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기 동안 인기를 얻었고, 현재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손바닥 놀이는 짧은 손바닥 놀이입니다. 프랑쓰의 주요 도시들에는 손바닥 놀이장이 수십개씩 있었으며, 특히 빠리에는 한 때 약 250 개의 손바닥 놀이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 역시 이 운동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왕궁에는 꼭 손바닥 놀이장이 한두개씩 있었지요. 지금은 극소수 만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그나마도 본연의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은 정말 드물지요. 그 중 하나는 퐁뗀블로 (Fontainebleau) 궁에 속해 있는 손바닥 놀이장으로, 현재 이 건물은 프랑쓰 손바닥 놀이 협회의 본부입니다.
현대 손바닥 놀이장의 모습
빠리의 뛰일르리 궁에도 손바닥 놀이장이 있었는데, 현재는 박물관 (Galerie nationale du Jeu de paume) 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손바닥 놀이장은 베르싸이으시의 손바닥 놀이장입니다. 극도의 경제난과 여러 사회 문제를 겪고 있던 프랑쓰는 1789년 5월 5일에 삼부회를 소집했습니다. 우리말 (필경 한문이나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읽은 것이겠지만) 로 삼부회라 부르는 이 모임은 불어로는 états généraux 라고 합니다. 구체제 (Ancien Régime) 의 프랑쓰에 존재했던 세가지 신분 상태 (= état), 즉 성직자, 귀족, 평민, 이 각각을 état 라고 불렀고, 이들이 모두 (= général) 모였기 때문입니다. 삼부회는 비정기적인 모임으로, 이론적으로는 나라의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왕이 모든 계층의 의견을 듣기 위해 소집하는 회의였는데, 실제로는 왕의 결정을 더욱더 강화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자와 귀족은 항상 왕을 지지했으니까요.
하지만 1789년의 삼부회는 그 반대였습니다. 왕은 전혀 삼부회를 소집할 마음이 없었는데, 각 계층마다 워낙 불만이 많아 (각 신분층마다 서로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주요 안건 중의 하나는 당시 프랑쓰의 국고가 텅텅 비었고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금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할 대로 가난해진 평민들에게 또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또 어차피 그걸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으므로 특권층도 세금을 내자는 의견이 여러번 있었지만, 특권층에서는 당연히 절대 반대였지요. 그래서 정작 삼부회가 시작되고 나서도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었습니다. 특히 귀족층에서 매번 투표를 미루고, 억지스런 토론으로 시간만 때우려 했던 것이지요. 결국 여기에 진저리가 난 평민 의원들이 자기네들끼리 투표를 하여 6월 17일 스스로를 국회 (Assemblée nationale) 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6월 19일에는 성직자 층 역시 투표를 통하여 평민들의 국회에 동참하기로 결정을 하였으며, 여기에 몇몇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귀족 의원들마저 참여했습니다.
이에 놀란 왕실 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왕의 의견을 발표하기로 하고, 단 그 때까지 의원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삼부회가 열리던 Hôtel des Menus Plaisirs (작은 즐거움의 집) 라는 건물을 - 수리라는 핑계로 - 차단시켰지요. 6월 20일 아침, 이 건물의 문 앞에 모였던 국회의원들은 왕의 이러한 반응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 때 죠제프 기요땅 (Joseph Guillotin) 이라는 훗날 유명해질 한 의원이 근처에 자기가 아는 손바닥 놀이장이 있다고 제안함으로써 모두들 그리로 갔고, 거기서 유명한 손바닥 놀이장의 선언을 발표했지요. 이 선언의 주요 골자는 프랑쓰에 제대로 된 헌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것이며 어떤 상황 어떤 장소 어떤 압력 하에서라도 모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는 기념관이 된 베르싸이으시의 손바닥 놀이장 사진들을 보려면 여기로 !
쟉-루이 다빗 (Jacques-Louis David) 이 그린 손바닥 놀이장의 선언 및 참가 의원들의 정체를 확인하려면 여기로 !
왕은 여기에 나름대로 저항해 보려 했지만, 결국 6월 27일 모든 삼부회 의원들에게 평민들이 만든 국회에 참가하라고 권함으로써 사실상 국회를 인정하였습니다. 이로써 왕 혼자 모든 법을 좌지우지 하던 절대 왕정은 종말을 고하였고, 프랑쓰는 입헌 왕국이 되었습니다. (당분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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