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공기를 사용하건 (montgolfière), 가스를 사용하건 (charlière), 또는 혼합된 유형 (hybride) 이건, 기구들은 수직으로 상승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하늘에 떠오른 다음에는 방향의 조종이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몽골피에르 매우 초창기부터 있어왔는데, 예를 들어, 영불해협을 최초로 횡단한 졍-삐에르 블렁샤르 (Jean-Pierre Blanchard, 1753-1809) 는 나쎌 (nacelle = 풍선 밑의 바구니) 에 날개와 꼬리키를 달기도 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방법은 극히 제한된 수단에 불과했고, 몽골피에르들은 바람의 영향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이미 1783년에 기하학자였던 졍-바띠스뜨 므니에 들 라 쁠라쓰 (Jean-Baptiste Meusnier de la Place, 1745-1793) 는 몽골피에르의 성공을 보면서, 동그란 풍선 대신 길죽한 타원형의 풍선에 바람개비 모양의 추진기를 달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문에 그는 때때로 비행선의 발명자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불행히도 그의 생각은 계획 단계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최초의 비행선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1852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해 9월에 엉리 지파르 (Henri Giffard, 1825-1882) 는 옆으로 누운 타원형의 긴 풍선에 수증기를 이용한 일종의 모터와 추진기를 달아 빠리와 트랍 (Trappes) 사이를 여행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조종 가능한 몽골피에르였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몽골피에르를 불어로는 dirigeable, 또는 ballon dirigeable 이라 부릅니다. 말그대로 « 조종 가능한 (풍선) ».
디리쟈블이 프랑쓰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그 전성기는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Ferdinand von Zeppelin, 1838-1917) 에 의해서 달성되었습니다. 군인이자 기술자였던 체펠린은 1900년, 자기 이름을 딴 디리쟈블 공장을 차려, 아예 대량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체펠린 사의 디리쟈블은 20세기 초반 동안 크게 번성했고, 특히 1차 대전 동안에는 군대에 압수되어 폭격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체펠린은 거의 디리쟈블의 대명사가 되었고, 불어에서도 zeppelin [제쁠랑] 은 dirigeable 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보통 명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제쁠랑 또는 디리쟈블은 광고용, 홍보용, 관광용, 또는 감시용으로 때때로 쓰이고 있습니다.
벌써 몇년 전, 우리집 창문 위를 날아가던 디리쟈블. 신기해하며 좋아라고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보니 시민 감시용이었습니다. 점점 더 무서워져만 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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