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중 특별히 죽은 사람들을 위한 미사를 위령미사 (missa pro defunctis = messe pour les défunts) 라 하고, 여기에 붙인 음악을 흔히 requiem 이라고 합니다. requiem 이라는 말은 라띠나어로 « 휴식 » 을 뜻하는 단어 requies 의 목적격 형태로, 옛날에는 위령미사의 입당송 (introït) 이 반드시 Requiem æternam dona eis (그들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소서)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2차 바띠까노 공의회 (1962-65) 이후로는 이 의무 규정이 사라졌지만, 위령미사를 위한 음악은 이미 하나의 졍르로 굳어졌기에, 관습상 계속 requiem 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미사 전체를 보면, 위령미사는 방금 말한 입당송을 비롯하여 몇몇 고유문에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기도가 들어가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보통 미사와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히려 음악에서 상당히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보통 미사를 위한 음악은 단지 통상문만을 다루는데 비해, 위령미사 음악은 고유문도 다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고유문들에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들어있으니까요. 다성 미사 음악이 발달한 후로, 미사 통상문과 고유문 모두에 음악을 붙이는 일은 위령미사곡들을 제외하면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위령미사곡은 여러 고유문 악장이 포함되는 대신, « 대영광송 » 과 « 신앙고백 » 처럼 영광과 환희를 노래하는 통상문 악장들은 빠집니다. 따라서 위령미사곡과 일반 미사곡은 악장의 수와 구성, 형식 등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위령미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보통 미사에는 없는 분노의 날 (Dies irae) 이라는 부속가가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부속가 (sequentia = séquence) 는 몇몇 특별한 날에만 노래되는 기도문으로서, 미사 속의 다른 기도문들과 달리 시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즉 고유한 리듬을 가지고 있으며, 쌍을 이루는 각운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aa - bb - cc - dd...) , 문학적으로도 상당히 다듬어진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러 연이 반복되는 비교적 긴 노래입니다. 중세와 르네썽쓰 시대에는 수천 곡의 화려한 부속가가 유행을 했었는데, 트렌또 공의회 (1545-1563) 에서 오로지 네 개만 남기고 모두 금지시켰습니다. 분노의 날은 그 넷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 또마조 디 첼라노 (Tommaso di Celano) 가 13세기에 작사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6세기까지는 분노의 날이 모든 위령미사곡에 꼭 포함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다성 레퀴엠으로 간주되는 기욤 뒤파이나 졍 오께겜의 위령미사음악에는 « 분노의 날 » 악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께겜의 제자 엉뜨완 브뤼멜 (Antoine Brumel) 이후로 « 분노의 날 » 은 점점 더 위령미사를 작곡하는 작곡가들이 가장 중점을 두는 악장이 되어 갔습니다. 특히 고전과 낭만 시대 작곡가들이 « 분노의 날 » 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한껏 드러내려는 시도를 많이 했지요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보통 미사 음악과 마찬가지로 위령미사곡의 형식적 구속이 많이 느슨해졌습니다. 이미 1868년에 브람쓰는 미사의 라띠나어 기도문이 아닌 독어판 성서에서 자유롭게 발췌한 문장들을 가사로 삼아 하나의 독일 레퀴엠 (Ein deutsches Requiem = Un requiem allemand, op. 45) 을 지었습니다. 약 백 년 뒤에 (1961) 브리튼이 작곡한 전쟁 레퀴엠 (War Requiem, op. 66) 역시 비슷한 예로, 여기서는 전통 위령미사에 사용되는 라띠나어 기도문과 윌프레드 오웬 (Wilfred Owen) 의 영어 시가 함께 사용됩니다. 결국 위령미사곡 역시 보통 미사곡처럼, 실제 미사 때에 사용하는 음악이라기 보다는, 순수 연주/감상용 음악이 되었습니다.
Inscription à :
Publier les commentaires (Atom)
Aucun commentaire:
Enregistrer un comment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