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m 이란 단어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몇몇 카드 놀이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한 사람이 모든 중요한 카드를 다 쓸어 모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1933년 미국의 한 기자가 테니쓰에 적용시켜 사용하면서 grand slam 이란 표현이 굳어지게 되었다는군요. 엄격하게 따지면 위의 네 대회를 한 해 내에 모두 석권해야 그렁 슐렘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므로, 여러 해에 걸쳐서라도 한번씩 우승을 하면 그렁 슐렘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네 대회들의 시작 연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었으니, 모두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 백여년간에 걸쳐, 엄격한 의미에서 그렁 슐렘을 성공한 사람의 수는 남자 두 명, 여자 세 명 뿐이랍니다.
롤렁-갸로쓰는 이 네 개의 주요 대회 중 유일하게 흙으로 된 구장 (court en terre battue) 을 사용하는 대회이기도 합니다. 흙으로 된 테니쓰장이 그저 아무 땅 위에나 금 긋고 그물을 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성분의 돌과 흙을 일정한 비율로 섞고, 그것을 또 다양한 강도로 다진 후, 여러 층으로 얹어서 얻어지는 경기장이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설치가 끝난 다음에도, 땅이 물을 너무 많이 먹어도 안 되고, 너무 바싹 말라도 안되며, 지나치게 단단해도 안 되고, 너무 물러도 안되므로, 끊임없이 유지비가 들어가는 형태의 경기장이라고 합니다. 롤렁-갸로쓰에서도 매년 보면, 실제로 아침마다 첫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흙에 물을 주고, 새 흙을 까는 등 준비 과정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경제적인 이유상, 갈수록 흙으로 된 구장이 드물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이 말하기를,롤렁-갸로쓰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흙 테니쓰장이라고 합니다.
한편 롤렁-갸로쓰라는 이름은 테니쓰와는 별 관련이 없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Roland Garros 라는 사람은 최초로 지중해를 단독 비행하는데 성공한 조종사 (aviateur) 였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 중에도 조종사로 싸우다가 결국 독일군 비행기의 습격을 받고 추락하여 죽었지요. 이 사람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테니쓰장에 준 것입니다.
롤렁-갸로쓰에는 모두 스물 네 개의 테니쓰장 (courts) 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중심 구장 두 개에는 실제로 테니쓰와 관련이 있는 사람의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 Philippe Chatrier 와 Suzanne Lenglen (나머지 구장의 이름은 모두 번호로 매겨짐). 특히 이 쒸잔 렁글렌이라는 사람은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테니쓰 선수였습니다. 빠리에서 여섯 번, 런던에서 여섯 번 씩 승리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다른 대회들과 복식까지 합하면, 1920년대에 그녀가 거둔 승리는 거의 삼백여 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여자들은 긴 치마와 긴팔 셔츠에 심지어 모자와 장갑까지 끼고 테니쓰를 해야 했는데, 렁글렌이 처음으로 짧은 치마를 입는 시도를 단행하기도 했답니다.
여자들에게 인색한 프랑쓰에서 국제급 규모의 가장 좋은 경기장의 하나에 여자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참 놀랍기도 하고, 물론 기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롤렁-갸로쓰에서 주는 상금이 여자와 남자가 정확하게 똑같습니다. 그 전에는 여자 선수들은 남자들의 거의 반 밖에는 못받았었지요. 올해는 게다가 상금의 평등성이 복식에까지도 적용된다고 하니, 더 좋은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나 많은 돈을 주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올해 단식 우승자는 남자건 여자건 정확하게 백만 외로를 받게 됩니다.
다시 옷 얘기로 돌아와서, 애초에는 남자라고 해서 복장이 훨씬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여자들보다는 더 편했지만, 처음에는 심지어 넥타이까지 매고 테니쓰를 해야 했었답니다. 남자들의 테니쓰 복장에 큰 혁명을 가져 온 사람은 역시 빠리와 런던과 뉴욕의 대회들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거두었던 René Lacoste 라는 선수로서, 그는 자기가 직접 디자인한 간편한 티셔츠를 입고 경기를 했고, 은퇴 후에는 아예 티셔츠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 회사는 악어 상표로 유명한 라꼬스뜨로, 지금까지도 전세계에 유명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별로 예쁜 옷이 없다고 생각되지만). 라꼬스뜨의 상표가 악어가 된 것은 르네 라꼬스뜨의 별명이 악어 (crocodile) 였기 때문입니다. 이 별명은 1925년도 데이비쓰 컵 (Coupe Davis) 결승전 시 생겨났는데, 이 때 프랑쓰 팀 감독이 라꼬스뜨에게, 만약 데이비쓰 컵을 따내게 되면, 악어 가죽 가방을 사 주겠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불행히도 이 해에 프랑쓰는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일화가 언론에 전해지면서 악어가 라꼬스뜨의 별명으로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르네 라꼬스뜨가 그린 악어는 디자인 역사상 로고가 의도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최초의 예라고도 합니다.
그나저나 대회가 시작된지 벌써 사일째나 되는데, 매일같이 비가 내리는 바람에, 거의 모든 경기가 취소되고 있습니다. 비 뿐만 아니라,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너무 추워요. 흑흑... 다시 겨울이 온 듯... 일주일 내내 날씨가 비슷할 거고, 다음주에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롤렁-갸로쓰가 진행될 무렵의 빠리는 항상 엄청나게 좋은 날씨를 자랑해 왔는데, 정말 올해 같은 날씨는 처음 봅니다.
롤렁-갸로쓰의 공식 싸이트 : http://www.rolandgarros.com
세상에서 가장 좋은 흙 테니쓰장이라는 롤렁-갸로쓰...
2 commentaires:
아, 프랑스에서는 자전거대회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근데, 네가 이 경기장에 가서 구경하고 사진 찍은거야? 부럽~
어쨋거나, 한국은 이곳이랑 날씨가 비슷한데, 거긴 참 다르구나. 여긴 오늘도 좀 더워~. 습기가 많아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하고. 따뜻하게하고, 잘 지내.
누나 왜 맨날 전화 꺼 놓고 사세요 ? 설거지 하고 들어와 보니, 누나 메싸쥬가 있길래 다시 전화했는데, 역시 신호만 가고 아무런 응답이... 그냥 별일 아니었다고 하니, 저도 관두었어요.
그리고 저의 꿈 중 하나는 그렁 슐렘 테니쓰장을 모두 방문하는 것 ! 지금까진 하나 밖에 못했으니 언제 나머질 다 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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