-1226) 는 아버지와 사뭇 다른 삶을 산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필립 오귀스뜨는 14세에 왕으로 축성되었는데 반해, 루이 8세는 36세에 즉위하였습니다 (1223). 당시에 열 네 살이면 성인으로 인정받고, 평균 수명이 대략 서른 살 전후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루이 8세는 정말 늦은 나이에 왕이 된 것입니다. 또한 그는 왕으로 3년 밖에는 재위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43년을 통치한 것에 비하면 정말 짧은 기간이죠. 또한 필립 오귀스뜨가 세 명의 왕비를 차례차례, 또는 동시에 두면서 심각한 정치 문제로까지 대두될 만큼 상당히 복잡한 부부관계를 가졌던 데 비해, 루이 8세는 열 세 살에 맞이한 신부 블렁슈 드 꺄스띠으 (Blanche de Castille) 와 평생을 서로 믿고 의지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필립 2세가 그렇게 여러 부인들과의 사이에서도 루이 8세 자신을 제외하면 별다른 후사를 못얻었는데 비해, 루이 8세와 블렁슈 드 꺄스띠으는 열 한 명의 자녀를 보았습니다 (그 중 루이 9세).

너무 대단했던 아버지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늘 속에 묻혀 있긴 하지만 사자 (Lion) 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루이 8세 역시 상당히 용맹스럽고 야심이 많았던 왕이었습니다. 물론 직접 통치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루이 8세의 업적은 대부분 왕세자 시절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필립 오귀스뜨가 영국과 싸우던 시절, 루이 8세도 아버지를 도와 여러 차례 전쟁에 참여하였으며, 심지어 땅 없는 졍 (Jean sans Terre) 을 물리치고 영국의 왕위에 오르려고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프랑쓰 왕이 된 후 여러 영국 영토를 빼앗았으며, 또한 알비 십자군 전쟁 (croisade albigeoise) 에도 참여하여 옥씨따니 중 일부, 특히 오늘날의 렁그독 (Languedoc) 지역을 프랑쓰령으로 차지했습니다. 바로 이 알비 십자군 전쟁 중 이질 (dysenterie) 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루이 8세는 좀 더 오래 살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프랑쓰의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겠지만, 그의 이른 죽음 덕분에 또하나의 대단한 인물이 프랑쓰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바로 그의 아내였던 블렁슈 드 꺄스띠으 !

2 commentaires:

Anonyme a dit…

그리하여 그의 아내에 대한 얘기는 언제 또 쓸거야???
왠지 흥미진진한 걸!!!
이거 다 중세음악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야?

ange dubitatif a dit…

Mais qui êtes-vous M. ou Mme. Anonyme ? ^^ Je suis un peu occupé en ce moment à cause de la tra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