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di 13 février 2007

쌀릭법 (loi salique)

프렁족은 다시 여러 분파로 나뉘는데, 그 중 쌀리앙 (Saliens)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습을 모아 놓은 법전을 쌀릭법 (loi salique) 이라고 하는데, 이 중 한 항목에 의하면, 여자들은 선조들의 영토를 이어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프랑쓰의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명의 여왕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법칙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라고해서 특별히 여자들이 왕이 되는 것에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전혀 없을 때는 딸이 왕권을 이어 받은 경우들이 종종 있곤 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쓰에서만은 죽은 왕의 친딸 보다는 삼촌, 사촌, 아니면 그 이상으로 먼 친척이라도, 반드시 남자 중에서 왕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설사 친딸에게 아들이 있다고 해도, 그 역시 상속에서 제외됩니다. 즉 쌀릭법은 외가쪽 친척은 여자건 남자건 무조건 배제시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조선 왕조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이전에는 여왕이 있기도 했던데 비해서, 프랑쓰에서는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여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쌀릭법이 프랑쓰 왕가에서 선조들의 전통으로 엄격하게 존중된 법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법이 집성된 건 508년인데 수세기동안 까맣게 잊어먹고 있다가 1316년이 되어서야 갑자기 이 법의 정통성을 주장했으니까요. 이것은 필립 5세 (Philippe V) 가 조카인 쟌 (Jeanne) 을 몰아내고 자기가 왕이 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당시의 법학자들로 하여금 억지로 이 오래된 법을 파내어 적용시키게 한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필립 5세 자신도 딸만 남기고 죽었습니다. 결국 아빠가 제정한 법 때문에 네 딸 중 아무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지요. 이후로는 이 법이 정말로 엄격한 국법이 되어 번번이 공주들을 왕권에서 배제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는 프랑쓰에 단 한 번도 여왕이 존재한 적이 없지만, 사실상으로는 몇몇 왕비들이 활발하게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기회를 잡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외국과의 전쟁으로 오래 동안 부재 중일 때라든지, 아들이 직접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든지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로, 이런 때에는 주로 왕비가 섭정 (régente) 으로 임명되어 공식적으로 국가 업무를 다스렸지요. 블렁슈 드 꺄스띠으 (Blanche de Castille, 1188-1200-1252) 나 꺄트린 드 메디씨쓰 (Catherine de Médicis, 1519-1533-1589) 가 대표적인 예로, 그녀들은 웬만한 왕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입니다.

2 commentaires:

Anonyme a dit…

Oh my goodness! Amazing article dude! Thanks,
However I am having difficulties with your RSS.
I don't know the reason why I can't join it. Is
there anybody having identical RSS issues? Anyone that knows the solution can you kindly respond?

Thanks!!

http://www.intv.co.th/index.php?option=com_blog&view=comments&pid=37593&Itemid=0
Also visit my weblog ... Buy instagram followers Review

Anonyme a dit…

I couldn't resist commenting. Very well written!

Feel free to visit my weblog: lospiq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