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dredi 4 juillet 2008

유리 장갑 (gants de verre)

매우 시적이고 아름다운 칼의 일화는 모호함으로도 가득 차 있습니다. 트리스떵은 과연 왜 칼로 자신과 이즈 사이에 간격을 두었을까요 ? 또한 그들의 닿지 않은 입술, 이즈가 굳이 간직하고 있는 결혼 반지 등등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 베룰은 두 사람의 사랑이 오로지 쁠라또닉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 하지만 다른 대목에서는 그와 모순되는 장면도 많습니다. 어쨌거나 칼의 일화 다음에는 마르크 왕이 두 사람이 함께 잠든 모습을 발견하고도, 그 모습이 너무 순결하다 하여,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 때 왕은 자신이 잠든 두 연인을 발견했음을, 그리고 충분히 그들을 처치할 수 있었지만 용서했음을 뜻하는 뚜렷한 증표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개인 물건들 몇 개를 남겨 두고 떠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이즈가 아일랜드로부터 가지고 와서 결혼 선물로 왕에게 선사한 유리 장갑입니다. 이 부분의 오일어 원문을 소개하면,

« ...
Uns ganz de voirre ai je o moi,
Qu'el aporta o soi d'Irlande.
Le rai qui sor la face brande
Qui li fait chaut en vuel covrir ;
Et qant vendra au departir,
Prendrai l'espee d'entre eus deus
Dont au Morhot fu le chief blos.»
Li rois a deslïé les ganz,
Vit ensenble les deus dormanz,
Le rai qui sor Yseut decent
Covre des ganz molt bonement.
Béroul, Le Roman de Tristan, vv. 2032-2042

(«... 나는 그녀가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유리 장갑을 끼고 있다. 얼굴에 햇빛이 내리쬐어 더울테니, 그녀의 얼굴을 장갑으로 보호하고 싶다. 그리고 떠날 때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칼, 모르올트 [트리스떵이 죽인 이즈의 삼촌] 의 머리를 잘라 낸 저 칼을 내가 가지고 가겠다.» 왕은 장갑을 벗고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장갑으로 조심스럽게 이즈의 얼굴을 덮어, 내려 쪼이는 햇빛을 막았다.)

이 유리 장갑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합니다. 물론 오로지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말이 안됩니다. 유리 장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걸 실제로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가 ? 그리고 유리로 어떻게 햇빛을 막는가 ? 도대체 이 이즈라는 여자는 얼굴에 햇빛이 비치고 그 위에 누가 유리를 덮는데도 계속 쿨쿨 잠만 잔단 말인가 ? 그리고 이것을 다 인정한다 치더라도, 서지학적으로도 모순이 있습니다. 장갑이 처음 언급되었을 때 (v. 2032) 는 ganz de voirre (유리 장갑) 이라고 나오지만, 곧이어 (v. 2039) 는 voirre 라는 말이 사라지고 단지 les ganz (장갑들) 이라고만 하며, 좀 더 뒤에는 (v. 2075) 아예 li gant paré du blanc hermine (흰담비로 장식된 장갑) 이라는 묘사가 나옵니다 :

De l'esfroi que Iseut en a
Geta un cri, si s'esveilla.
Li gant paré du blanc hermine
Li sont choiet sor la poitrine.
Béroul, Le Roman de Tristan, vv. 2073-2076

([악몽을 꾼] 이즈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마르크가 덮어 놓고 간] 흰담비 장갑들이 그녀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그래서 베룰의 작품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이 voirre 라는 단어가 vair 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여깁니다. « 유리 » 라는 뜻의 오일어 voirre 는 변화를 거쳐 현대 불어에서는 verre 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vair 라는 것은, 등은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회색이고, 배는 흰색의 털을 가진 다람쥐의 모피로서, 매우 값비싼 재료였습니다. 따라서 베르는 흰담비와 상당히 비슷한 동물이었고, 둘 다 매우 희귀한 고급 가죽이지요. 문제의 장갑이 다람쥐와 흰담비의 모피를 섞어 만든 장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보다 논리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필립 왈떼르 (Philippe Walter) 같은 학자는 voirre 를 굳이 vair 로 수정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전설의 운치를 더 돋궈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말도 맞습니다. 중세의 문학 작품들에는 여러가지 마술과 신비로운 물체들이 자주 등장하니까요.

이런 류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동일 작품의 필사본이 여러편 있으면, 서로 비교를 통하여 대개는 문제 해결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베룰의 트리스떵은 오로지 단 한 편의 필사본 (Paris, Bibliothèque Nationale, ms. fr. 2171) 을 통해서만 전해졌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트리스떵 이야기나 외국어 번역판에는 이 유리 장갑의 이야기가 아예 없거나, 극히 간략하게 처리되거나, 단지 장갑이라고만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판본들에서는 두 주인공이 잠든 장소가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숲 속의 오두막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동굴 안입니다. 그때문에 굳이 이즈의 얼굴을 햇빛으로부터 가려야 할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마르크는 장갑을 그저 이즈 곁에 놓아 둡니다. 그렇다면 유리 장갑이라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논쟁이 몇 세기 뒤에 다시 한번 일어났습니다. 다만 이 때는 장갑이 아니라 신발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썽드리용의 구두 (사실은 pantoufles = « 실내화 ») 는 과연 유리인가 모피인가 ? 썽드리용의 작가 뻬로 (Charles Perrault) 는 verre 라고 썼지만, 뒤늦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vair 의 잘못된 표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었었습니다. 그렇다면 트리스떵과 이즈의 전설은 동화 썽드리용의 먼 조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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