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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di 22 décembre 2009

prononciation de « août » (août 의 발음)

불어로 된 달의 이름 중에서 8월을 칭하는 août 은 그 발음이 특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을 아래에 실었습니다.
Je recopie ci-dessous un article intéressant sur la prononciation du mot août. La source de l'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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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de publication sur le site : 31 juillet 2007
La Lettre du CSA n° 207 - Juillet 2007   

Bientôt le « joli août »...

Dans le cadre de la mission du Conseil consistant à veiller à la défense et à l'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 dans les médias audiovisuels, La Lettre du CSA du mois de juillet donne quelques précisions sur la pronociation du mot « août ». C'est cet article qui est reproduit ci-dessous.

Comme chaque année, le mois d'août suscite sur les antennes quatre prononciations différentes : [ou], [out], [a-ou] [a-out]. Pierre Fouché, dans le Traité de prononciation française (1969), recommande la prononciation [ou] et précise : « La prononciation [a-ou] est archaïque ou dialectale. Il en est de même de [out] et à plus forte raison de [a-out] ».

Le Petit Robert (2007) et le Petit Larousse illustré (2007) donnent [ou] et [out] alors que des éditions antérieures ne retenaient que le mois d'[ou].

Pour Joseph Hanse, dans le Nouveau Dictionnaire des difficultés du français moderne (1987), « Le mois d'août se dit [ou] mais beaucoup prononcent le t final. La prononciation [a-out] est fautive alors qu'elle est correcte dans les dérivés aoûtat, aoûté et aoûtien [aoussien] ».

Dans le Dictionnaire des difficultés du français (1993), Jean-Paul Colin recommande « la seule prononciation correcte [ou], le t devant rester muet, bien que l'usage se répande, notamment dans les médias de prononcer [a-ou] ».

Maurice Grevisse, dans Le Bon Usage (1986), donne la prononciation habituelle [ou] mais trouve excessif de condamner [out].

Moins sévères sont les recommandations données par le Dict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 qui, dans sa neuvième édition, note : « Août se prononce [ou] plutôt que [a-ou], le t se fait parfois entendre ». La septième édition (1878) préconisait [ou] mais signalait cependant « on prononce souvent [out] ».

Quelques années auparavant, Émile Littré, dans le Dictionnaire de la langue française (1863-1873), indiquait : « Août se prononce [ou], l'a ne se prononce pas. Pourtant quelques personnes prononcent [a-ou] ».

Venant du latin Augustus (mensis), substitué en l'honneur de l'empereur Auguste à Sextilis mensis (sixième mois devenu huitième mois lors de l'instauration du calendrier grégorien), ce mot de quatre lettres n'a cessé de provoquer de vives querelles à cause tant de sa prononciation que de sa graphie.

Dans son traité complet de prononciation, Comment on prononce le français (1917), Philippe Martinon écrit au sujet de l'histoire du mot : « Dans « août », l'a a cessé de se prononcer depuis le XVIe siècle [...] ; on a malheureusement continué d'écrire « août » avec un a [mais] la prononciation [a-ou] est surannée ». Il signale que la prononciation [a-ou] réapparaît à partir du XIXe siècle chez les orateurs et chez les poètes comme Victor Hugo, Sainte-Beuve et Henri de Régnier mais, pour lui, « on serait dans la tradition française en prononçant toujours et uniquement [ou] ».

En 1930, Léon Clédat raconte que Voltaire qui, dans l'avertissement de Zaïre affirme que le mois d'août se prononce [out], commençait ainsi une lettre à la marquise du Deffand « À Ferney le 19 Auguste », car il trouvait trop barbare d'écrire août et de prononcer [ou].

Si le « joli août » n'a pas de barque sur le Rhin, des poètes l'ont fêté comme mois de la moisson, avec une rime en [ou] :

« Dites ! L'ancien labeur pacifique, dans l'août
Des seigles murs et des avoines rousses,
Avec les bras au clair, le front debout
Dans l'or des blés qui se retrousse
Vers l'horizon torride où le silence bout ». (1)

Au sens figuré, le mot a désigné l'âge de la maturité par comparaison des périodes de la vie avec les mois des travaux agricoles : « D'ailleurs, elle touchait au mois d'août des femmes, époque tout à la fois de réflexion et de tendresse ». (2)

Enfin, il fut aussi employé dans la locution « faire l'août », c'est-à-dire faire la moisson, et dans l'expression aujourd'hui disparue « faire son août dans une affaire », au sens d'y gagner beaucoup, d'en tirer énormément de 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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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Émile Verhaeren, « La plaine », Les Villes tentaculaires, 1895.
(2) Gustave Flaubert, L'Éducation sentimentale, 1869.

dimanche 13 décembre 2009

꺌렁드 (calendes)

라임바웃 데 바께이라쓰 (Raimbaut de Vaqueiras) 의 에스떵삐 Calenda maia 는 « 오월의 첫 날 » 이라는 뜻입니다. 옥어 calenda, 불어 calendes 는 라띠나어 calendae 로부터 온 단어이며, 이것은 고대 로마 시대에 매 달의 첫 날을 지칭하던 용어였습니다. 로마력에서는 매일매일을 숫자로 세지 않고, 몇몇 특정한 날들, 즉 꺌렁드 (매 달 첫 날), 이드 (ides, 매달 보름) 등과 같은 날을 기준으로 하여 날짜를 세었습니다. 즉 꺌렁드로부터 며칠 전 날, 이드로부터 며칠 전 날 식으로 불렀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 꺌렁드라는 개념은 로마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날짜였으며, 새로운 꺌렁드가 시작하기 전 채무 관계를 모두 정리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꺌렁드에 맞추어 돈 갚고 받을 날짜를 적어 둔 책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달력 (calendrier) 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또한 불어 속담 중 renvoyer aux calendes grecques « 그리쓰 꺌렁드로 미루다 »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말은 존재하지 않는 날짜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꺌렁드라는 이름은 로마 시대에 와서야 생겨난 것으로, 그리쓰 시대에는 첫 날을 꺌렁드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 성 글랑글랑의 날에 » 와 같은 뜻입니다.

mardi 3 novembre 2009

échec « 장기 » 또는 « 실패 »

« 장기 놀이 » 를 불어로 échecs (échec 의 복수) 이라 합니다. 이 단어는 뻬르쓰어 shah 가 변하여 된 것인데, « 왕 »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매우 오래된 놀이인 장기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인도나 중국 쪽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는데, 600년 경에는 뻬르쓰 (Perse) 에 이 놀이가 널리 퍼져있었답니다. 그리고 아랍 문화권과 에스빠냐를 거쳐 1000년 경에 유럽에 도입되었습니다. 뻬르쓰에서는 이 놀이의 가장 마지막에 더이상 왕이 꼼짝 못하게 되면, Shah mat 이라고 외쳤는데, 이것은 « 왕이 죽었다 » 는 뜻입니다. 현대 불어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왕을 꼼짝 못하게 하는 수를 두면서 Échec et mat 이라고 외칩니다.

여기서부터 « 실패 » 라는 뜻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다양한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échec 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놀이에서 비롯되었으며, 애초에는 왕이라는 뜻이었다니, 정말 재미있지요 ?

한편 « 실패하다 » 라는 동사는 échouer 라고 하는데, échec 과 당연히 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의외로 이건 또 그렇지 않습니다. échouer 의 원래 의미는 « (배가) 좌초하다, (배 밑이) 땅에 닿다 » 라는 의미로서, 아마도 échoir « 떨어지다 » 와 상관있어 보입니다. 배가 물 위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땅에 닿아있으니, 여기서 실패하다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입니다.

요약하면 échec 이라고 단수로 쓰면 실패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장기에서 왕을 지게 하는 결정적인 수를 가리킵니다. 반면 놀이 자체를 뜻하기 위해서는 échecs 이라고 복수를 사용합니다. 이 복수 형태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chess 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 장기판 » 은 불어로 échiquier 라 합니다. 장기판은 담놀이판 (damier) 과는 다르게 64개의 꽁빠르띠멍으로 나뉘어져 있지요.

장기판이 새겨진 놀이용 탁자
졍-엉리 리즈네르 (Jean-Henri Riesener) 가 만든 것으로 추정됨 (1785)
빠리, 꺄르나발레 박물관
루이 16세기 떵쁠에 갇혀있는 동안 사용했던 장기말들
빠리, 꺄르나발레 박물관
옛날에 장기를 두던 모습
하이델베르크 대학, 마네쓰 필사본 (Codex Manesse, 14세기)

mercredi 10 juin 2009

룰따비으 (Rouletabille)

땅땅하면 저는 어딘가 모르게 룰따비으가 생각납니다. 룰따비으도 프랑쓰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허구 속의 인물로, 역시 취재보다는 사건 해결에 집중하는 젊은 기자입니다. 다만, 땅땅이 만화의 주인공인 반면, 룰따비으는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룰따비으는 프랑쓰의 작가 갸스똥 르루 (Gaston Leroux, 1868-1927) 가 만들어낸 인물로, 노란 방의 비밀 (Le Mystère de la chambre jaune, 1907) 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 후 이 책의 후속편이랄 수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부인의 향기 (Le Parfum de la dame en noir, 1908) 에도 등장하지요. 그외에도 르루는 룰따비으가 등장하는 추리소설들을 여러권 발표하였습니다 (총 여덟 편).

이 인물의 원래의 이름은 죠제프 죠제팡 (Joseph Joséphin) 인데, 룰따비으는 일종의 별명처럼 쓰입니다. 불어를 아는 사람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RouletabilleRoule ta bille, 즉 « 너의 구슬을 굴려라 » 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bille 는 직역하면 « 구슬 » 이지만, 때로는 사람의 동그란 « 머리 » 를 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대중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이름을 « 머리를 굴려라 » 라고 이해하면 더 재미있겠지요. ^^

실제로 소설에서 룰따비으는 매우 동그란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특히 이마가 넓어서 더욱 동글동글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동그란 머리를 굴려서 복잡한 사건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지요. 에르제가 그린 땅땅 역시 매우 동그란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룰따비으의 이야기들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었고, 텔레비젼 연속극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프랑쓰에서 다시 룰따비으 바람이 분 것은 2003년에 브뤼노 뽀달리데쓰 (Bruno Podalydès) 가 노란 방의 비밀을 다시 연출하면서이지요. 여기서 룰따비으 역할은 유명 배우이자 브뤼노의 동생인 드니 뽀달리데쓰 (Denis Podalydès) 가 맡았습니다. 사실 소설 속 룰따비으는 18세인데, 드니 뽀달리데쓰가 이 역할을 연기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니 뽀달리데쓰는 소설 속의 묘사처럼 동그란 머리와 똘망똘망한 눈빛을 갖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이 역할에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어린 배우를 쓴 것보다 더 현실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니 뽀달리데쓰 이외에도 이 영화에는 프랑쓰의 수많은 명배우들이 등장했습니다 : 싸빈 아제마 (Sabine Azéma), 삐에르 아르디띠 (Pierre Arditi), 미꺄엘 롱달 (Michael Lonsdale), 끌로드 리슈 (Claude Rich)... 이들 대부분이 같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후속작 검은 옷을 입은 부인의 향기 (2005) 에도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저는 개인적으로 르루의 소설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치밀하게 짜여진 추리소설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영화는 나름대로 독특한 유머가 돋보여서 재미있었습니다.

노란 방의 비밀의 예고편 (bande-annonce)

jeudi 13 novembre 2008

인내와 성공 (patience et réussite)

patienceréussite 은 각각 « 인내 » 와 « 성공 » 을 뜻하는 불어 단어들이지만, 또한 특별한 종류의 카드 놀이들을 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이 범주에 속하는 놀이들은 거의 대부분 혼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때 (patienter) 하는 놀이로서, 정해진 원칙에 따라 카드를 일정한 모양으로 늘어 놓거나, 또는 짝을 맞추어 가며 한 장도 남김 없이 모두 거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계 (horloge) 라고 불리는 빠씨엉쓰 (또는 레위씻) 는 52 장의 카드를 시계 모양으로 구성하는 놀이입니다. 즉 한시 자리에는 네 장의 1이 모두 모여야 하며, 여섯시 자리에는 네 장의 6이 모두 모여야 하는 식이지요. 이렇게하여 결과적으로 각각의 시간마다 그에 해당하는 숫자를 가진 네 장의 카드가 모두 놓이고, 가운데에는 왕이 네 장 놓여야 성공 (réussite) 입니다.

또, 삐라미드 (pyramide) 라 불리는 빠씨엉쓰는 애초에 카드들을 삐라미드 모양으로 늘어 놓고, 삐라미드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카드를 두 장씩 거두어 가는 놀이입니다. 이 때 조건은 두 카드의 합이 13을 이루어야 합니다 : 3과 10, 6과 7, 1과 왕비... 왕은 혼자서 13을 이루므로 한 장만 있어도 거두어 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삐라미드의 가장 꼭대기를 구성하는 마지막 한 장의 카드까지 모두 없애야 성공 (réussite) 입니다.

이외에도 14를 잡아라 (prenez le 14), 황제의 수행 (suite impériale), 몽떼-꺄를로 (Monte-Carlo), 죠제핀 (Joséphine), 숫자의 행진 (défilé des nombres), 초상화 회랑 (gallerie des portraits), 결혼 (mariage) 등, 특이한 이름을 가진 빠씨엉쓰와 레위씻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놀이들이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성공을 위해서는 인내를 가지고 침착하게 여러번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애초에는 (그리고 지금도) 이런 놀이들을 jeu de patience (참을성 놀이) 라 불렀습니다. 쥬 드 빠씨엉쓰는 카드 놀이 뿐 아니라, 그림 맞추기 퍼즐이나, 성냥개비 쌓기, 숫자 문제, 암호 해독, 복잡한 미로, 또는 뤼빅쓰 뀝 (Rubik's cube) 같이, 대개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 하게 되는, 그리고 어느 정도 인내심이 필요한 온갖 종류의 놀이들을 칭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카드를 가지고 하는 놀이를 그저 patience 라 부르게 되었지요. 따라서 patiencejeu de patience 는 조금 구별되는 용어입니다. 반면 patienceréussite 은 차이가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카드 놀이들은 사람에 따라 patience 라고도 불리고, réussite 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과정을 중시하느냐, 결과를 중시하느냐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 역사적으로는 patience 라는 말이 좀 더 일찍 등장했습니다. 이 단어 (카드 놀이라는 의미로서) 의 첫등장은 1779년 Mémoires sur les jeux (놀이에 대한 기록) 라는 저술에서였습니다. 또 1842년에는 오로지 빠씨엉쓰 놀이들의 규칙만을 모아 놓은 Livre des patiences (빠씨엉쓰 책) 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놀이와 단어는 곧 유럽 도처에 퍼져 오늘날까지도 영어, 독어, 러시아어 등에서는 patience 라는 불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대의 프랑쓰에서는 réussite 의 사용이 좀 더 일반화된 느낌이 듭니다.

mercredi 17 septembre 2008

délice(s) « 쾌락 »

두 가지 성을 모두 가진 단어 중 또다른 예로 délice 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hymne 와는 또다르게, 복수냐 단수냐에 따라 성이 달라집니다. 우선, délices 는 라띠나어 시절부터 이미 여성 복수형으로 굳어진 단어로서 (deliciae), « 지극한 쾌락, 극도의 즐거움, 환희, 황홀 »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단수로 쓰이면, 남성으로 취급되며, 비슷한 뜻을 유지하기는 하되, 특별히 먹는 것과 연관되어 쓰일 때가 많습니다. 즉 un délice = « 매우 맛있는 음식, 황홀할 정도로 감미로운 진미 ».

délices 와 연관된 숙어 하나로 délices de Capoue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Capoue 는 이딸리아 남부에 있던 고대 도시 까뿌아 (Capua) 를 말하는데, 아니발 (Hannibal) 이 여기서 기원전 215년의 겨울을 한가로이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는 2차 뽀에니 전쟁 (2e guerre punique) 중이었는데, 아니발과 그의 군대는 훈련과 경계는 커녕, 까뿌아에서 먹고 마시고 온갖 종류의 다른 쾌락을 즐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일화가 속담처럼 굳어져서, délices de Capoue 라는 숙어가 나왔습니다. 이 표현과 함께 사용되는 동사는 주로 s'endormir 로, je m'endors dans les délices de Capoue 라고 하면, « 나는 꺄뿌의 쾌락 속에 잠든다 » 고 직역할 수 있는데, 물론 이것은 실제로 잠들 때 하는 말이 아니라,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안이하고 나른한 삶을 보낸다는 뜻입니다. (딱 내 경우...)

jeudi 21 août 2008

빠르나쏘쓰로 오르는 계단 (gradus ad Parnassum)

문화와 예술, 학문과 지식의 보금자리라 믿어지는 빠르나쏘쓰 산은 빠리의 한 구역프랑쓰의 문학 운동에 그 이름을 주었을 뿐 아니라 gradus ad Parnassum [그라두쓰 아드 빠르나쑴] 이라는 라띠나어 표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직역하면 « 빠르나쏘쓰로 오르는 계단 », 의역하면 « 예술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밟아야 할 체계적인 과정 » 을 뜻하는 이 표현은 사실상 교본, 사전, 자습서, 연습문제 같은 책의 제목으로 자주 쓰였고, 더 나아가 그런 부류의 책을 포괄하는 일반 용어가 되었습니다. 불어에서도 gradus ad Parnassum [그라뒤쓰 아드 빠르나썸] 또는 그저 gradus [그라뒤쓰] 라고 하면, 특별히 라띠나어 시 작법을 설명한 책과 라띠나어 운율 사전 등을 칭합니다.

시 외에도 이 표현은 종종 음악 분야에서도 쓰였습니다. 특히 유명한 저술 하나는 외스터라이히의 작곡가 푹쓰 (Johann Joseph Fux) 가 지은 Gradus ad Parnassum 입니다 (1725). 스승과 제자의 대화 형식으로 쓰여진 이 대위법 설명서는 많은 유명 작곡가들의 교본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끌레멘띠 (Muzio Clementi) 의 Gradus ad Parnassum (1817) 은 글로된 저술이 아니라, 피아노를 위한 실제 음악 작품입니다. 총 100 곡으로 구성된 이 피아노 연습집은 갈수록 난이도를 높여가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게끔 엮어졌기 때문에, 이 백 곡을 차근차근 연마하면 이론적으로는 피아노의 정상, 즉 빠르나쓰의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피아노를 배워 보신 분들은 아마 아농 (Charles-Louis Hanon) 이나 체르니 (Carl Czerny) 의 연습곡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 교본들이 바로 그라두쓰 아드 빠르나쑴의 일종입니다.

드뷔씨의 유명한 Doctor Gradus ad Parnassum 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의 구석 (Children's Corner) 의 첫 곡인 이 작품은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지겨워하는 연습곡을 의인화하여 박사라는 호칭을 붙였고, 그럼으로써 제목만 들어도 따분하고 현학적인 느낌을 줍니다. 곡 자체도 음계 연습을 연상시키지만, 물론 이 작품은 연습곡이 아니라 재미있는 풍자곡이지요.

아르뚜로 베네데띠 미껠란젤리가 연주하는 그라뒤쓰 아드 빠르나썸 박사

jeudi 10 juillet 2008

당나귀 모자 (bonnet d'âne)

프랑쓰에는 당나귀 모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이나 아니면 더 간단하게는 종이로 만든 모자로, 당나귀의 긴 귀 모양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프랑쓰에서 당나귀는 한편으론 귀엽고 소박한 동물로 사랑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동물의 대명사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프랑쓰의 학교에서는 아주 옛날부터 20세기 초반 무렵까지, 공부 못하는 학생, 떠드는 아이, 말썽꾸러기, 숙제 안 해 온 애, 질문에 대답 못하는 어린이 등등에게 이 모자를 씌우고 한 쪽 귀퉁이에 가서 서 있게 하는 벌을 내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까짓게 무슨 벌인가 싶지만, 어린이들이 순진하던 시절 (!) 에는 당나귀 취급을 당하는 것을 몹시 수치스러원 했던 것 같습니다. 옛날 영화들을 보면, 선생님이 당나귀 모자를 씌웠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고, 반 친구들도 당나귀 모자를 쓴 아이를 놀리거나 따돌리는 장면 따위를 보게 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실제로 당나귀 모자를 씌우는 일은 없습니다, 혹시 장난으로 한번 만들어 보는 일은 있을 수 있으나. 하지만 당나귀 모자라는 표현은 남아서 여전히 열등생들을 지칭할 때 자주 쓰이며, 더 나아가 일반적으로, 제대로 실력이 없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 자기가 틀린 줄 알면서도 고집부리는 사람들을 놀릴 때 사용되는 숙어가 되었습니다. 언론의 풍자란 등에서는 유명인들, 특히 정치인들을 비꼴 때 당나귀 모자를 수여하곤 합니다.

당나귀 모자를 씌운 니꼴라 싸르꼬지 

dimanche 27 avril 2008

zénith 과 azimut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형태, 또는 다른 의미로 발전한 단어들을 doublet 또는 « 이중어 » 라고 합니다. magasinmagazine, chiffrezéro 등이 그러한 예들이지요. 또다른 이중어로 zénithazimut 이 있습니다.

우선 zénith 은 궤도를 돌던 별이 관측자의 머리 바로 위에 수직으로 위치하는 « 가장 높은 지점 » 을 가리키는 천문학 용어로, 아랍어 samt 를 잘못 읽은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 (별의) 길, 방향 » 을 뜻하는 이 아랍 단어를 불어 알파베로 옮겨 적고 나서, m 을 m 으로 보는 대신 ni 로 착각한 것이지요. 그 때문에 sanit, cenith 등의 여러 표기를 거치다가, 16세기 초부터 zénith 이라는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azimut 역시 천문학 용어로 « 방향의 각도 » 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북쪽을 기준으로 할 때 동쪽의 azimut 또는 « 방위각 » 은 90° 이지요. 그런데 이 azimut 이라는 단어 역시 zénith 과 같은 어원인 samt 로부터 유래하였습니다. 다만 이 때는 정관사 al 이 앞에 붙은 것이지요. 아랍어 정관사 al 은 뒤에 오는 단어의 첫 자음이 해자음일 경우 l 을 잃는다고 합니다. 아랍어에서 해자음 (consonnes solaires) 이란 d, r, s, t, z, 즉 혀 끝으로 발음되는 자음들을 칭하며, 나머지 자음들은 달자음 (consonnes lunaires) 이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해자음으로 시작하는 samt 에 정관사를 붙이면 asamt 가 되는 것이지요. 이 정관사가 포함된 형태가 불어로 전해지면서 azimut 이라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중세에는 끝에 h 가 있는 형태였으며, 이 때 영어로 건너가 현재 영어에는 여전히 azimuth 라는 형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결국 정관사의 유무라는 점에서 이 zénithazimut 의 관계는 khôlalcool 의 관계와 흡사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두 단어는 천문학을 떠나 일상에서도 매우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azimut 은 특히 dans tous les azimuts 또는 tous azimuts 등의 숙어에서 « 사방으로, 정신없이 » 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며, zénith 은 « 절정, 극치, 최고조 » 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또한 고유명사로서의 Zénith 은 프랑쓰 도처에 존재하는 대형 공연장들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마치 오뻬라 극장처럼 프랑쓰의 주요 도시들에는 제닛이 하나씩 있습니다. 제닛은 주로 대중 음악 연주를 위한 공연장이지만, 때로 정치 모임이나 운동 경기 등이 열리기도 하며, 모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합니다. 가장 오래된 제닛은 1983년 문을 연 빠리의 제닛 (Zénith de Paris).

dimanche 2 mars 2008

누벨-프렁쓰 (Nouvelle-France)

쟉 꺄르띠에 (Jacques Cartier, 1491-1557) 는 졍 드 베라잔 (Jean de Verrazane) 이 뉴욕과 미국 동부 해안을 발견한 지 십년 뒤에, 프렁쓰와 1세 (François Ier) 가 다시 미대륙으로 파견한 항해사입니다. 그는 1534년 현재 꺄나다의 동부 해안에 도착합니다. 이 지역의 일부는 이미 졍 꺄보 (Jean Cabot) 에 의해 발견되었고 (Terre-Neuve), 또다른 일부는 베라잔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Acadie), 이들이 해안 지역의 답사에 그친데 반해, 꺄르띠에는 본격적으로 이 지역을 탐험했습니다. 그는 마들렌 제도 (Îles de la Madeleine) 와 프랑쓰-에두아르 섬 (Île du Prince-Édouard) 을 발견하였으며, 떼르-뇌브가 이름과는 달리 땅 (terre) 이 아니라 섬임을 밝혔고, 무엇보다도 쌍-로렁 강을 거슬러 올라가 북미 대륙 깊숙히까지 들어간 최초의 서양인입니다.

쌍-로렁 강 (fleuve Saint-Laurent) 이야말로 많은 탐험가들이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통로라고 믿은 꺄르띠에는 대서양부터 이 강의 원천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 현재의 께벡과 몽레알이 된 지역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이 강을 처음 항해하기 시작한 날이 1535년 8월 10일, 바로 성 로렁의 축일이기에, 꺄르띠에는 이 강과 그 주변 계곡에 Saint-Laurent 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쌍-로렁을 거슬러 올라가던 꺄르띠에는 현재의 께벡 (Québec) 이 된 지역에 위치한, 한 원주민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마을 주민들이 자기네말 (이로끄와어의 일종) 로 « 마을 » 을 [꺄나따] 비슷하게 발음하는 것을 듣고, 꺄르띠에가 훗날 출판한 여행 보고서에 불어 알파베를 이용하여 Canada 라 적은 것이 오늘날 이 나라 전체의 국명이 된 기원이 되었습니다.

Québec 역시 원주민들의 말을 불어로 옮겨 적어 생긴 말입니다. 이 말은 « 물길이 좁아지는 장소 » 라는 뜻의 단어인데, 실제로 쌍-로렁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또는 지도만 보아도), 오늘날의 께벡시 부근에서부터 강폭이 급격히 좁아집니다. 또는 강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보자면, 께벡시부터 강폭이 넓어진다고 보아야겠지요. 아무튼 꺄르띠에가 이미 꺄나다 라고 칭했던 이 지역에 1608년, 싸뮈엘 드 셩쁠랑 (Samuel de Champlain) 이 께벡시를 세웁니다. 께벡은 사실상 북미 대륙에 세워진 최초의 도시이며, 그 건립자를 기념하기 위해, 오늘날 미국과 꺄나다 도처에는 Champlain 이라는 지명들이 있습니다.

Montréal 역시 Québec 처럼 주변의 자연 환경에 기인한 이름입니다. 현재의 몽레알시가 된 장소에 있는 산을 처음 발견한 꺄르띠에가 이 산을 프렁쓰와 1세에게 바치는 의미에서, mont réal, 즉 « 왕의 산 » 이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réalroyal 의 옛불어). 하지만 실제 몽레알 시는 꺄르띠에의 발견으로부터 백여년 뒤, 1642년에 뽈 드 쇼므데 드 메조뇌브 (Paul de Chomedey de Maisonneuve) 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도시 이름을 Ville-Marie, 즉 « 성모의 도시 » 라고 지었으나, 꺄르띠에가 몽레알 이라고 부른 산이 도시 한복판에 있는 바람에, 점차 산 이름이 도시 전체를 대변하는 이름으로 변했습니다.

이렇게 초기 프랑쓰 탐험가들에 의해 점령된 북미의 영토를 Nouvelle-France (새 프랑쓰) 라 부릅니다. 이 명칭은 졍 드 베라잔의 동생 제롬 (Jérôme de Verrazane 또는 Girolamo da Verrazano 또는 Verrazzano) 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제도사 (cartographe) 였던 제롬은 1529년, 형의 여행 기록을 토대로 만든 세계 지도에서 꺄나다 동부를 라띠나어로 Nova Gallia (= Nouvelle France) 라 칭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 새로운 프렁쓰 » 는 점차 확장되어, 18세기 중반에는 « 옛 프랑쓰 » 의 십여배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영토로 발전합니다.

jeudi 21 février 2008

생명수 (eau-de-vie)

꼬냑 (cognac) 이나 꺌바도쓰 (calvados) 같이 증류를 통해서 얻은 술을 불어로는 eau-de-vie, 즉 « 생명의 물 » 이라고 부릅니다 (복수는 eaux-de-vie). 이 말은 라띠나어 aqua uitae 로부터 오긴 했지만, 대부분의 다른 불어 어휘와는 달리,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말이 아니라, 라띠나어 표현을 직접 불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물론 단어별로 보면, eau 는 라띠나어 aqua « 물 » 로부터, vie 는 라띠나어 uita « 삶 » 로부터 온 것이 사실이지만, aqua uitae (uitaeuita 의 소유격) 라는 표현은 로마 시대부터 자연스럽게 쓰던 일상 용어가 아니라, 중세, 그것도 후반기 (14세기 이후) 에 연금술사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인 것입니다.

연금술사들은, 납으로부터 금을 만들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통 술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료수를 만들려는 꿈을 가졌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일반 술을 끓인 후, 거기서 생긴 증기를 곧바로 냉각시킴으로써, 새로운 액체를 얻어 내었습니다. 알콜 성분이 농축된 이 액체는 일반 술보다 더 순수한 물질로 여겨졌고, 아픈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 생명수 » 는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졌는데, 프랑쓰에서는 특히 꼬냑 (Cognac) 에서 일찍부터 포도주를 증류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꼬냑 근처에서 나는 포도주는 그 자체로는 맛이 없으며 보관도 잘 안되기 때문에, 맛을 향상시키고 보관도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태어난 생명수가 바로 꼬냑 (cognac) 입니다. 꼬냑은 옛날부터 프랑쓰 각지는 물론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는데, 네델란드 사람들이 꼬냑을 증류하는 것을 보고는 이 술을 brandewijn, 즉 « 불에 태운 포도주 »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말이 영어로 건너가 brandy 로 변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영어에서 brandy 는 지금도 거의 cognac 과 동의어처럼 쓰이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주로 포도주로부터 증류시킨 술을 가리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브랜디 라는 말을 그냥 그대로 쓰는 사람들이 많지만, 증류주 또는 화주 라는 말들이 버젓이 있습니다. 화주 는 불화자를 쓰는데, 아마도 역시 불에 끓인 술이라는 뜻인 듯 합니다.

반면, 불어의 eau-de-vie 는 포도주 뿐 아니라, 다른 과일주나 곡식주, 아무튼 증류시켜서 얻은 모든 종류의 술을 칭합니다. 프랑쓰에 잘 알려진 오-드-비의 몇몇 종류 :

  • 사과 : calvados
  • 포도 : cognac, armagnac
  • 포도 찌꺼기 : marc, grappa
  • 산딸기 : framboise
  • : poire, williamine
  • 버찌 : kirsch
  • 살구 : abricotine
  • 자두 : mirabelle, quetsche, damassine
  • 사탕수수 : rhum, tafia
  • 호두 껍질 : brou
  • 곡식, 야채, 뿌리 : aquavit, genièvre, gin, kummel, vodka, arak, whisky et whiskey

vendredi 28 décembre 2007

성탄절 (Noël)

« 성탄절 » 을 불어로는 Noël 이라 합니다. 이 단어는 라띠나어 natalis (출생, 탄생) 로부터 유래했습니다.

NoëlPâques 와 마찬가지로 거의 고유명사 취급을 받습니다. 따라서 항상 첫자를 대문자로 쓰고, 관사가 붙는 일이 드뭅니다. 관사를 붙여야 할 때는 남성단수에 맞춥니다 : le Noël de cette année-là (그 해의 성탄절). 하지만 종종 la Noël 이란 표현도 보고 듣게 되는데, 이것은 성인 축일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미 설명했듯이, la fête de... 의 줄임말이기 때문입니다 : la Noël = la fête de Noël.

Noël 은 역시 Pascal 과 마찬가지로 매우 흔한 사람 이름 (prénom) 이기도 합니다. 여성형은 Noëlle. 또 매우 흔한 프랑쓰 여자 이름 Nathalie (또는 Natalie 및 여러 변형들) 역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어로 성탄절 인사는 joyeux Noël 또는 bon Noël 이라고 하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 또는 joyeuses fêtes 이라고도 많이들 합니다. 이것은 성탄절 뿐 아니라 망년회, 새해 축하연 등 연말연시에 일어나는 많은 잔치들을 다 포함하는 인사입니다 (따라서 복수). 이미 성탄절이 지났으므로, joyeux Noël 이란 인사는 이제 못하지만, joyeuses fêtes, bonne fêtes 은 요즘 어딜가나 자주 주고받게 되는 인사입니다.

lundi 24 décembre 2007

성탄 전야 (réveillon)

성탄절 하루 전날 밤을 불어로는 réveillon 이라 합니다.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깨어 있기 때문이지요 (réveiller = « 잠에서 깨우다 »). 이 말은 특히 성탄 전야에 행해지는 식사를 뜻하기도 합니다. 레베이용은 대개 보통 저녁 식사보다 조금 느지막히 시작하여 자정 무렵, 또는 그 너머까지 가는 매우 길고 푸짐한 식사입니다. 이 때 프랑쓰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양의 음식을, 그것도 매우 기름진 음식을 먹어 치웁니다.

프랑쓰의 성탄 전야 식사에 주로 등장하는 음식들 :

  • 굴, 바닷가재류 (homard, langouste, langoustine), 쌍-쟉 조개 (coquille saint-Jacques)
  • 훈제 연어, 달팽이, 철갑상어의 알 (caviar), 거위나 오리의 기름진 간 (foie gras)
  • 밤으로 속을 채운 칠면조
  • 나무 장작 모양으로 만든 과자 (bûche), 설탕에 절인 밤 (marron glacé), 쵸콜렛
  • 셩빠뉴

물론 가정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전통이 다르지요. 프로벙쓰식 레베이용은 엉트레와 본요리로 생야채와 물고기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대신 후식을 열 세 가지 먹습니다. 그 수가 13인 이유는 예수와 그의 열두 사도에 대한 암시인데, 정확한 목록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대개는 견과, 생과일, 약간의 사탕 종류와 약간의 빵, 과자 등으로서 생각만큼 그렇게 무거운 후식은 아닙니다. 그리고 열 세 가지 후식이 차례차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뷔페 식으로 한꺼번에 내놓기 때문에 조금씩 두루 맛만 보면 됩니다.

사실 프로벙쓰의 열 세 가지 후식이 뷔슈보다 훨씬 간소하고 깔끔합니다. 뷔슈는 설탕으로 둥글고 길죽하게 빚은, 장작 모양 빵에 크림과 버터로 떡칠을 한 과자로, 느끼하고 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프랑쓰 사람들이 뷔슈를 성탄절 후식으로 꼭 챙기기는 하지만, 실제로 뷔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일년에 오로지 딱 한 번만 먹나 봅니다.^^ 그리고 요즘은 점점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뷔슈 (bûche glacée) 를 더 많이들 먹습니다.

bûche traditionnelle et bûche glacée


레베이용이 끝나고 나면 가족이 다 같이 자정 미사에 가는 것이 옛날의 관습이었는데, 요즘은 독실한 사람들 말고는 잔치를 계속합니다. 또 어떤 가정들에서는 자정에 먹는 것을 멈춘 후 미사에 갔다 와서 다시 계속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로 이 때 선물을 주고 받지요 (어린이들은 다음날 아침에). 아무튼 성탄절은 프랑쓰에서 가장 중요하고 제일가는 전통 명절로서, 모든 가족이 다 모여서 함께 축하하고 행복해 하는 순간입니다. 가족 없는 사람들만 불쌍한 거지요... En tout cas, joyeux Noël !

samedi 22 décembre 2007

므뉘 (menu)

저에게는 백만 개의 므뉘 (1 000 000 de menus, Octopus, 2004) 라는 요리책이 있습니다. 울리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이 책은 끄노의 백조 편의 시와 똑같은 원칙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즉 이 책의 모든 페이지는 전채 (entrée), 본요리 (plat), 후식 (dessert) 으로 삼등분 되어 각 부분을 독립적으로 넘길 수 있으며, 매번 100가지 씩의 요리법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서로 다르게 조합하면, 100의 3승, 즉 백만 가지의 서로 다른 므뉘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지요.

menu 란 바로 이렇게 « 한 끼의 식사를 구성하는 여러 음식의 조합 » 을 뜻하는 말입니다. « 한 식당에서 파는 모든 음식의 이름과 값을 적은 표 » 라는 뜻도 사전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현대 불어에서 menu 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거나 드뭅니다. 이럴 때 보다 적당한 말은 carte 이지요. 프랑쓰 식당에서 menu 라고 하면 식당 측에서 일정한 가격에 맞춰 미리 짜놓은 식사 프로그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au menu 로 먹으면 훨씬 선택의 폭이 좁지요. 반대로 à la carte 라고 하면 꺄르뜨에 제시되어 있는 음식들 모두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선택해서 먹는 방식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알 라 꺄르뜨로 먹는 것이 오 므뉘로 먹는 것보다 값이 많이 나오지요.

menu(e) 는 사실은 형용사로 « 작은, 잘게 쪼개진, 또는 자세한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사의 구성을 뜻하는 menumenu détail, 즉 « 자세한 세부 사항 » 이라는 표현이 줄어들면서 명사화된 단어입니다.

여기서 비롯된 menuiser 라는 동사도 있습니다. 이 말은 즉 « 잘게 자르다 », 특히 « 나무를 토막내다 » 라는 뜻인데, 현대 불어에서는 사실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반면 이 동사에서 파생된 menuiserie 라는 말은 매우 자주 쓰입니다 :
« 목공업, 목공 기술, 가구 제조, 가구 공장... » 그리고 « 목공, 목수, 가구 제조업자 » 는 menuisier, -ière 라고 합니다.

한편 menu 에 축소접미사 -et 를 붙인 menuet 는 루이 14세 시대에 프랑쓰 궁정에서 유행했던 춤으로, 작은 발걸음으로 추는 춤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므뉘에는 또한 이 춤을 반주하던 삼박자 풍의 음악을 뜻하기도 하는데, 훗날 춤하고는 상관없는 독립적인 음악 형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jeudi 13 décembre 2007

엉덩이가 뜨거워 (L. H. O. O. Q.)

때때로 현대 미술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미술사에 큰 혁신을 가져온 마르쎌 뒤셩 (Marcel Duchamp, 1887-1968) 은 울리뽀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울리뽀의 다른 동료들, 즉 브라포르르 뗄리에 보다 훨씬 이전에 라 죠꽁드 (La Joconde) 를 풍자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919년, 뒤셩은 엽서 만한 크기의 라 죠꽁드의 복제본에 수염을 그려 넣고, 그림 밑에는 L. H. O. O. Q. 라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달았습니다. 약자처럼 보이지만 약자가 아닌 이 글자들의 나열은 몬나 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에 대한 뒤셩 나름의 해답입니다. 즉, 뒤셩 생각에 그녀가 살며시 웃을듯 말듯 미소 짓는 이유는 엉덩이가 뜨겁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불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불어권 사람들이라도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자칫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는 말장난입니다. L. H. O. O. Q 의 글자 이름들을 그대로 읽으면, [엘. 아슈. 오. 오. 뀌.] 가 되고, 이것은 마치 불어 문장 Elle a chaud au cul 를 발음한 것처럼 들립니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 » 라는 뜻인데, 실제로 엉덩이 주변의 온도가 높아서 뜨겁다는 뜻이 아니라, 성적으로 흥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안그래도 라 죠꽁드가 레오나르 드 방씨의 분장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거기다가 수염을 그려서 남자처럼 만들고, 성적인 암시가 들어간 제목까지 덧붙이는 바람에, 이 그림은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오늘날 난무하는 수많은 라 죠꽁드 풍자화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뒤셩은 이 그림 (보다 정확히는 레디-메이드) 을 루이 아라공 (Louis Aragon) 에게 선물하였고, 아라공은 생애 말기에 이 작품을 프랑쓰 공산당에 기증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그림은 여전히 프랑쓰 공산당의 소유품이지만, 2005년부터 뽕삐두 쎈터 (Centre Pompidou) 에 99년간 빌려 주었다고 합니다.

L. H. O. O. Q. de Marcel Duchamp (1919)

dimanche 2 décembre 2007

아크로님 (acronyme)

울리삐앙들이 즐기는 말장난 중 하나는 아크로님 만들기입니다. 아크로님은 머릿글자들만 모아서 만들어진 약칭이되, 보통 단어들처럼 읽고 쓰이는 단어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Oulipo =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아크로님은 씨글 (sigle) 의 일종인 동시에 씨글과 구별됩니다. sigle 은 머릿글자들을 따서 만들어진 약칭을 보다 포괄적으로 총칭하는 말로, 예를 들면,
  • SNCF = 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 = 프랑쓰 국립 철도청
  • RATP = Régie Autonome des Transports Parisiens = 빠리 지하철 공사
등입니다. 이 두 예에서 보다시피 씨글은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고, 읽을 때도 그저 철자 이름을 차례차례 읽는 수 밖에 없지요. 원래, 약자 뒤에는 마침표를 찍는 것이 원칙이나 (S. N. C. F.), 지금은 점점 더 생략하는 추세인 듯 합니다. 그리고 씨글은 성수의 변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크로님은 씨글을 만들어 놓고 보니, 자음과 모음이 적절하게 섞여, 일반 단어처럼 읽을 수 있게 된 경우입니다. 예 :
  • ovni = Objet Volant Non-Identifié = 미확인 비행 물체
  • sida = Syndrome d'Immuno-Déficience Acquise = 후천성 면역 결핍증

이 두 예에서 보다시피 아크로님은 소문자로도 쓰는 것이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대문자로 쓰다가도 (SIDA, OVNI),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보니, 아예 일반 단어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크로님들 중에는 성수의 변화를 받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un ovni, des ovnis)

심지어 어떤 아크로님들은 그 자신이 어원이 되어 파생어들을 낳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Salaire Minimum Interprofessionnel de Croissance 는 « 최저임금 » 이란 뜻인데, 너무 길어서 약호화 시켜 놓고 보니, SMIC 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S. M. I. C. 으로 표기하고 따로 끊어 읽기도 했지만, 곧 자연스럽게 [스믹] 이라 읽게 되었으며, 표기도 SMIC 또는 smic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smicard(e), 즉 «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 (여자) »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크로님이라고 해서 모두 일반 명사화되고, 모두 소문자로 쓰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OTAN = Organisation du Traité de l'Atlantique Nord = « 북대서양 조약 기구 » 는 항상 [오떵] 이라고 읽는 아크로님이지만,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거나, 최소한 첫자는 대문자로 표기합니다 (Otan). 즉 고유명사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지요.

ONU = Oraganisation des Nations Unies = « 국제 연합 » 도 비슷한 예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모두 대문자로만 쓰며, 때로는 아크로님으로, 때로는 씨글로 취급됩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오뉘] 라고 읽는가하면, 또다른 사람들은 [오. 엔. 위] 라고 발음합니다.

사실 어떤 단어가 씨글로 남아있고, 어떤 단어가 아크로님으로 변모하는가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용 (특히 언론에서) 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DEA = Diplôme d'Études Approfondies = « 박사 과정 수료 학위 » 는 [데아] 라고 발음될 수 있고, 복수형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항상 대문자로만 쓰며, [데. 으. 아] 라고 끊어 읽고, 복수일 때도 s 가 붙지 않습니다.

요즘은 점점 더 기업, 단체, 상품명 등이 자연스러운 단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첫자 외에 몇몇 다른 글자들을 집어 넣는 경향이 있는 듯 보입니다. 또다시 울리뽀를 예로 들면, 엄격하게 따져서 이것의 약자는 OLP 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오.엘.뻬] 라 읽히는 멋대가리 없는 말이 되니까, 첫자만 뽑는 대신, 아예 첫음절을 모아 Oulipo 라는 말을 만든 것이지요.

mercredi 14 novembre 2007

파업 (grève)

오늘부터 프랑쓰 전국이 대규모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기차, 지하철, 버쓰, 전기, 가스, 교사, 학생, 법원 등이 참여하고, 곧이어 모든 분야의 공무원들에 의해 뒤를 이을 이번 파업은 무기한입니다. 대부분의 공공 업무를 « 개혁 »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때문인데, 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개혁이라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절대 자신들의 권리를 양보할 마음이 없으며, 정부는 정부대로 눈꼽 만큼도 협상을 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채 밀어 부치고 있기 때문에, 두 파의 힘겨루기는 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십여년 전에도 같은 문제로, 같은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한 달 반 동안 프랑쓰 전체가 마비되는 파업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 그 해 겨울,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아무튼 « 파업 » 은 불어로 grève 라 하는데, 이 말은 고유 명사, place de Grève (그레브 광장) 로부터 왔습니다. 그레브 광장은 빠리 시청 앞의 광장으로, 옛부터,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이 광장에 모여, 일감이 생기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광장은 쎈 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기에, 배가 도착하면 일손을 고용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지요. 이 행위를 faire Grève, être en Grève 라 했고, 처음에는 글자 그대로 «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그레브 광장에 모이다 » 라는 뜻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뜻이 발전하여, 오늘날 같은 표현을 쓰면, « 의도적으로 일을 중지하다, 파업하다 » 라는 의미가 되었고, la grève 라고 하면 « 파업 » 이라는 보통 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레브 광장의 이름은 보통 명사 grève (모래사장) 로부터 왔습니다. 방금 말했듯, 빠리 시청은 쎈 강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 앞에는 파도가 몰아온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 모래밭 광장 (place de grève) » 이라 불리던 이 광장의 이름이 아예 고유 명사화 되어 « 그레브 광장 (place de Grève) » 이 되었습니다. place de Grève 라는 이름은 1806년까지 사용되다가, 그 때 이후로는 place de l'Hôtel de Ville (시청 광장) 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둑이 쌓이고 도로 포장이 되어, 강물과는 닿지 않고 모래나 자갈도 전혀 없는 광장이지요. 하지만 빠리-해변 철에는 일부러 모래를 깔아 해변처럼 만들기도 하고, 겨울에는 얼음을 깔아 스케이트 장으로 변모시키기도 합니다.

빠리 시청 (Hôtel de Ville de Paris)

mardi 23 octobre 2007

앙그르의 바이올린 (violon d'Ingres)

누운 오달리스크빠올로와 프란체스까 외에도 여러 대작을 남긴 앙그르 (Jean Dominique Ingres) 는 화가로 유명하지만, 그는 또한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평생 바이올린을 즐겨 연주했으며, 한동안은 아예 까삐똘 드 뚤루즈 국립 관현악단 (Orchestre national du Capitole de Toulouse) 의 단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문에 불어에는 violon d'Ingres 라는 숙어가 생겼습니다. 이 말은 « 본업 외에 매우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 취미, 장기 » 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 숙어입니다. 예를 들면,

- Tu as un violon d'Ingres ? = 너 앙그르의 바이올린 가지고 있니 ? = 너 취미가 뭐니 ?
- Mon violon d'Ingres est le jardinage = 내 앙그르의 바이올린은 [내 취미는] 정원가꾸기야.

물론 취미로 바이올린을 매우 잘 킨다면, Mon violon d'Ingres est le violon 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한가지만 잘하기도 힘든데, 앙그르 같은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

이 불어 표현에서 영감을 받아 만 레는 앙그르의 바이올린이라는 사진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Man Ray, Violon d'Ingres

자화상을 통해서 본 앙그르의 시대별 모습
Ingres, Autoportrait, 1804
Huile sur toile, 77 x 61 cm
Chantilly, musée Condé

Ingres, Autoportrait, 1835
Mine de plomb sur papier, 29,9 x 21,9 cm
Paris, musée du Louvre
Ingres, Autoportrait, 1859
Huile sur papier marouflé sur toile, 64,8 x 52 cm
Cambridge, Fogg Art Museum



Selon la lettre qu'Ingres adressa en 1855 à Émeran Forestié-Neveu :

« Sans être musicien, mon père, organisé comme il était, adorait la musique, chantait très bien avec une voix de ténor ; ce digne père m'apprit tout ce qu'il savait, même la musique, en me faisant apprendre à jouer du violon, et avec assez d'intelligence pour avoir été admis comme violon au grand théâtre de Toulouse où j'exécutais en public un concerto de Viotti avec succès. M. Lejeune, violon alors à Toulouse, ami de Rhode, me donnait des leçons. »

La lettre définitive, avec quelques variantes, est conservée aux Archives départementales de Tarn-et-Garonne (cote 2 E 611), et publiée par Henry LAPAUZE, dans Ingres, sa vie et son œuvre (1780-1867)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Imprimerie Georges Petit, 1911, p. 9-11. Mais nous la citons d'après Georges VIGNES, Ingres, Paris, Citadelles, Mazenod, 1995, p. 17. Intéressante est aussi la note de Vignes à propos du concerto de Viotti susmentionné (note 3, p. 321) :

« Au cours de la dernière soirée musicale qu'il donna chez lui, en janvier 1867, Ingres, par une sorte de prémonition, exprima comme un adieu à la vie le plaisir qu'il aurait eu à réentendre ce concerto, à savoir le vingt-deuxième, en la mineur. Huit ans plus tôt, il aurait confié à Théophile Silvestre (SILVESTRE, 1855, p. 5) l'avoir joué « en 1793, à l'époque de la mort du roi ». Pour MERSON (p. 8), ce fut même à l'occasion d'une fête donnée pour célébrer l'événement ! La mémoire d'Ingres semble ici défaillante, car ses activités musicales au théâtre du Capitole ne sont pas prouvées avant 1794. »

Bibliographie citée par Vigne :

- Olivier MERSON, Ingres, sa vie et ses œuvres, Paris, Hetzel, s. d. [peu après la mort d'Ingres].

- Théophile SILVESTRE, Histoire des artistes vivants - Études d'après nature - Ingres, Paris, E. Blanchard, 1855 (rééedition 1926 sous le titre Les Artistes français, Paris, G. Crès).

Autre passage de VIGNE, Ingres, Paris, 1995, p. 24 :
« ... on constate la présence du jeune homme [Ingres] comme second violon dans l'orchestre du Capitole de Toulouse à partir de 1794. Ces prestations musicales lui permettaient-elles de subvenir en partie à ses besoins ? Le peu d'aisance de sa famille le laisserait supposer. [...] Malheureusement, on ignore pratiquement tout du détail de ces quelques années toulousaines. Où habitait-il ? Vivait-il vraiment avec son père ? Mystère. »

samedi 15 septembre 2007

인도사람들 (Indiens)

아스떼릭쓰 만화에 등장하는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인도사람들의 이름에는 공통적인 어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발음과 표기를 이용한 말장난들임에는 변함이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그럴듯 합니다 : Cékouhaçà, Mercikhi, Kiçàh, Pourkoipàh...

우선 이들이 등장하는 알범의 제목부터가 말장난입니다. 아스떼릭쓰의 알범들 중에는 Astérix chez... 라는 제목을 가진 것들이 여러 권 있습니다. 예 : Astérix chez les Bretons (브르따뉴사람들을 만나러 간 아스떼릭쓰), Astérix chez les Belges (벨직사람들 틈의 아스떼릭쓰), etc. Astérix chez Rahãzade 도 마찬가지로, « 라아자드네 집에 간 아스떼릭쓰 » 라는 뜻인데, 이것은 Shéhérazade, 즉 천일야화 (Le Conte des mille et une nuits) 의 주인공의 이름과 비슷한 발음이 되게끔 유도한 것이지요. 또한 이 알범은 Le Compte des mille et une heures (천 한 시간의 계산) 이라는 부제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conte (이야기, 소설, 동화) 와 compte (셈, 계산) 의 발음이 같은 점을 이용한 말장난이지요. 이 알범에 등장하는 몇몇 인도인들 :



쎄꾸아싸 (Cékouhaçà) = C'est quoi, ça ? = « 이건 뭐야 ? » 인도의 라쟈 (rajah).

라아자드 (Rahãzade). 인도의 공주. 쎄꾸아싸의 딸. 그녀의 나라는 큰 가뭄을 겪고 있는데, 끼보알라에 의하면 천 한 시간 내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공주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 그림)

끼보알라 (Kiwoàlàh) = Qui voilà ? = « 거기 누구 ? » 쎄꾸아싸의 구루 (gourou). 라쟈의 자리를 탐내는 그는 라쟈의 유일한 상속녀인 라아자드를 제물로 바칠 음모를 꾸밉니다. (그림 =>)

메르씨끼 (Mercikhi ) = Merci, qui ? = « 누구한테 고맙다고 ? » 끼보알라의 파끼르 (fakir).


끼사 (Kiçàh) = Qui ça ? = « 누구 ? » 날으는 양탄자 운전사. 도움을 얻고자 아스떼릭쓰네 마을까지 양탄자를 타고 찾아옵니다.

끼싸가 운전하는 양탄자를 타고 인도를 향해 날아가는
(왼쪽부터) 아스떼릭쓰, 아쒸렁쓰뚜릭쓰, 이데픽쓰, 오벨릭쓰, 끼사.

쐬란 (Seurhàne) = sœur Anne = « 안 언니 ». 안 언니는 뻬로 (Charles Perrault) 의 동화 푸른 수염 (La Barbe bleue) 속의 한 등장인물로, 여주인공의 언니입니다. 이 동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푸른 수염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여주인공은 오빠들이 와서 구출해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탑 꼭대기 위에 올라가서 망을 보고 있는 언니에게 묻습니다 : « Anne, ma sœur Anne, ne vois-tu rien venir ? » (안, 나의 언니 안, 누가 오는 게 안 보여 ?) 상당히 유명한 이 문장은 라아자드를 만나러 간 아스떼릭쓰에서도 여주인공에 의해 반복됩니다. 즉,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골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라아자드 공주는 쐬란이라는 이름의 시녀 또는 유모 (언니가 아니라) 에게 같은 질문을 합니다. « Seurhàne, ma Seurhàne, ne vois-tu rien venir ? » (쐬란, 나의 쐬란, 누가 오는 게 안 보여 ?)

vendredi 7 septembre 2007

실존인물들 (personnages historiques)

프똘레메 왕조의 마지막 여왕, 끌레오빠트르 7세 (Cléopâtre VII)아스떼릭쓰 만화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한번은 쎄자르에게 화려한 궁전을 단 세 달 만에 완성시키겠다고 장담을 하는 바람에, 빠노라믹쓰의 마술약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또 아스떼릭쓰의 아들 (Le fils d'Astérix) 이라는 알범에서는 쎄자르와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를 아스떼릭쓰의 문 앞에 몰래 버리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아스떼릭쓰와 오벨릭쓰는 갑자기 아빠 노릇을 하게 되지요.

왼쪽부터,
아몽보피쓰, 아스떼릭쓰, 끌레오빠트르, 오벨릭쓰, 뉘메로비쓰


알범의 끝에서 이 아기의 정체는 프똘레메 16세 (Ptolémée XVI) 였던 것으로 드러나며, 나중에 에집트의 왕이 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역사적으로는 프똘레메 16세라는 에집트의 왕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쎄자르와 끌레오빠트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프똘레메 15세였으며, 그는 젊은 나이에 오귀스뜨 (Auguste) 에 의해 살해되었고, 오귀스뜨에게 패배당한 끌레오빠트르 역시 자살함으로써, 에집트는 독립적인 왕국의 지위를 잃고, 로마의 일개 지방이 됩니다 (기원전 31년).


그보다 이십여년 전에는 골 역시 로마에 합병되었는데, 그 성과를 이룬 사람이 바로 쥘 쎄자르 (Jules César), 또는 라띠나어로 가이우쓰 율리우쓰 까에싸르 (Caius Julius Caesar) 입니다. 그는 실제로 골의 북서부 끝 (현재의 브르따뉴 지방) 을 정복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아스떼릭쓰 만화의 무대는 바로 이 지역에 위치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기원전 51년에는 골 전체의 정복이 모두 끝이 났는데, 만화에서는 1년 뒤에도 아직 북서부 끝의 작은 마을 하나 만은 여전히 로마에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쎄자르는 만화의 첫권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등장하는데, 항상 골인들의 적수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그는 훌륭한 지도자로서 골인들의 존경을 받기도 하고, 그 역시 골 사람들 때문에 늘 골치를 앓기는 하지만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쎄자르의 골 정복에 큰 걸림돌이 되었던 사람은 베르쌍제또릭쓰 (Vercingétorix), 또는 라띠나어식 발음으로 웨르낀게또릭쓰였습니다. 그는 정복이 거의 끝난 기원전 52년 무렵, 골인들을 모아 로마인들에 반역을 시도했으며,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두었었으나, 결국은 항복하고 맙니다. 그는 로마로 끌려가 쎄자르의 승리기념품으로 로마인들에게 전시된 후, 로마의 감옥에서 죽습니다. 바로 아스떼릭쓰 만화에 영감을 준 이 역사적 인물은 첫권에 잠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편 브리따니아 사람들 사이에서 베르쌍제또릭쓰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꺄씨벨로노쓰 (Cassivellaunos), 또는 라띠나어식으로 까씨웰라우누쓰 (Cassivellaunus) 도 만화에 등장합니다. 쎄자르는 골과의 전쟁 중 브리따니아 섬 역시 두어번 공격했는데 (완전한 정복은 못하고), 이 때, 꺄씨벨로노쓰가 브리따니아의 쎌트인들을 이끌며 저항했었으나, 역시 항복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54년).

이렇게 로마의 영토를 넓히는데 크게 공헌한 쎄자르는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4년간의 내전 끝에 사실상 절대적인 권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로마가 공화국의 모습을 잃고 점점 더 개인 독재 왕국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에 반대하는 한 무리의 정치인들이 기원전 44년 3월 15일날 쎄자르를 살해하지요. 이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브뤼뛰쓰, 또는 라띠나어로 마르꾸스 유니우쓰 브루뚜쓰 (Marcus Junius Brutus) 는 쎄자르의 큰 신임을 얻었던 사람이며, 그의 친아들이라는 설도 많았던 사람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브뤼뛰쓰의 칼에 찔려 죽어가던 쎄자르가 « Tu quoque, filii » (Toi aussi, fils = 아들아, 너 마저도)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요.


브뤼뛰쓰도 아스떼릭쓰 만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데, 그 때마다 그는 칼 가지고 장난치다가 쎄자르에게 야단을 맞습니다. 그리고 번번이 쎄자르로부터 « Tu quoque, filii » 라는 말을 듣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요. 이 문장은 만화 속에서 번역되지 않고 항상 라띠나어로 말해집니다. 브뤼뛰쓰가 쎄자르의 새로 태어난 어린 아들 프똘레메 16세를 시기하여 그를 해치려 하므로, 끌레오빠트르는 아기를 아스떼릭쓰의 문 앞에 버립니다. 그녀 생각에 아기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아스떼릭쓰였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