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13 juin 2007

에스빠냐의 부르봉 왕조 (Les Bourbons en Espagne)

쒸에드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예로 에스빠냐를 들 수 있습니다. 17세기 말에 죽어가던 에스빠냐의 왕 까를로쓰 2세 (Carlos II, ou en fr. Charles II) 에게는 아무런 직계 후손이 없었습니다. 단 에스빠냐는 쌀릭법을 적용시키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여자도 왕이 될 권리가 있었습니다. 까를로쓰 2세에게는 누나와 여동생이 한 명씩 있었는데, 이론적으로 따지면 이 경우 당연히 누나인 마리-떼레즈 (Marie-Thérèse ou en esp., Maria-Teresa) 가 왕권을 물려받게 됩니다. 하지만 왕위 계승이 문제되던 당시에 마리-떼레즈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프랑쓰의 왕 루이 14세 (Louis XIV) 와 결혼하여 그렁 도팡 (Grand Dauphin) 루이를 남겨 두었지요. 따라서 그렁 도팡 루이는 엄마의 상속권을 물려받아 에스빠냐의 왕이 될 자격이 충분히 되지만, 그는 또한 장차 프랑쓰의 왕이 될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서유럽에서 가장 큰 두 나라가 한 사람의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면 주변 강대국들이 얌전히 있을리가 없었죠. 그렁 도팡 루이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 루이는 역시 언젠가 할아버지 (Louis XIV) 와 아버지 (Grand Dauphin) 를 이어 프랑쓰의 왕이 되어야 했으므로, 차남인 필립 (Philippe) 이 에스빠냐의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1700년 11월, 까를로쓰 2세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필립에게 남긴다는 유서가 프랑쓰에 도착합니다. 루이 14세는 이것을 받아들이는데 상당히 망설였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둘째 손자가 펠리뻬 5세 (Felipe V, ou en fr. Philippe V) 라는 이름으로 에스빠냐의 왕이 되자 외스터라이히를 비롯하여 손익관계가 관련된 여러 나라들 (영국, 네덜란드 연합지방, 독일의 공국들, 뽀르뚜갈, 싸브와...) 이 연맹을 맺어, 프랑쓰와 에스빠냐를 공격했습니다. 에스빠냐 왕위 계승 전쟁이라 불리는 이 싸움은 1701년부터 1714년까지 계속되었고, 그 사이에 펠리뻬 5세는 왕위에서 쫓겨나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프랑쓰의 승리로, 1710년 이후로는 완전히 마드리드에 정착합니다. 그리하여 정작 프랑쓰에서는 부르봉 왕조의 맥이 끊긴데 반해서, 에스빠냐에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르봉 왕조의 후손이 왕위를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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