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edi 2 juin 2007

손바닥 놀이장의 맹세 (1789년 6월 20일)

손바닥 놀이 (jeu de paume) 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긴 손바닥 (longue paume) 이고, 또 하나는 짧은 손바닥 (courte paume) 이라 불립니다. 긴 손바닥은 야외에서 하는 놀이이고, 짧은 손바닥은 실내에서 하는 놀이지요. 애초에는 손바닥 놀이가 야외에서 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대도시 시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도시 내에 이 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러한 구분이 생겼습니다. 두 놀이의 구분은 단지 장소 뿐 아니라, 규칙 역시 조금 달랐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짧은 손바닥 놀이는 바닥 뿐 아니라 벽과 천장에도 공을 튕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손바닥 놀이는 어찌 보면 스쿼쉬의 전신으로 볼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손바닥 놀이장의 모습 (jeu de paume ancien)


수세기 동안 인기를 얻었고, 현재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손바닥 놀이는 짧은 손바닥 놀이입니다. 프랑쓰의 주요 도시들에는 손바닥 놀이장이 수십개씩 있었으며, 특히 빠리에는 한 때 약 250 개의 손바닥 놀이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 역시 이 운동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왕궁에는 꼭 손바닥 놀이장이 한두개씩 있었지요. 지금은 극소수 만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그나마도 본연의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은 정말 드물지요. 그 중 하나는 퐁뗀블로 (Fontainebleau) 궁에 속해 있는 손바닥 놀이장으로, 현재 이 건물은 프랑쓰 손바닥 놀이 협회의 본부입니다.
현대 손바닥 놀이장의 모습


빠리의 뛰일르리 궁에도 손바닥 놀이장이 있었는데, 현재는 박물관 (Galerie nationale du Jeu de paume) 이 되었습니다.
빠리 뛰일르리 정원의 쥬드뽐 박물관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손바닥 놀이장은 베르싸이으시의 손바닥 놀이장입니다. 극도의 경제난과 여러 사회 문제를 겪고 있던 프랑쓰는 1789년 5월 5일에 삼부회를 소집했습니다. 우리말 (필경 한문이나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읽은 것이겠지만) 로 삼부회라 부르는 이 모임은 불어로는 états généraux 라고 합니다. 구체제 (Ancien Régime) 의 프랑쓰에 존재했던 세가지 신분 상태 (= état), 즉 성직자, 귀족, 평민, 이 각각을 état 라고 불렀고, 이들이 모두 (= général) 모였기 때문입니다. 삼부회는 비정기적인 모임으로, 이론적으로는 나라의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왕이 모든 계층의 의견을 듣기 위해 소집하는 회의였는데, 실제로는 왕의 결정을 더욱더 강화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자와 귀족은 항상 왕을 지지했으니까요.

하지만 1789년의 삼부회는 그 반대였습니다. 왕은 전혀 삼부회를 소집할 마음이 없었는데, 각 계층마다 워낙 불만이 많아 (각 신분층마다 서로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주요 안건 중의 하나는 당시 프랑쓰의 국고가 텅텅 비었고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금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할 대로 가난해진 평민들에게 또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또 어차피 그걸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으므로 특권층도 세금을 내자는 의견이 여러번 있었지만, 특권층에서는 당연히 절대 반대였지요. 그래서 정작 삼부회가 시작되고 나서도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었습니다. 특히 귀족층에서 매번 투표를 미루고, 억지스런 토론으로 시간만 때우려 했던 것이지요. 결국 여기에 진저리가 난 평민 의원들이 자기네들끼리 투표를 하여 6월 17일 스스로를 국회 (Assemblée nationale) 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6월 19일에는 성직자 층 역시 투표를 통하여 평민들의 국회에 동참하기로 결정을 하였으며, 여기에 몇몇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귀족 의원들마저 참여했습니다.

이에 놀란 왕실 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왕의 의견을 발표하기로 하고, 단 그 때까지 의원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삼부회가 열리던 Hôtel des Menus Plaisirs (작은 즐거움의 집) 라는 건물을 - 수리라는 핑계로 - 차단시켰지요. 6월 20일 아침, 이 건물의 문 앞에 모였던 국회의원들은 왕의 이러한 반응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 때 죠제프 기요땅 (Joseph Guillotin) 이라는 훗날 유명해질 한 의원이 근처에 자기가 아는 손바닥 놀이장이 있다고 제안함으로써 모두들 그리로 갔고, 거기서 유명한 손바닥 놀이장의 선언을 발표했지요. 이 선언의 주요 골자는 프랑쓰에 제대로 된 헌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것이며 어떤 상황 어떤 장소 어떤 압력 하에서라도 모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는 기념관이 된 베르싸이으시의 손바닥 놀이장 사진들을 보려면 여기로 !

쟉-루이 다빗 (Jacques-Louis David) 이 그린 손바닥 놀이장의 선언 및 참가 의원들의 정체를 확인하려면 여기로 !

왕은 여기에 나름대로 저항해 보려 했지만, 결국 6월 27일 모든 삼부회 의원들에게 평민들이 만든 국회에 참가하라고 권함으로써 사실상 국회를 인정하였습니다. 이로써 왕 혼자 모든 법을 좌지우지 하던 절대 왕정은 종말을 고하였고, 프랑쓰는 입헌 왕국이 되었습니다. (당분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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