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enta 는 보통명사로서 음식 이름이지만, 고유명사로서는 지명이자 인명이기도 합니다. 라벤나 (Ravenna) 를 1287년부터 1441년까지 다스렸던 가문 다 뽈렌따 (da Polenta) 는, 이름이 뜻하듯이, 근방의 작은 마을인 « 뽈렌따 (Polenta) 로부터 (da) »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다 뽈렌따 가문의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마도 프란체스까일 것입니다. 유명하다고는 하나 그녀의 자세한 삶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는 젊은 나이에 리미니의 영주인 쟌초또 말라떼스따 (Gianciotto Malatesta di Rimini) 와 결혼해야 했으며 (1275), 그 때문에 프란체스까 다 리미니 (불어로는 Françoise de Rimini) 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역사학의 관습을 따르자면 프란체스까 다 뽈렌따라고 부르는게 더 정확하겠지만). 프란체스까는 나이 많고 절름발이였던 남편보다는 그의 동생이었던 빠올로 (Paolo Malatesta di Rimini) 와 사랑에 빠졌고, 이것을 목격한 쟌초또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두 사람을 한꺼번에 살해하였습니다 (1285).
이 어찌보면 « 별것 아닌 » 사건은 단떼 (Dante Alighieri) 가 신곡 (Divina Commedia) 에서 다룸으로써 일약 전설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각각 남편과 형을 배신한 프란체스까와 빠올로는 지옥에 가게 되었지만, 지옥에서나마 두 사람은 영원히 맺어지게 되었고, 비슷한 죄를 지은 다른 영혼들, 쎄미라미쓰, 디동, 끌레오빠트르, 엘렌, 빠리쓰, 아쉴, 트리스떵 같은 유명한 연인들과 함께, 지옥의 두번째 테를 떠돌게 됩니다. 이 모든 전설적인 연인들 중에서 단떼는 유난히 빠올로와 프란체스까의 고통에 극심한 슬픔을 느낍니다.
단떼 이후 이 이야기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19세기부터 갑자기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딸리아의 작가 뺄리꼬 (Silvio Pellico) 와 단눈치오 (Gabriele D'Annunzio) 는 프란체스까 다 리미니라는 제목의 희곡을 썼으며 (각각 1815, 1901), 벨리니와 도니제띠와 함께 자주 일했던 로마니 (Felice Romani) 는 오뻬라 대본을 한 편 남겼습니다. 이 대본은 당대의 여러 « 이류 » 음악가들에 의해 오뻬라로 작곡되긴 했지만, 오늘날은 모두 잊혀졌습니다. 반면 챠이코프스키의 교향시 프란체스까 다 리미니 (1876) 는 현재도 자주 연주되는 인기있는 작품입니다. 또 챠이코프스키의 동생인 모데스트 챠이코프스키도 같은 주제로 짤막한 오뻬라 대본을 썼으며, 여기에 맞춰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마지막 오뻬라 프란체스까 다 리미니를 작곡하였습니다 (1905). 또 잔도나이 (Riccardo Zandonai) 의 가장 유명한 오뻬라이자 거의 유일하게 알려진 작품인 프란체스까 다 리미니 (1914) 는 단눈치오의 동명 희곡을 각색한 대본을 사용합니다.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의 화가들이 두 연인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특히 앙그르는 빠올로와 프란체스까 (Paolo et Francesca) 라는 제목의 그림을 일곱 편 이상 남겼고, 로당 역시 빠올로와 프란체스까를 거대한 지옥의 문 (La Porte de l'Enfer) 속에 집어 넣기 위해 많은 궁리를 했습니다. (기타 빠올로와 프란체스까를 소재로 한 미술품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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