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프랑쓰 사람들은 감자를 참 좋아하고 즐겨 먹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감자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이 16세기인데, 처음엔 다들 이 새로운 식물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처음 보는 것이니 그럴만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늘날 돌이켜 볼 때는 믿기 힘든 소문이 많이 돌았습니다 : 감자를 먹으면 죽는다, 병에 걸린다... 심지어 프랑쓰에서는 과학자들이 공식적으로 감자는 문둥병을 유발한다고 발표해서 재배를 아예 금지시키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감자는, 당시 유럽에 잦았던 기아에도 불구하고, 매우 푸대접을 받았지요. 하지만 각 나라의 식물학자들이 감자가 식용에 적합하고, 쉽게 대량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차츰차츰 아일랜드와 독일을 선두로 하여 다른 나라들에서는 감자의 소비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유독 프랑쓰 사람들만이 이백년이 넘도록 감자를 거부했습니다.
프랑쓰에서 감자가 대중화된 것은 오로지 엉뜨완 오귀스땅 빠르멍띠에 (Antoine Augustin Parmentier, 1737-1813) 라는 약사이자 농업학자의 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프랑쓰 사람들의 감자에 대한 깊은 편견을 이성적으로 고치기 힘든 것을 깨닫고, 한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즉, 그는 왕 (루이 16세) 에게 부탁해서 빠리 주변에 큰 밭을 샀고,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아 놓은 다음 공개적으로 감자를 심고서는, 여기서 나는 식물은 너무나 귀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왕실 만을 위한 것이니 감히 손댈 생각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군인들을 데려다가 밭을 철저하게 감시케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정말 저 야채가 맛있고 귀한 건가 보다, 나도 한 번 먹어봤으면... 감자가 많이 열리자 빠르멍띠에는 일부러 밤에는 보초를 서지 않게끔 했습니다. 평민들이 몰래 밭에 와서 감자를 훔쳐가게끔 유도한 것이지요. 다음 해에 그는 다른 곳에 더 큰 밭을 사서 같은 일을 했으며, 결과는 번번이 성공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여 차츰차츰 감자는 프랑쓰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감자를 널리 전파시킨 빠르멍띠에를 기리기 위해서 프랑쓰에는 빠르멍띠에의 이름을 딴 음식이 몇가지 있습니다. 모두 감자와 연관된 음식들인데, 그 중 매우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것이 아쉬 빠르멍띠에입니다. 이것은 잘게 다져서 볶은 쇠고기 (hachis) 와 삶아 으깬 감자 (parmentier) 를 층층이 깔고, 제일 위에 그뤼예르를 얹어 그라땅처럼 구워 낸 것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은 별로 안 예쁘지만, 실제로는 정말 맛있습니다.^^
감자는 아이띠 원주민의 말로 batata 라고 불렸는데, 이것이 에스빠냐말과 이딸리아말에서 patata 가 되었으며, 불어에서 patate 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patate 이라는 말은 «감자» 와 «고구마» 를 모두 칭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구별을 해야 할 때는 «고구마» 는 patate douce, «감자» 는 pomme de terre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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