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빠르나쓰 묘지에서 델핀 쎄릭의 무덤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 진 쎄베르그 (1938-1979) 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인이지만, 프랑쓰와 관계가 많은 배우입니다.
그녀가 출연한 처음 두 편의 작품은 모두 미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 다 그녀는 프랑쓰 여자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녀의 데뷔작은 오토 프레밍거 (Otto Preminger) 의 성녀 쟌 (Saint Joan, 1957) 으로서, 여기서 그녀는 무려 18 000 명의 후보자들을 제치고 프랑쓰의 역사적 영웅인 성녀 쟌 다르크의 역할을 따냈다고 합니다.
쎄베르그의 후속작은 역시 프레밍거의 작품인 안녕 슬픔 (Bonjour Tristesse, 1959) 입니다. 프렁쓰와즈 싸겅 (Françoise Sagan) 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이 작품에서 쎄베르그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깨닫는 쎄씰이라는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그녀의 세번째 영화는 프랑쓰 영화 숨가쁜 (À bout de souffle, 1960) 인데, 재미있게도 여기서는 오히려 미국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졍-뤽 고다르 (Jean-Luc Godard) 의 이 영화야말로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가 사라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쎄베르그 하면,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았던 빠트리씨아 프란끼니 (Patricia Franchini) 역할을 떠올립니다. 그 이유는 누벨 바그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이 영화가 유달리 강한 인상을 남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후 쎄베르그의 출연작들이 모두 일종의 이류 영화들로서,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필립 드 브로꺄, 끌로드 샤브롤, 필립 갸렐 같은 감독들이 그녀를 꾸준히 고용하기는 했지만, 쎄베르그는 영화보다는 사생활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역사상 유일하게 공꾸르 상을 두 번 탄 작가 로망 갸리 (Romain Gary) 와의 결혼은 당시에 아주 유명했다고 하지요.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갸리는 아내를 자신의 영화 두어편에 출연시키기도 하였으나, 역시 큰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반면, 두 사람의 이혼 문제와 결혼 말기에 태어난 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쎄베르그는 블랙 팬더스 (Black Panthers) 운동에 열성적으로 가담한 바가 있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FBI 에서, 이 딸은 갸리의 딸이 아니라, 블랙 팬더스 중 한 명의 딸이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그외에도 미행과 도청, 위협 등을 당한 끝에, 쎄베르그는 미숙아를 낳고 말았습니다. 이 아기가 태어난지 며칠 만에 죽고 말자, 쎄베르그는 아이의 죽음을 FBI 의 책임으로 몰아 세웠으며, 아기의 장례식에서는 아기의 흰 피부를 보란 듯이, 의도적으로 유리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후 쎄베르그는 알콜과 마약 중독에 빠졌으며, 여러 차례, 주로 딸이 죽은 날짜 (8월 25일) 를 전후하여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79년 8월말 그녀는 행방불명되었다가, 십여일이 흐른 뒤에야 경찰의 조사에 의해, 자신의 차 뒷좌석에서 담요에 휩싸인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쎄베르그의 자살로 발표되었지만, 앞뒤 상황이 분명치 않아, 로망 갸리를 선두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FBI 에서 처치한 것이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사건의 진상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한때 누벨 바그의 샛별로 떠올랐던 진 쎄베르그는 기대에 못미친 경력을 뒤로 하고, 마흔의 나이에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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