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dredi 30 novembre 2007

울리뽀 (OuLiPo)

실종 (La Disparition) 이나 돌아온 여자들 (Les Revenentes) 같은 특이한 작품은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만 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울리뽀의 일원이었는데, 이 문학 모임의 회원들은 모두 형식적 구속을 받는 작품들을 쓰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OuLiPo 라는 말은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잠재적 문학의 작업장) 의 첫자들을 따서 만들어진 말로, 1960년, 작가 레몽 끄노 (Raymond Queneau) 와 수학자 프렁쓰와 르 리요네 (François Le Lionnais) 에 의해 창설된 후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문학 운동입니다. 그 회원은 oulipien 이라 불리는데, 유명한 울리삐앙으로는 두 창설자를 비롯하여 죠르쥬 뻬렉, 이딸로 깔비노 (Italo Calvino), 쟉 루보 (Jacques Roubaud), 베르나르 쎄르낄리니 (Bernard Cerquiglini) 같은 작가, 수학자, 언어학자 등을 꼽을 수 있지만, 그외에도 대중적으로 덜 유명한 사람들도 있고, 몇몇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인 수는 창설 이래 지금까지 총 서른명 정도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울리삐앙의 목록. 이들 중 일부는 이제 죽고 없지만, 울리뽀는 일단 가입하면 절대 탈퇴가 안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들도 여전히 회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기 모임에 나오지 않아도 너그러이 용서해 준다는군요.^^

울리삐앙들은 모두 특이한 형식, 말장난, 수학 공식, 복잡한 틀 등을 적용시킨 문학 작품을 쓰는 것을 즐깁니다. 그들은 이러한 구속이 더욱 상상력을 발휘시킨다고 생각하며, 형식적 제한을 받으면서도 내용이 제대로 성립되는 글을 쓰는 것을 문학적 도전으로 삼습니다.

울리뽀는 여러 비슷한 모임을 낳았습니다. 예를 들면,
  • 울리뽀뽀 (OuLiPoPo) = Ouvoir de Littérature Policière Potentielle = 잠재적 추리 문학의 작업장
  • 우빵뽀 (OuPeinPo) = Ouvoir de Peinture Potentielle = 잠재적 미술의 작업장
  • 우트라뽀 (OuTraPo) = Ouvoir de Tragicomédie Potentielle = 잠재적 희비극의 작업장

그외에도,

  • 우뮈뽀 (OuMuPo) = Musique = 음악
  • 울리트라뮈뽀 = OuLiTraMuPo = Littérature Traduite en Musique = 음악으로 번역된 문학
  • 우바뽀 (OuBaPo) = Bande dessinée = 만화
  • 우그라뽀 (OuGraPo) = Grammaire = 문법
  • 우이스뽀 (OuHisPo) = Histoire = 역사
  • 우마뽀 (OuMaPo) = Marionnette = 인형극
  • 우포뽀 (OuPhoPo) = Photographie = 사진
  • 우씨뽀 (OuCiPo) = Cinématographie = 영화
  • 우라뽀 (OuRaPo) = Radio = 라디오
  • 우앙뽀 (OuInPo) = Informatique = 컴퓨터
  • 우뽈뽀 (OuPolPo) = Politique = 정치
  • 우뀌이뽀 (OuCuiPo) = Cuisine = 요리
  • 우쟈뽀 (OuJaPo) = Jardinage = 정원가꾸기
등등.

그리고 이 모든 모임들을 통칭하여 우익쓰뽀 (OuXPo) 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X 는 변수로서, 위에서 보다시피 각 분야의 첫음절로 대치되는 것이지요.

mercredi 28 novembre 2007

돌아온 여자들 또는 글자들 (Les Revenentes)

글자 e 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완성한 소설, 실종 (La Disparition) 으로부터 몇 년 뒤 (1972), 뻬렉 (Georges Perec) 은 자신이 e 에게 부당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여, 이번엔 오로지 e 만 사용한 소설을 썼습니다. 즉, a 도, i 도, o 도, u 도, 이 소설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y 은 반모음/반자음이기 때문에, 드물게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돌아온 여자들. 실종처럼 제목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 하나는 소설의 내용에 등장하는 오랫만에 돌아온 여자들을 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e 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 글자 » 는 LA lettre, 즉 여성이기 때문에). 그 시작의 일부 :

Telles des chèvres en détresse, sept Mercedes-Benz vertes, les fenêtres crêpées de reps grège, descendent lentement West End Street et prennent sénestrement Temple Street vers les vertes venelles semées de hêtres et de frênes près desqelles se dresse, svelte et empesé en même temps, l'Évêché d'Exeter. Près de l'entrée des thermes, des gens s'empressent. Qels secrets recèlent ces fenêtres scellées ?

역시나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뻬렉이 간혹 편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발음만 같으면 글자를 바꾸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단 제목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원래 정확한 철자대로 쓰자면 Les Revenantes 여야 하는데 이것을 Les Revenentes 로 바꾼 것이지요. 발음은 두 경우 모두 [레 르브넝뜨] 라고 되기 때문. 그 외에도 위의 예문에서도 보면, desqelles 과 qels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들도 원래는 각각 desquelles 과 quels 이어야 합니다. 다른 서양 언어들에서도 비슷하지만, 불어에서도 u 가 뒤따르지 않는 q 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런데 불어에서는 qu 가 들어가는 단어가 매우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기를 약호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종에 비해서는 반 밖에 안되는 부피이지만 (140쪽), 그래도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엔 글자 하나가 아니고 네 개나 뺏으니까요 !

mardi 27 novembre 2007

출현 (apparition)

e 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쓰여진 뻬렉의 소설 실종 (La Disparition) 은 간혹 좀 특이한 단어나 잘 안쓰는 표현들이 억지스럽게 나오는 감도 없지 않으나,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매우 유연하게 쓰여져, 읽다 보면 어느새 e 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그저 보통 책처럼 자연스럽게 읽지 않고, 눈에 불을 키고 e 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장난기 많은 뻬렉이 몰래 e 를 하나 숨겨두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의도적이 아니었더라도 실수로 e 가 들어간 말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들이 이 책과 뻬렉에 대한 관심이 넘쳐난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인지, 아무튼 이 실종된 e 찾기는 1969년 책이 출판된 이후, 세대를 넘어 가면서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고, 사람들은 뻬렉의 천재성에 감탄하거나, 아니면 순전히 무의미한 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2003 년에 드디어 e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해 4월에 걀리마르 (Gallimard) 사에서 재판되어 나온 실종 의 119 쪽, 위에서 네번째 줄, 왼쪽에서 두번째 단어에 분명히 e 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 이 네번째 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

« Booz dorme non loin du grain qu'on amassait »
(보즈는 우리가 줍던 곡식알 가까에서 잔다)

그런데 여기서 이 dorme 라는 단어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dormir (잠자다) 라는 동사가 접속법 현재 3인칭 단수로 쓰인 것인데, 문맥과 문장 구조상 여기서는 접속법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의 조사에 나선 뻬렉의 추종자들은 원문은 dormait 라고, 즉 e 가 없는 형태라고 주장했습니다. dormait 는 dormir 동사의 직설법 반과거 3인칭 단수로, 해석은 « 자고 있었다 » 가 되며, 그래야 문맥에도 맞고 문법에도 맞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전 판본들을 보아도 쉽게 확인되는 것이고, 심지어 2003년 재판되어 나온 책들 중에도 dormait 라고, 원문대로 잘 찍혀 있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즉, 재판본들 중에서도 일부 권수에만 오자가 난 것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 실수, 장난, 기적 ? 우선, 현대의 인쇄 기술상 이런 식의 실수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고의적인 장난일 확률이 가장 많은데, 사람들은 제일 먼저 걀리마르 출판사를 의심했습니다. 일부러 이런 소란을 일으켜서 책을 많이 팔고자 하는 속셈 아닐까 하는 것이죠. 그런데 걀리마르사는 이 사건에 대해 정말로 놀라면서, 그러한 상업적 계획이 없음을 진심으로 맹세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인쇄소에 의심이 돌아갔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이야 어디서 왔건, 실질적으로는 인쇄 과정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잘 돌아가고 있던 기계를 잠시 멈추고, 문제의 글자를 바꿔 놓은 다음, 다시 기계를 돌리다가, 또 슬쩍 멈추고는, 글자를 다시 원래대로 수정해 놓고는 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이지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인쇄소 직원인지, 아니면 출판사 직원인지, 아니면 몰래 침입한 제 삼 자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혼자 생각으로 저지른 일인지, 출판사에서 내려온 비밀 방침을 따른 것인지, 등등은 정말로 심각하고 본격적인 수사가 있어야 밝혀질 수 있는 문제였는데, 아무도 그렇게까지 파해칠 마음은 없었나 봅니다. 대신 출판사는 오자가 난 판본들을 가능한 한 모두 거둬들여 파본시키기로 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일하게 e 가 찍힌 실종 판은 모두가 찾아 헤매는 희귀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책의 본문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거의 의식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책의 표지에 e 가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바로 저자의 이름 중에 : Georges Perec. 게다가 이 책은 imaginaire 라는 이름의 총서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까지 치면 다섯 번이나 등장하는 셈입니다. (옆에 그림에는 제목이 안 보이는데, 제목이 흰색 바탕에 흰색 글자로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책을 손에 들고 봐도 잘 안 보입니다.)

lundi 26 novembre 2007

실종 (La Disparition)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1936-1982) 은 대회문 (Le Grand Palindrome) 을 비롯하여 특이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실종 (La Disparition, 1969)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실종된 인물을 찾는 일종의 탐정-추리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책의 제목에는 또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름아닌 글자 e 의 실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 삼백여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단 한번도 e 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문장들에서 e 자만 빼고 인쇄한 것이 아니라, e 가 들어있는 단어 자체를 작가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서양 언어에서나 e 라는 모음은 많이 쓰이겠지만, 불어에는 유난히 e 가 들어간 단어가 많습니다. 그리고 e 는 문법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애초에는 e 가 없던 단어에도, e 를 첨가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동사의 시제를 변화시킬 때, 발음을 구별해야 할 때, 여성형을 만들 때, 등등. 따라서 e 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휘의 선택과 활용을 극도로 제한하겠다고 작가가 스스로에게 구속을 거는 것입니다. 뻬렉은 이러한 형식적인 틀에 구속을 받으면서도 내용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을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다음은 그 중 한 문단 :
Il fut bon pour l'oto-rhino, un gars jovial, au poil ras, aux longs favoris roux, portant lorgnons, papillon gris à pois blancs, fumant un cigarillo qui puait l'alcool. L'oto-rhino prit son pouls, l'ausculta, introduisit un miroir rond sous son palais, tripota son pavillon, farfouilla son tympan, malaxa son larynx, son naso-pharynx, son sinus droit, sa cloison. L'oto-rhino faisait du bon travail, mais il sifflotait durant l'auscultation ; ça finit par aigrir Anton.

보다시피 e 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한 문단만 해도 정말 대단해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삼백쪽이나 계속되니, 그저 놀랍고 신기할 수 밖에 ! 어떻게 e 를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도 이리 교묘하게 문장을 만들어 나갈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따름입니다.

dimanche 25 novembre 2007

회문 (palindrome)

그리쓰어에서 온 접두사 palin- 은 « 다시 »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접두사는 불어에 별로 많은 어휘를 낳지는 않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단어 하나는 palimpseste. palin- + psân (긁다) 이라는 동사의 과거분사로 구성된 이 말은 « 다시 긁어낸 (필사본) » 이라는 뜻.

또다른 잘 알려진 단어로 palindrome 이 있습니다. palin- + drome 으로 구성된 이 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은 다음,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다시 읽어도 똑같은 형태와 의미를 유지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지칭합니다. 방금 달려온 길을 거꾸로 다시 (palin) 달려가는 (drome) 행위에 비유한 것이지요. 불한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 회문 » 이라고 한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아마도 회전하는 문장이라는 뜻인 듯.

회문은 그저 개별적인 단어일 수도 있지만 (예 : ressasser, Éve), 대개는 짤막한 문장들입니다 :

À l'étape épate-la. (그 단계에서 그녀를 놀래켜라.)
Eh ! ça va, la vache ? (야, 암소는 잘 지내냐 ?)
L'ami naturel ? le rut animal. (자연스런 친구 ? 동물적인 발정.)

이 세 빨랑드롬은 말장난을 좋아했던 프랑쓰의 작가 루이즈 드 빌모랑 (Louise de Vilmorin, 1902-1969) 의 창작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또 벨직의 작가 루이 스뀌뜨네르 (Louis Scutenaire, 1905-1987) 의 회문 하나 :

La mère Gide digère mal. (지드 할멈은 소화를 잘 못시킨다.)

특이한 작품을 많이 쓴 프랑쓰의 작가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1936-1982) 은 1969년에 Le Grand Palindrome 이라는 제목의, 엄청나게 긴 회문을 발표했습니다. 1247 개의 단어와 5566 글자로 구성된 이 문장은 아마도 가장 긴 (최소한 불어로 된 것들 중에서는) 빨랑드롬일 것입니다. 그 시작과 끝 :

Trace l'inégal palindrome. Neige. Bagatelle, dira Hercule. Le brut repentir, cet écrit né Perec. L'arc lu pèse trop, lis à vice-versa. Perte. Cerise d'une vérité banale, le Mälstrom, Alep, mort édulcoré, crêpe porté de ce désir brisé d'un iota...

...à toi, nu désir brisé, décédé, trope percé, roc lu. Détrompe-la. Morts : l'Âme, l'Élan abêti, revenu. Désire ce trépas rêvé : Ci va ! S'il porte, sépulcral, ce repentir, cet écrit ne perturbe le lucre : haridelle, ta gabegie ne mord ni la plage ni l'écart.

전문을 감상하려면 여기로.

samedi 24 novembre 2007

양피지 (parchemin)

베르가못에 이름을 준 베르가마 시는 서양 문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또다른 물체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 parchemin. 우리말로 « 양피지 » 라고도 번역하는 빠르슈망은 꼭 양 뿐만 아니라, 소, 염소, 송아지, 돼지 등의 가죽에 필요한 처리를 가해 종이처럼 사용하던 재질입니다.

언뜻 보면 parchemin 과 Bergama 두 단어 사이에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베르가마의 옛 이름은 불어로 Pergame, 라띠나어로 Pergamum, 그리쓰어로 Pergamon 이었습니다. 고대 소아시아에는 지금의 베르가마를 수도로 한 뻬르감 왕국이 크게 번성했었습니다. 양피지도 기원전 2세기 무렵 거기서 발명되었거나, 또는 그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는 그리쓰어로 pergamênê, 라띠나어로 pergamena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훗날 불어에서 parchemin 이라는 형태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도서관들에 보관되어 있는 중세의 필사본들 중에는 양피지로 된 것이 종이로 된 것보다 월등히 많은데, 이것은 종이가 귀하기도 했었지만, 종이로 된 책들은 세월의 흐름에 살아 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종이의 사용이 보편화 된 후로도, 중요한 공식 문서들은 여전히 양피지에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양피지라고 해서 영원한 것은 아니죠. 양피지 필사본들도 그 보관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많은 도서관들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필사본을 만져볼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대신 필름화 되었거나 전산화 된 형태로 열람할 수 밖에는 없지요. 빠르슈망 필사본을 몇번 만져볼 기회가 있었던 제 경험에 의하면 그 느낌이 상당이 특이합니다. 약간 고무 같기도 하고, 플라스틱 같기도 하고... 그리고 눈으로만 보면 알기 어렵지만, 손으로 만져 보면 어느 쪽이 털이 있던 쪽이고, 어느 쪽이 살이 있던 쪽인지 감이 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필사본의 정체와 구성 등을 판단하는 데에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빠르슈망 중에서도 특히, 죽어서 태어난 송아지, 또는 갓 태어난 송아지의 가죽으로 만든 것은 vélin 이라 부릅니다 (veel = « 송아지 » 를 뜻하는 옛 불어). 벨랑은 보통 빠르슈망에 비하여 훨씬 희고, 얇고, 섬세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다 고급스런 벨랑을 만들기 위해 심지어는 아직 태아 상태의 송아지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빠르슈망은 매우 비싼 재료였지요. 중세의 책은 그래서 아무나 손에 들고 읽던 것이 아니라, 부자들만 소유하고, 잘 모셔두는 귀중품이었습니다. 때로는 새로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백지 빠르슈망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이전의 책을 다시 이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더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빠르슈망을 물에 빨고 박박 긁어, 원래의 글자를 지우거나 희미하게 한 후, 새로운 내용으로 덮어 쓴 것입니다. 이러한 필사본을 palimpseste 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쓰말로 « 다시 긁어낸 ». 지웠다고는 해도 자국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빨랑쎄스뜨들은 읽기가 더 힘듭니다.

jeudi 22 novembre 2007

베르가못 (bergamote)

베르가못은 살이 매우 부드럽고 향기가 새콤한 배 (과일) 의 일종으로, 불어 bergamote 은 이딸리아어 bergamotta 로부터 왔습니다. 비록 이딸리아를 통해 이름이 널리 전파되긴 했지만, 베르가못은 이딸리아의 도시 베르가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대신 뛰르끼 (Turquie) 의 도시 베르가마 (Bergama) 가 이 과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Perse 에서 온 과일을 pêche (복숭아) 라 부르듯이, Bergama 에서 온 과일은 bergamote 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확실한 어원은 아니고, 진짜 어원은 뛰르끼어 beg armâdé 라는 설도 있습니다 (beg = « 주인, 나리, 영주... » + armâdé 또는 armûdî = « 배 »). 어느 설이 더 정확한지는 이제 판단하기 어렵게 돼버렸지만, 아무튼 이 과일이 뛰르끼로부터 서유럽에 도입된 것은 맞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베르가못이라고 하면 전혀 다른 과일, 즉 귤의 일종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 귤은 베르가못 배와 모양과 향기가 비슷해서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불어에서는 구별 없이 la bergamote 이라는 말 밖에는 쓰이지 않지만, 이딸리아어에서는 la bergamotta 라고 하면 오로지 배를, il bergamotto 라고 하면 배와 귤을, 하지만 주로 귤을 가리킵니다. 신맛이 매우 강한 이 귤은 과일로서 먹기 보다는 그 향만 축출하여 다른 데에 사용합니다 : 차, 사탕, 향수...