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셩보르 성은 국가의 소유인데, 그 직전 마지막 개인 소유자는 엉리 드 셩보르 (Henri de Chambord, 1820-1883)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르봉 (Bourbon) 왕가의 마지막 왕손이었고, 왕정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아예 대놓고 프랑쓰의 왕 엉리 5세라 불렸지요. 하지만 1789년 이후로 프랑쓰의 정치 제체가 워낙 자주 바뀌고 혼란스럽다보니, 그가 실제로 왕위에 오를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국외로 피난 생활을 해야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1870년, 제 2 제정 (Second Empire) 이 무너지고 제 3 공화정 (Troisième République) 이 들어서면서, 다시 왕정으로 돌아갈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습니다. 이 때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왕정파들이었기 때문에, 아직 새 공화국이 제대로 정착되기 전에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정치인들 사이에 협상이 일어났고, 엉리 드 셩보르가 공식적으로 왕이 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었는데, 마지막에 가서 엉리가 국기 (drapeau national) 문제에 대해 완강한 거부를 보였습니다. 대혁명 이후로 프랑쓰의 국기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기, 즉 파랑, 하양, 빨강의 세 세로줄이 있는 그 국기였는데, 엉리는 이 혁명기를 버리고 옛날 왕가의 상징인 흰색 국기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미 세 왕정, 두 제정, 세 공화정이 혁명기를 채택했었으므로, 이제는 개인의 정치적 의견이 무엇이든간에, 프랑쓰 사람이라면 이 국기가 프랑쓰를 대표하는 것으로 다들 믿고 있던 참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흰색 국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펄펄 뛰니, 이걸 어쩌겠습니까 ?
재미있는 것은, 왕가의 후손인 엉리는 사실 상당히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지녔던 사람이고, 그와 협상에 들어갔던 국회의원들은 엄청나게 보수적인 왕정파 사람들이었는데, 결국 진보적인 사람이 전통적인 가치를 완강하게 밀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혁명의 상징을 옹호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결국은 흰색 국기 아니면 왕 안하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그럼 말어, 하고 협상이 끝났습니다. 그리하여 프랑쓰는 계속 제 3 공화국을 밀고 나가기로 했고, 그 후로는 지금까지 계속 공화국의 상태로 « 그럭저럭 » ^^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 5 공화국)
오늘의 교훈 : 별 것 아닌 일로 고집 부리지 말자.
Moralité : Ne soyons pas entêtés pour ri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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