떵쁠회의 마지막 수장 (grand maître) 이었던 쟉 드 몰레 (Jacques de Molay) 는 동료 몇몇과 함께 1314년 3월 18일 억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빠리의 노트르 담 앞마당에 마련되었던 화형대에서 불길에 휩싸여 죽어가며 쟉 드 몰레가 떵쁠회를 파탄으로 몰아 넣은 프랑쓰의 왕 필립 4세 르 벨과 이것이 모함임을 알면서도 도와 주지 않은 교황 끌레멍 5세를 저주했다고 합니다. 매우 놀랍게도, 쟉 드 몰레가 죽은지 꼭 한 달 만에, 즉 4월 19일 밤에, 교황 끌레멍 5세가 죽습니다. 또한 같은 해 11월 20일에 필립 4세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합니다.
또한 쟉 드 몰레는 필립 4세 뿐 아니라, 그 자손 대대로에게까지 화가 있으리라 예언했다고 하는데, 프랑쓰 왕위를 이은 필립의 큰 아들 루이 10세 르 위땅 (Louis X le Hutin) 이 2년 만에 갑작스럽게 죽고 맙니다. 루이 10세의 아들 졍 1세 (Jean Ier) 는 이미 루이 10세가 죽은 후 태어났기에, 태어나면서부터 프랑쓰의 왕위에 올랐으나, 5일 만에 숨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졍 1세의 삼촌이자, 루이 10세의 동생, 즉 필립 4세의 둘째 아들이 필립 5세 (Philippe V) 라는 이름으로 왕이 됩니다. 그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하여 여자들이 왕위를 잇지 못하게 하는 쌀릭법을 제정하기도 하였지만, 5년간의 통치 끝에 딸만 넷을 남긴 채 죽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후손 중 어느 누구도 왕위를 잇지 못하고 대신 동생, 즉 필립 4세의 셋째 아들인 샤를 4세 (Charles IV) 가 왕위에 오르지만, 그 역시 6년의 통치 후 아무 자식 없이 죽습니다. 이로써 필립 4세의 세 아들은 모두 왕위에 올랐지만 모두 비교적 단기간 내에 죽었으며, 이상하게도 아들만 왕이 될 수 있다는 법을 정한 후부터 아들은 전혀 태어나지 않아, 꺄뻬씨앙 (Capétiens) 직계 왕조는 프랑쓰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그 와중에 세 왕의 부인들, 즉 각각 마르그릿 드 부르고뉴 (Marguerite de Bourgogne), 쟌 드 부르고뉴 (Jeanne de Bourgogne), 그리고 블렁슈 드 부르고뉴 (Blanche de Bourgogne) 가 합동으로 젊은 귀족들을 끌어 들여 간통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이 세 왕비들은 모두 삭발을 당한 채 감금되어 살다가 처참하게 죽고 맙니다. 실제로 쟉 드 몰레가 화형대에서 저주를 내뱉었는지는 전혀 확인할 수 없으며, 이렇게 프랑쓰 왕가에 닥친 일련의 불운한 사건들이 훗날 사람들에게 그러한 저주가 있었다고 상상을 하게 한 듯 싶습니다. 특히 모리쓰 드뤼옹 (Maurice Druon, 1918-2009) 의 소설 저주받은 왕들 (Les Rois maudits) 이후로 이 사건은 매우 대중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총 일곱 권의 대하소설인 이 연작은 프랑쓰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었고, 텔레비젼 씨리즈로도 두 차례나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1972, 2005).
꺄뻬씨앙의 직계 후손이 끊긴 이후, 프랑쓰의 왕권을 두고 많은 논란이 오고 간 후, 결국은 사촌 가문인 발르와 왕조의 필립 6세 (Philippe VI de Valois) 가 왕이 되는데, 이것을 시비 삼아 영국에서 프랑쓰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백여년간이나 지속되었으니, 정말로 쟉 드 몰레의 저주가 있었다면 아주 지독하고 긴 저주임에는 분명합니다. 백년 전쟁 말기가 되어서야 겨우 하늘에서 보냈다는 쟌 다르크 (Jeann d'Arc) 가 나타나 프랑쓰를 구원하지요. 그런데 쟌 다르크도 충실히 섬겼던 프랑쓰 왕의 버림을 받고, 모함에 몰려, 조작된 증거물들로 꾸며진 거짓 재판을 받은 후, 이단자로 낙인 찍혀 화형대에서 죽습니다. 백여년 전 쟉 드 몰레와 매우 비슷한 운명을 겪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