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anche 27 juillet 2008

성심 대성당 (Basilique du Sacré-Cœur)

1871년의 꼬뮌시청, 뛰일르리, 벙돔 기둥 같은 빠리의 유적 여러 품이 훼손을 입은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오늘날 프랑쓰를 대변하는 유명한 기념물 하나를 더 낳는 핑계가 되기도 했습니다. 피의 주간의 학살을 통해 꼬뮌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제 3 공화국 정부는, 오늘날 생각하면 정말 믿기 힘들지만, 꼬뮌이 저지른 죄의 용서를 하늘에 빈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성당 하나를 세우기로 합니다. 띠에르가 대포를 뺏기 위해 보낸 군대와 빠리 시민들이 처음 격투를 벌인 장소, 즉 꼬뮌 혁명의 시발점이 바로 몽마르트르였기 때문에, 새 성당은 몽마르트르의 정상에 짓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계획에 반대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하지만, 당시 국회는 매우 보수적인 왕정파 의원들 위주였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엉리 드 셩보르를 왕으로 추대해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까지 했을 정도니까, 교회와 손잡고 성당 하나 새로 짓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 (1873년 7월 23일 법령)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있지요.

새로운 성당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 (Sacré-Cœur) 에 바쳐지기로 기획되었으며, 건축에 드는 비용은 프랑쓰 전국민의 성금을 통해 모아졌고, 공개 경쟁을 통해 뽈 아바디 (Paul Abadie) 라는 건축가의 도안이 채택되었습니다. 1875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14년 완성된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아바디는 비정땅 양식 (style byzantin) 과 로멍 양식 (style roman) 을 혼합한 중세 풍의 건물로 설계하였습니다. 그리고 건축에 사용된 돌은 빠리 남동쪽의 샤또-렁동 (Château-Landon) 이라는 마을에서부터 가져왔는데, 이 돌은 물에 젖으면 더욱더 흰색이 되는 특별한 돌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성심 성당은 비를 맞으면 맞을 수록 더욱 더 하얗게 빛난다고 하지요. 하지만 빠리 어디서나 눈에 띄는 이 흰 색의 둥근 지붕들 때문에 성심 성당은 흔히 거대한 므랑그 (meringue) 라고 놀림을 받기도 합니다 (므랑그는 달걀 흰자를 부풀려서 구운 과자).

1914년 완성되었지만 1차 대전의 발발로 이 성당은 결국 1919년에야 공식적으로 축성을 받았고, 이 때 교황으로부터 바질릭 (basilique) 의 호칭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던 1885년부터 지금 현재까지 이 성당은 단 한 순간도 문을 닫은 적이 없으며, 밤낮으로 성체 경배가 이어지고 있답니다. 매우 놀랍지만 전 세계에서 순례 온 신자들이 릴레이 식으로 이어가며 하루 24시간씩 120년이 넘게 꼬뮌 혁명의 죄를 빌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 측에서는 이제 꼬뮌 얘기는 피하는 추세이며 인류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아무튼 밤이나 낮이나 성심 성당은 기도하는 사람들, 관광하는 사람들로 항상 붐빕니다.

몽마르트르 산 위의 성심 대성당
(Basilique du Sacré-Cœur de Montmar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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