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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dredi 23 octobre 2009

몽쁠리에 (Montpellier)

몽쁠리에에로 데빠르뜨멍의 수도 (chef-lieu) 이자, 렁그독-루씨용 (Langudoc-Roussillon) 지방의 수도이기도 한 프랑쓰 남부의 주요 도시입니다. 인구수로 볼 때도 프랑쓰에서 여덟번째로 큰 도시라고 합니다. 몽쁠리에는 바다와 접한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중해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1년 내내 따뜻한 편이고, 해가 항상 화창한, 즉 많은 프랑쓰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Montpellier 라는 도시명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몽쁠리에는 실제로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mont 이 « 산 » 을 뜻하는 것은 분명하나, pellier 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할 뿐입니다 : « 헐벗은 산 » (mont pelé), « 처녀들의 산 » (mons puellarum), 등등. 학술적으로 가장 진지하게 여겨지는 설은 « 자물쇠 산 » 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 도시의 라띠나어 이름은 Mons pestelarium 이었는데, 비록 이 pestelarium 의 의미가 명확치 않으나, pessulus « 자물쇠 » 와 관계있을 것이라는 가정이지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몽쁠리에는 실제로 주변 지역의 통행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Montpellier 에 관한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e 다음에 l 이 두 개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몽쁠리에] 라 발음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발음되려면 l 이 하나만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l 이 두 개라면 [몽뻴리에] 로 발음되어야 하구요. 사실 몽쁠리에의 원래 이름, 즉 옥어 이름은 [몬뻴리에] 로 발음되었습니다. 아마도 불어로 변환되면서 l 의 발음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쁠라쓰 들 라 꼬메디 (Place de la Comédie) 를 제외하면, 몽쁠리에에서 특별히 볼 것은 없고, 전반적으로 너무너무 예쁜 도시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살기에 상당히 쾌적해 보이는 곳이기는 합니다. 또 몽쁠리에는 중세부터 의대가 유명했는데, 지금까지도 몽쁠리에 1대학의 의학과는 큰 명성을 자랑합니다.

Place de la Comédie de Montpellier

mercredi 30 juillet 2008

몽마르트르 (Montmartre)

몽마르트르는 빠리 북쪽의 산 이름이자, 그 산을 둘러싸고 있는 동네의 이름입니다. 사실 산 (mont) 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 (butte, colline) 이지만, 땅이 매우 평평한 빠리에서는 어쨌거나 가장 높은 장소입니다. 물론 에펠탑 (Tour Eiffel) 이나 몽빠르나쓰 빌딩 (Tour Montparnasse) 같이, 인간이 세운 더 높은 건물들도 있지만, 자연 지형 중에서는 몽마르트르가 빠리의 최고 지점입니다. 그 정상에서부터 내려다보면 빠리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몽마르트르 정상에서 내려다 본 빠리
(vue sur Paris)

Montmartre 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빠리의 최초의 주교였던 성 드니가 3세기 무렵 이 언덕에서 순교를 당한 후 순교자의 산 (Mons martyrum)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이미 그보다 훨씬 이전 로마 시대부터 전쟁의 신 마르쓰에게 바쳐진 산 (Mons Martis) 이었다는 설입니다. 아마도 결국은 두 이름이 혼합되어 현대 불어의 Montmartre 로 발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몽마르트르가 빠리의 일부가 된 것은 그다지 오랜 일이 아닙니다. 1860년까지 몽마르트르는 빠리와는 별개의 독립된 도시로서, 그 때까지는 주민의 수도 적었고, 나무와 밭이 우거진 진짜 산 다운 산이었답니다. 지금은 집과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차서, 산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마르트르는 어딘가 모르게 시골스런 분위기가 납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성심 성당떼르트르 광장 (Place du Tertre) 정도만 보고 돌아가는데, 몽마르트르를 구석구석 걸으면서 둘러보면 매력적인 장소가 정말 많습니다. 이 때,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다녀도 나쁠 것은 없으나, 사실 좋은 안내책과 지도를 가지고 산책하는 것을 권합니다. 왜냐하면 좁은 골목길, 가파른 층계, 숨겨진 정원, 유명한 예술가들의 집, 등등은 사실 쉽게 눈에 띄지 않거든요.

몽마르트르의 여기저기

그런데 몽마르트르를 처음에는 우습게 보았다가도 이렇게 걸어다녀 보면 꽤 경사가 심한 산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면 몽마르트로뷔쓰 (Montmartrobus) 라는 버쓰를 타는 것도 좋습니다. 이 버쓰는 빠리의 일반 시내 버쓰와 똑같은데 다만 몽마르트르 산동네 만을 운행하는 노선입니다. 보통 버쓰나 지하철 타는 표를 한 장 내고 타거나, 아니면 정기권이 있는 사람들은 수십번 마음껏 탈 수 있습니다. 이 버쓰는 몽마르트르의 유명 관광지들은 물론, 꼬불꼬불하고 좁고 가파른 길들을 구석구석 돌아다니기 때문에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samedi 6 octobre 2007

베르가모 (Bergamo)

도니제띠의 출생지이자 사망지인 이딸리아의 베르가모는 매우 예쁜 도시입니다. 베르가모는 크게 두 구역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데, 낮은 도시 (città bassa) 는 평지 위에 넓게 펼쳐져 있으며, 낮은 도시로부터 퓌니뀔레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높은 도시 (città alta) 는 좁은 산등성이 위에 오밀조밀 응집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낮은 도시에도 의외의 매력이 있긴 하지만, 베르가모의 진짜 아름다움은 당연히 높은 도시에서 발견되지요. 여전히 성벽으로 둘러싸인 높은 도시에는 중세와 르네썽쓰 시대의 건물들로 가득하므로, 좁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돌길들을 거닐다 보면, 정말 다른 시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도니제띠의 무덤이 있는 싼따 마리아 마죠레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di Bergamo) 의 한 벽화.

싼따 마리아 마죠레 성당의 천장. 상대적으로 초라한 외부를 가진 이 성당의 내부는 휘황찬란한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싼따 마리아 마죠레의 측면과 꼴레오니 성당 (Cappella Colloni) 의 정면.

색깔돌을 사용한 꼴레오니 성당. 15세기에 베네치아를 위해 일했던 유명한 꼰도띠에로 (condottiero = 용병대장) 바르똘로메오 꼴레오니 (Bartolomeo Colleoni) 와 그의 딸 메데아 (Medea) 를 매장하기 위해 지은 꼴레오니 가문의 성당. 이 두 사람 외에 메데아가 사랑하던 새도 함께 묻혔다고 합니다.
빨라쪼 델라 라죠네. palazzo della ragione 라는 것은, 직역하면 « 이성, 판단의 궁전 » 이란 뜻으로, 사실은 중세 이딸리아 도시들에서 법원이나 시청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베르가모의 빨라쪼 델라 라죠네의 정면에는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달린 사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베르가모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말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은 덕에 베르가모는 크게 번영할 수 있었으며,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고 보존하는 데에도 베네치아의 역할이 컸습니다. 나뽈레옹의 침략으로 베르가모는 프랑쓰의 영토가 되었다가, 나뽈레옹의 퇴락 후에는 외스터라이히에 합병되었고, 1859년 이후로 이딸리아에 속하게 됩니다.

도시의 탑 (Torre civica) 또는 종탑 (Campanone).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이 종탑은 매일 22시마다 130번 울린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종소리를 신호로 높은 도시의 모든 문을 닫았습니다.
북서쪽 성벽 위. 높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여러 시대에 걸쳐 차차 건설되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은 베네치아의 지배 하에 16세기에 완성된 유적들입니다.

남쪽의 성벽으로부터 바라본 낮은 도시.
기타 기억이 가물가물한^^ 베르가모의 이곳저곳...

dimanche 2 septembre 2007

마느껜-삐쓰 (Manneken-Pis)

아스떼릭쓰오벨릭쓰를 반갑게 맞이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벨직의 농부 뵈따닉쓰에게는 아모니아크 (Amoniake) 라는 이름의 부인이 있습니다. 이 이름 역시 ammonic/ammoniaque 에 네덜란드어적 분위기를 준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여자 이름들은 -ke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일반 단어들에도 -ke 또는 -eke 라는 어미를 붙이면 축소형, 애칭형이 되기 때문입니다.

뵈따닉쓰와 아모니아크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의 이름은 마느껜 (Manneken) 입니다. 이 말은 « 사람, 남자 » 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Mann 에 축소형 어미를 붙인 것으로, « 소년, 꼬마 » 란 뜻이고, 만화 속의 이 꼬마는 브뤼쎌에 있는 유명한 마느껜-삐쓰 (Manneken-Pis = « 오줌싸개 꼬마 ») 와 꼭 닮은 외모를 갖고 있지요.

한편 마느껜과 혼동하지 말아야 할, 마느껜삑쓰 (Mannekenpix) 라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그는 벨직 출신의 요리사로, 그의 이름 역시 Manneken-Pis 로부터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나 기념물, 예술품 등이 실제로 가서 보면 생각보다 볼품 없는 경우들이 종종 있지만, 마느껜-삐스 만큼 허무한 경험은 개인적으로 정말 처음 해봤습니다. 이것은 저 뿐만 아니라 마느껜-삐쓰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견인 듯 싶습니다. 일단 동상 자체도 워낙 조그맣고 보잘 것 없지만, 그 주변 환경은 더 실망스럽습니다. 사실 별거 아닌 것도 포장과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동상은 한적한 주택가의 좁다란 골목길의 한쪽 귀퉁이에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채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지나칠 위험이 많습니다. 정확한 크기는 55,5 쎈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30쎈티도 안 되 보이며, 조각으로서의 예술적인 가치도 전혀 엿보이지 않는 이 동상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걸까요 ? 이건 제가 답을 알고 되묻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도대체 이해가 안 가서 묻는 질문입니다. 제가 읽은 관광 안내책에서는 이 동상이 나름대로 브뤼쎌 사람들의 도전적인 정신, 남들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으려는 독립성, 벨직인들 특유의 유머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여전히 완전히 설득이 되지는 않네요. ^^

제롬 뒤께느와 (Jérôme Duquesnoy) 라는 사람이 조각한 이 동상은 1619년에 처음 이 자리에 설치되었는데, 여러번 부숴지고, 망가지고, 도난당하곤 했답니다 (따라서 지금 길에 있는 상은 복제본). 가장 처음 당한 수난은 1747년 브뤼쎌을 침략한 프랑쓰 군대에 의해 팔 하나가 잘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사과를 하고자 루이 15세는 루이 15세 양식의 옷을 선사했다고 합니다. 마느껜-삐쓰에게 입힐 옷을 선사하는 것은 1698년 막씨밀리앙 드 바비에르 (Maximilien de Bavière) 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으며, 현대까지도 브뤼쎌을 방문하는 공식 사절단들은 브뤼쎌 시에게 마느껜-삐쓰의 옷을 선물하는 것이 전통이라네요. 따라서 마느껜-삐쓰는 각국의 전통 의상, 다양한 직업의 제복, 유명한 사람의 모방 등등, 750 점이 넘는 옷을 가지고 있으며, 이 옷들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그 근처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옷들은 단지 박물관에만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년 내내 이런저런 사건, 행사, 기념일들에 맞춰 마느껜-삐쓰에게 입혀집니다. 어떤 옷을 언제 입힐까를 정하는 위원회가 있으며, 옷입히는 것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공식 옷입히는 사람 (habilleur officiel) 도 있다지요. 또 비록 드물지만, 특별한 행사 때는 물 대신 맥주를 오줌으로 나오게 하기도 한다는데, 옛날에는 훨씬 더 그런 기회가 잦았고, 심지어 렁빅, 또는 포도주, 꿀물 등을 나오게 하여, 사람들은 직접 이 오줌싸개로부터 음료수를 받아마셨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과연 그러는 사람들이 있을까 ?)

한복을 입은 마느껜-삐쓰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발견한 건데, 어떤 분이 구경을 갔다가, 근처의 기념품 가게에서,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힌 카드 놀이를 보고서, 그 카드를 사진으로 찍은 것이라 합니다.)

한편 브뤼쎌에는 마느껜-삐쓰 외에 Jeanneke-Pis (오줌싸개 소녀) Zinneke-Pis (오줌싸개 강아지) 도 있는데, 이 둘은 모두 최근에 관광 목적으로 설치한 조각들로, 오줌싸개 꼬마보다도 더 볼 가치가 없는 동상들입니다. 왜 브뤼쎌은 오줌에 이렇게 연연해 하는 것일까요 ?

vendredi 20 avril 2007

리골레또 (Rigoletto) 와 만또바 (Mantova)

베르디의 또다른 오뻬라 리골레또 역시 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쓰는데 (라 트라비아따처럼), 이것은 고유 명사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말은 실제 인명이 아니고 광대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뜻은 « 웃긴 녀석 » 정도 ? 그리고 rigoletto 는 이딸리아에는 없는 말로, 불어의 rigoler 동사를 변형시켜 만든 말입니다.

rigoler 의 어원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rireriole 이 만나서 생긴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하고들 있습니다. rire 는 현재 불어에서도 널리 쓰이는 « 웃다 » 라는 뜻의 동사이고, riole 은 지금은 사라진 옛 불어로, « 장난, 즐거움, 놀이판, 난장판 » 등의 뜻이었습니다. rire 가 보다 넓은 의미, 중립적 의미에서 « 웃다 » 라면, rigoler 는 « 깔깔거리다, 히죽거리다, 즐거워하다, 장난치다, 농담하다, 비웃다 » 등등의 뜻이 있지요.

Rigoletto 의 대본은 역시 삐아베가 썼는데, 그가 주인공의 이름을 불어에서 찾은 것은, 이 오뻬라의 원작이 프랑쓰의 희곡이었기 때문입니다 : 빅또르 위고의 왕이 즐거워하다 (Le roi s'amuse). 원작에서는 무대가 프렁쓰와 1세의 궁정이었고, 주인공의 이름은 트리불레 (Triboulet) 였습니다.

그런데 트리불레는 실존 인물로서 루이 12세와 프렁쓰와 1세, 두 왕을 섬기며 르네썽쓰 시대를 살았던 광대였습니다. 트리불레라는 이름은 궁정에서 붙여준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정확치는 않지만, Ferrial 또는 Févrial 또는 Le Févrial 또는 Le Feurail 였답니다. 원래는 농부였는데, 특이한 외모와 뛰어난 재치 덕에 유명해져서 심지어 왕의 눈에까지 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는 몇몇 일화들을 빼고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왕이 즐거워하다 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순전히 위고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은 초연 (1832년 11월 22일) 다음날로 즉시 공연 금지되었습니다, 왕정을 모욕했다는 핑계 하에. 그리고 이 금지는 오십여년 뒤에나 풀렸답니다.

1851년에 삐아베와 베르디가 이 희곡을 오뻬라로 만들려 했을 때도 역시 외스터라이히 제국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무대를 만또바로 옮겼다지요 (당시에 이미 만또바 공국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프렁쓰와 1세는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만또바의 공작으로 바뀌었구요.

Gilda 역시 원작에서는 Blanche 라는 이름이었고, 질다를 죽이는 Sparafucile 는 Saltabadil 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프랑쓰 이름 Saltabadil 이 별다른 뜻이 없는데 비해, Sparafucile 는 번역이 가능한 이름입니다. sparare (= 쏘다) 의 3인칭 현재 + fucile (= 총). 게다가 그의 직업이 청부살인자니, 아주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그가 질다를 죽일 때, 총이 아니라 칼로 죽이는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아무튼 죽은 블렁슈/질다를 원작에서는 쎈 강에다 던지려 하는데, 오뻬라에서는 당연히 민치오 강에 던지려 합니다.

민치오 (Mincio) 강은 뽀 강으로 합류되기 전에 만또바에 세 개의 호수를 주었습니다. 이 호수들은 특별한 이름은 없고, 그저 물결의 흐름에 따라, Lago superiore (윗 호수), Lago di mezzo (중간 호수), Lago inferiore (아래 호수) 라 불립니다. 중간 호수와 아래 호수가 만나는 지점에 유명한 만또바 공작의 궁이 있습니다.

Palazzo ducale di Mantova = Palais ducal de Mantoue

이 중세 풍의 외모를 지닌 궁은 밖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워낙 꼬불꼬불하고 복잡하여, 흔히 이딸리아말로 città-palazzo (도시-궁) 라고 부른답니다. 안에는 공중 정원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정원들이 있고, 본궁 외에도 중세의 요새였던 성 죠르죠 성과 특별히 음악적인 이유 때문에 지어진 성녀 바르바라 궁정 성당 (Basilica palatina di S. Barbara) 등 여러 건물들이 있습니다.

Castello di S. Giorgio = Château de St. Georges

실내 대부분은 안드레아 만떼냐 (Andrea Mantegna) 와 삐자넬로 (Pisanello) 에 의해 장식되었는데, 특히 만떼냐가 벽화를 그린 부부의 방은 매우 유명합니다.

Camera degli sposi = Chambre des époux

여기서 부부란 루도비꼬 3세 곤자가 (Ludovico III Gonzaga) 와 그의 부인 바르바라 디 브란데부르고 (Barbara di Brandeburgo) 를 말합니다. 호헨졸레른 (Hohenzollern) 가문의 이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루도비꼬 3세는 당시까지 별볼일 없던 만또바를 밀라노와 베네치아에 버금가는 위치로 올리고, 그 후로 4세기 동안 지속될 화려한 시대의 막을 열지요.

부부의 방 내부 북쪽 벽화. 왼쪽에 앉아 있는 두 남녀가 루도비꼬와 바르바라

또 현재 남아있는 오뻬라들 중 가장 오래된 오뻬라인 몬떼베르디 (Claudio Monteverdi) 의 오르페오 (L'Orfeo) 가 1607년 초연된 곳도 이 궁이었습니다. 그리고 80년대에 졍-삐에르 뽀넬 (Jean-Pierre Ponnelle) 이 연출한 오뻬라-영화 리골레또는 모든 장면이 실제로 만또바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공작의 궁 외에도 떼 궁전 (Palazzo di Tè) 등, 만또바의 유적지들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관광용으로나 보면 모를까, 연출 자체는 뽀넬답게 무척 지루합니다.)

dimanche 25 mars 2007

아르꺄바쓰 (Arcabas)

그렁드-샤르트르즈 수도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쌍-삐에르-드-샤르트르즈 (Saint-Pierre-de-Chartreuse) 라는 산속 마을이 있는데, 여기에 쌍-뛰그-드-샤르트르즈 (Saint-Hugues-de-Chartreuse) 라는 자그마한 성당이 있습니다. 이 보잘것 없어 보이는 성당의 특별한 점이라면, 내부가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예술가에 의해서 장식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르꺄바쓰라는 화가가 그 사람인데, 성당의 모든 벽이 이 사람의 그림으로 뒤덮혀 있으며, 그 외에도 조각품, 십자가, 미사에 쓰이는 용품들, 색깔유리창 등, 성당 안의 모든 것이 이 사람의 작품입니다. 마치 미깰란젤로가 씩스띤 성당을 장식한 것과 비슷하죠. 물론 그 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고, 그림의 양식도 다르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아르꺄바쓰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그 사람의 개인 박물관에 와 있는 느낌을 줍니다.

졍-마리 삐로 (Jean-Marie Pirot) 라는 본명을 가진 화가 아르꺄바쓰는 태어나기는 메쓰 (Metz) 에서 태어났지만, 그르노블에서 미술 공부를 했으며, 계속 도피네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현재도 쌍-삐에르-드-샤르트르즈에서 살고 있지요. 20년대 쯤 태어난 사람이라 현재 나이는 무척 많습니다. 성-위그 성당 외에도 한 건물이나 장소 전체를 모두 장식하는 대규모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하니까 좋은 점이, 달랑 유명한 그림 한두 편만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가의 전반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림을 잘 감상할 줄 모르지만, 이 사람의 그림은 많이 애착이 갑니다. 소박한 듯 하면서도 화사하고,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종교적인 주제를 자주 다루지만 엄숙하지 않고, 순진해 보이지만 심오함이 숨어있고, 심오하지만 소박하고...

성 위그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그의 몇몇 대표작들 :

Ange dubitatif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의 천사)
Ange espiègle (장난꾸러기 천사)
Anges chantant (노래하는 천사들)
La Brebis retrouvée (되찾은 양)
Le Bon Pasteur (착한 목자)

Nolite timere (놀리떼 띠메레)



제가 개인적으로 유난히 좋아하는 작품은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의 천사와 놀리떼 띠메레입니다. 천사라면 인간들보다 훨씬 더 확신에 찬 존재일 듯 싶은데, 이 천사는 안그런것 같죠 ? 다른 천사들은 자전거를 타면서 장난을 치거나,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열중해 있는데, 이 천사는 뭔가 못믿겠다, 왜 그럴까 하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갸우뚱 앉아 있는 것이 재밌습니다. 그리고 놀리떼 띠메레는 마치 이 천사와도 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인 것 같습니다. Nolite timere = 라띠나어로 « 겁내지 마세요 ». 하지만 그 표지판을 들고 있는 소년, 또는 천사, 또는 예수 (?) 도 웬지 별로 자신있어 보이는 표정이 아니죠 ?

그래서 겁내지 말고 살아야 할텐데... 사실 의심이 많이 듭니다...

도피네 여행 (voyage en Dauphiné)

도피네 (Dauphiné) 프랑쓰의 남동부에 위치한 옛 지방으로, 현재는 대략 싸브와 (Savoie) 남쪽, 프로벙쓰 (Provence) 북쪽, 리용 (Lyon) 의 동쪽, 이딸리아의 서쪽에 해당합니다.

  • 비엔 (Vienne) : 비엔은 로마 시대때부터 크게 발전했던 도시로, 지금도 로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얼마 전에도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중세에는 도피네 지방의 수도와도 같이 여겨졌구요. 하지만 점차 중심지가 그르노블로 옮겨졌습니다.
  • 그르노블 (Grenoble) : 그르노블은 도피네와 그 근방 지역에서 제일 대도시이긴 한데, 사실 별로 볼 건 없습니다. 사방이 산 (Alpes) 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여름엔 무지 덥고 겨울엔 무지 춥습니다. 60년대에 겨울 올림픽을 주최한 적도 있듯이, 주변 산들에는 겨울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답답한 느낌을 주는 도시입니다. 산 때문에, 그리고 고풍적이기 보다는 비교적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 때문에, 웬지 한국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 그르노블의 바스띠으 (Bastille de Grenoble) : 바스띠으 하면 흔히 빠리에 있던 감옥을 생각하는데, 사실 이 말은 « 요새, 성곽 » 이란 뜻일 뿐입니다. 그르노블에도 바스띠으라 불리는 옛 요새의 흔적이 북쪽 산 중턱에 남아 있는데, 여기 올라가면 도시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올라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 (téléphérique) 를 타지요 (물론 힘이 넘치는 사람들은 걸어서 갈런지 모르겠으나). 동그랗게 생긴 이 케이블카가 볼 것 없는 그르노블의 그나마 자랑거리입니다. 모두 그르노블에서 촬영된 뤼꺄 벨보의 삼부작 (La Trilogie de Lucas Belvaux) 을 보면 동그란 케이블카를 비롯하여 그르노블과 그 주변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르노블의 케이블카
  • 베르꼬르 (Vercors) : 그르노블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 베르꼬르는 매우 가파르고 험한 산입니다. 찻길이 깔려 있는데, 낭떠러지 바로 옆으로 달리고, 매우 좁고 꼬불꼬불해서 상당히 무섭습니다. 2차대전 때는 그래서 저항자들의 요지로 쓰이기도 했지요. 물론 독일군의 비행 습격에 모두 처참하게 죽었지만... 바다의 침묵 (Le Silence de la mer) 을 쓴 작가 베르꼬르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본명은 Jean Bruller). 바다의 침묵은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착한 독일군 장교와 한 프랑쓰 여자 사이에 의사소통의 불가능을 주제로 한 짤막한 소설입니다.
가파른 베르꼬르
  • 그렁드-샤르트르즈 (Grande-Chartreuse) : 역시 그르노블을 둘러싸고 있는 큰 산맥 중 하나인 샤르트르즈에 그렁드-샤르트르즈라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샤르트르회 (ordre des Chartreux) 의 본원으로서, 전세계의 샤르트르회 수도원들은 모두 여기서 퍼져 나갔지요.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곳이 빠르마의 샤르트르즈 (이딸리아어로 Certosa di Parma). 스땅달이 여기를 무대로 La Chartreuse de Parme 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지요. 그런데 우연이랄까, 스땅달은 바로 그르노블 출신의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르노블 보다는 이딸리아를 훨씬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 ? ^^) 또다른 유명한 샤르트르즈 수도원은 역시 이딸리아의 빠비아 근방에 있지요 (Certosa di Pavia). 작년 이맘쯤 빠비아의 코앞까지 갔었는데 그만 못보고 왔습니다. 프랑쓰 본원의 샤르트르회 수사들은 수백년 전부터 자기네들만의 비밀 기법으로 샤르트르즈 (chartreuse) 라 불리는 술을 만들어 팝니다. 약초와 향료 따위를 수백가지 섞는다고 하는데, 샤르트르회 수사들이라고 해도 재료의 비밀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극히 적은 수의 수사들만 알고 있다고 합니다. 초록빛이 나는 술로 매우 독하다고 합니다.
그렁드-샤르트르즈
  • 슈발 우체부의 이상적인 궁전 (Palais idéal du facteur Cheval) : 오뜨리브 (Hauterives) 라는, 그르노블보다 남쪽에 있는 작은 시골 도시에 페르디넝 슈발 (Ferdinand Cheval) 이라는 사람이 20세기 초까지 살았었습니다. 그는 직업이 우체부였는데, 매일 같이 편지를 나르면서 돌을 하나씩 주워 날라 거의 사십년에 걸쳐 오로지 혼자 힘으로, 궁전 하나를 지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 이 특이한 건축물은 니끼 드 쌍-팔 (Niki de Saint-Phalle) 에게 큰 영감을 주어, 그녀도 자신의 이상적인 궁전이라 할 수 있는 따로의 정원 (Jardin des Tarots) 을 건설하게 됩니다.
슈발 우체부의 이상적인 궁전
  • 쌍-베렁 (Saint-Véran) : 도피네 지방의 남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도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